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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등대에 근무한 일본 등대원의 희노애락> 제4화 해사과와 항로표지는 불가분의 관계

작성일 : 2026.05.19 11:49 수정일 : 2026.05.19 12:02

4화 해사과와 항로표지는 불가분의 관계

 

전 조선 총독부 송신국 해사과 해원계 근무 마쯔자키 가웅(嘉雄)

(196210)

 

제가 조선에 부임 당시는 초대 이께다 송신국장, 초대 이토 해사과장, 초대 오카모도 공무과장이 근무하였다.

 

항로표지의 예산 요구 담당부서는 해사과 해원계, 공사와 감찰은 공무과 항로표지계의 사무규정에 속하였으나, 후에는 감찰은 해사과로 옮겼다.

 

그래서 해원계에 근무하고 있는 저는 매년 국회에 제출할 예산안과 그 설명서 작성에 매달렸다.

 

예산안의 설명자료에는 항해자로서 항로표지의 필요성과 내지(일본)와 외국의 해안선과 항로표지의 비율을 조사해 조선 항로표지는 이만저만 뒤떨어진 게 아니라는 것, 해난의 수가 많다는 것과 조석 간만의 차가 크고 또한 조류가 빠르고 짙은 안개가 잦다는 것, 작은 섬과 암초가 많기 때문에 항해자로부터 증설 진정이 많다는 것 등등을 열거해 증설에 필요한 예산안을 작성하고 이것을 본부에 제출해 의회마다 야마모토 국장에게 이끌려 상경해 대장성에 출두, 설명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 관계로 해사과와 항로표지는 불가분의 관계였다는 것은, 여러분 모두가 알고 계시는 것이다.

 

이 선광회의 기사 중에 금모랑지조씨(해원계 서기), 원경삼씨(광제호 기관장, 용암포 해사 출장소장), 득능 정현씨, 신곡 헌행씨(양자는 해원 심판관으로 해난사건을 취급하는 관계상 항로표지에 중대한 관심을 갖고있다.)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은 것은 정말 서글픈 일이다.

 

원본출처 일본 선광회보 / 발굴 및 번역 정세모(전 한국해양대학교 교수)

편집 석영국(등대 역사전문가) / 김민철(등대전공 공학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