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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12.01 09:01
콰이江의 다리
/박명호 소설가
냉탕수영은 겨울목욕의 백미다.
K는 온탕에서 반신욕으로 땀을 흘린 뒤 냉탕으로 가서 한 바탕 헤엄질 하고 탕 턱에 머리를 베고는 배영으로 누워 마무리한다. 그러노라면 늘 어떤 노래를 흥얼거린다. 기분이 최고조에 다다른다. 노래는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나오는 대로 흥얼거린다. 그것이 오래된 그의 목욕 습관이다.
‘콰이江의 다리’. 경쾌한 행진곡이지만 일본군에 포로가 된 영국군의 이야기를 다룬 아주 오래된 영화주제곡이다. 왜 그 노래가 떠올랐는지 그도 알 수 없다. 조심성 많은 K가 주변을 살펴보더니 사람이 없자 휘파람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휘파람은 물기 많은 목욕탕의 벽에 공명되어 행진곡답게 아주 경쾌해졌다. 저절로 신이 났다. 신이나자 여음과 물장구까지 섞어가며 혼자 기분을 다 내고 있었다.
그때 인기척이 들렸다. K는 얼른 노래를 중단한다. 때밀이 칸막이 뒤에서 익숙하게 보던 사내가 나왔다. 약간은 겸연쩍은 눈인사를 건넸다. 아, 그때 K에게 스쳐가는 인물이 있었다. 목욕탕에서 그를 볼 때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해서 늘 고개를 갸웃갸웃 하곤 했는데 그제 딱 마주친 것이었다.
콰이江의 다리! 그 영화 속 일본군 수용소 소장이었다.
짧은 머리, 건장한 체구, 그리고 미남형이지만 약간 답답한 듯한 강인한 인상...
바로 그가 엉성한 수용소 감옥에서 기어 나오는 영국군 포로처럼 –뭔 일이야? 하는 표정으로 영화 속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곤 조금도 어색함 없이 방금 K가 있던 냉탕 속으로 뛰어들었다.
콰이江의 다리 주제곡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