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양왕용의 시 읽기
작성일 : 2020.12.04 08:42
지하철
/최휘웅
졸음 묻은 시간, 하품의 깊은 동굴 속에도 빛이 들어왔다. 흔들리는 어
두운 창에 기대어 명멸하는 기억을 더듬다가 깜박 잠이 드는 순간, 나일
강 어디쯤이었지, 파라오가 나타나 피라미트 지하 동굴로 인도한다. 미이
라들이 에워쌌다. 우중충한 눈빛이 엉켜 피를 말리는데 덜커덩 정차하는
굉음에 깼다. 미아라들은 줄을 서 내려가고 텅빈 객차 안에 홀로 남은 자
는 빈 공간을 안고 달리는 바퀴소리에 목을 매단다. 끝없이 공전하는 죽음
의 그림자.
민락에 오면 식탁에서 심장이 뛰는 활어가 있어요.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 눈을 뒤집고 빤히 쳐다보는 원망을 들여다 볼 수 있어요. 그러면 바
다가 쏟아져 나와요. 칼침 맞은 바다의 처절한 몸부림을 먹을 수 있어요.
기억 어디쯤에서 흘러나오는 멘트에 놀라 눈을 떴다. 센텀시티, 시립미술
관, 동백역이 지나갔다. 해운대 바다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어둠 속에서 어
떤 예감에 촉수를 곤두세운다. 해일이 오고 있다는 일기예보를 들은 것 같
기도 하고, 쓰나미와 고기들의 떼죽음이 엿보이기도 했다.
중동역은 한산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트 안에서 기침을 했다.
지하의 곰팡이들이 호흡기를 압박한다. 목 안에 잠복해 있던 것들이 지상
으로 쏟아져 나온다. 도시를 휘항하게 덮는 발광체들처럼 기침은 밤하늘로
번졌다. 불온한 사상가의 저주가 등을 토닥거렸지만 한 번 시동을 건 혁명
은 멈추지 않는다. 돌은 명치 끝에 있고, 기침은 계속 목이 터져라 혁명가
를 부르는데, 돌 같은 절망은 명치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 계간시 전문지 <미레르바> 2015년 봄호
*최휘웅(부산);시인, 동아대 국문과 졸업, 1982년 <현대시학>(전봉건 추천) 등단, <시 와 의식>, <절대시>, <시21> 동인, 시집<녹색화원> 등, 평론집 <억압, 꿈, 해방, 자유, 상상력> ,부산시인협회상 본상 수상, 계간 시전문지 <시와 사상>편집인 역임, 현재 계간 ⟪부산시인⟫ 주간.
최휘웅 시인은 60년대 중반 한국 후반기 모더니즘 시운동의 선본장이던 조향(1917-1984)시인이 시학교수로 있던 동아대학교 국문과의 촉망받는 학생 시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졸업하기 전 조향 시인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동아대학교를 떠나 상경하고 말았다. 이로 인하여 최휘웅 시인은 졸지에 스승을 잃고 말았다. 그는 대학재학시절부터 모더니즘의 한 경향인 초현실주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어쩌면 가장 조향 시인의 시학을 실천한 시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조향을 극복하고 있다. 그 까닭은 많은 조향의 제자들은 방법론의 노예가 되어 생경하거나 조향의 아류를 벗어나고 있지 못한데 비하여 최 시인의 초현실주의는 일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미지의 전개나 구현하는 시적 세계가 생경하지않다. 그러면서도 70을 넘은 나이에 비하여 젊은 시를 쓰고 있다.
그는 최근 해운대로 이사를 했다. 시 <지하철>은 이사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부산의 지하철 2호선의 종점이 가까운 민락역과 센텀시티역, 시립미술관역, 동백역이 나오고 그는 중동역에서 내린다. 그런데 이러한 일상사가 비몽사몽간에 지하철을 타고 있는 시적화자는 도입부에서 꿈을 등장시키고 있다. 말하자면 꿈과 그것에서 보여주는 죽음의 그림자를 통하여 내면세계를 분석하는 경지에 이른다. 이렇게 초현실주의 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꿈을 제재로 하고 있으나 그것의 해석을 일상사와 연결시키는 솜씨는 이미 원숙한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 그리고 적절한 관념어 사용도 그의 시를 훨씬 건강하게 하고 있다. (양왕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