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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12.18 05:43
<인문학 수프 18> 외로운 조선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말한 시인이 있습니다(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 정호승). 누누이 말씀드린 바 있지만(‘인문학수프’ 여기저기서 말씀드렸습니다) 어려서부터 외로움을 많이 탄 저로서는 참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다”라는 말한 시인도 있습니다(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인생이란 다 그런 것/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김재진). 나이 드니 그런 ‘상투적인 말들’이 심금을 크게 울릴 때가 많습니다. 이나저나 외로움은 인생 최대의 화두인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보는 것을 좀 넓혀 봅니다.
우리가 나라를 귀히 여기고 민족을 중히 여기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생의 외로움’에 당당하게 맞서기 위한 ‘크고 여문 가족’을 만드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미라 모든 것을 외로움에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니냐고 나무라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외로움도 많이 타지만 제 할 말을 속에 담아 두지 못하는 것 또한 제 성미라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제목은 ‘외로운 조선’입니다. 근자에 읽은 일본 여성 작가의 책 한 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일본인이 러일전쟁(1904~1905) 이후 이어진 조선합방을 국위의 앙양으로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그 무렵의 신문이나 서적을 통해 알 수 있다. 식민지를 획득함으로써 일본은 점차 열강제국을 따라잡으며 후진국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조선과는 전쟁을 해 그 나라를 우리 영토로 만든 게 아니라 내분으로 약체화되어 가는 것을 합방을 통해 구해주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논조는 신문지상뿐만이 아니라, 합방 전에 조선을 염려하여 도항(渡航)해 온 민간인의 의식에도 흐르고 있었다. 또 조선에서 나고 자란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다.”(모리사키 가즈에(박승주 외),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 글항아리)
저자는 대구의 삼립정(삼덕동)에서 태어나 자랐고 봉산정 소학교(경북대 사대 부설초등학교)와 대구고녀(경북여고)를 다닌 대구 토박이입니다. 일본 패전 후에는 본국으로 건너가 탄광도시에 머물며 노동, 여성, 환경(생명) 운동 등 사회활동을 활발히 전개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원향(原鄕)인 조선의 대구, 경주 등에서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선 땅에서 36세의 젊은 어머니와 사별한 저자에게는 조선은 항상 ‘외로운 조선’입니다. 조선에 대한 연민의 정이 책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학창시절을 보냈고 현재에도 제가 사는 곳의 이야기라 한 줄 한 줄 공명하며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인용한 부분은 이 책의 전체 맥락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부분입니다. 뒷부분에서 일정 부분 반성의 논조를 덧붙이고는 있지만(기본적으로 저자는 사회주의 활동가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아버지의 제자들에게 초청받아 우리나라에 와서도 자신의 그런 전력이 초청한 사람들에게 누가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대목이 가슴을 짠하게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일본인다운 생각을 드러내고 있는 대목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아픈 부분이기도 합니다(“조선은 스스로 망했다”라는 말은 정말 부끄러운 말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외로운 조선’이라는 이 글의 제목을 떠올렸습니다. 두 겹의 ‘외로움’을 생각했습니다. ‘외로운 조선’을 고향으로 둔 모리사키씨(그에게도 “외로우니 사람이다”라는 말은 위로가 될 겁니다)의 것과 ‘외로워서 망국이 된 조선’을 고국으로 둔 우리의 것입니다.
위의 책을 보면 조선의 양민들은 정 많고 예절 바르고 부지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는 처음 보는 일본 아이에게 항상 따뜻하게 인사말을 건네고(“밥 무굿나?”라고 묻습니다) 논길을 따라 등하교하는 저자에게 또래 남학생이 보리피리 만드는 법도 가르쳐 줍니다(벼로는 피리를 못 만든다고 자상하게 일러줍니다). 노동도 아주 열심히 합니다. 그 시절에 이미 제사공장에 일렬로 앉아 말 한 마디 없이 실 뽑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어린 소녀들이 있었습니다(그 공장터는 제가 그 옆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같은 또래였던 저자는 그 근처로는 아예 발길을 옮기지 않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조선이 외로웠던 것은 못 배우고 가난했던 양민들의 탓이 아니었습니다. 동족의 1/3 이상을 노비로 삼고, 상민들에게만 모든 의무를 지게 했던, 6~7%에 불과했던(조선 전기의 수치입니다. 후기에 이르면 20%까지 확대됩니다), 이른바 양반 계급들이 온갖 특혜와 특권을 독점해 온 결과였습니다. 그들이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식솔과 족당(族黨)의 영달만을 위해 혈안이 되어 나라살림과 민심을 거덜낸 결과로 결국 온 나라가 외로워졌던 것입니다. 그 ‘쿠세(癖)’가 지금도 곳곳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쿠세’는 ‘나쁜 버릇’이라는 뜻입니다. 강조를 위해서 일본말을 쓰는 걸 양해바랍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방면에서 특권을 누리려는 고약한 심보(특권층)들이 너무 많습니다. 잘 아실 터이니 자세한 것은 적지 않겠습니다. 어렵더라도 하나씩 따박따박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모리사키씨와 같은 ‘외로운 조선’을 고향으로 둔 선의의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모리사키씨의 남동생은 젊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다시는 ‘외로운 조선’을 만들어내지 말아야 합니다.
<양선규 소설가/ 대구교육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