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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11.29 01:27
왜 국악은 단조로운가? 계면조의 변질
<제민이 /가곡전수자>
국악은 현대인에게 인기가 없습니다. 대중 가수들은 대중의 갈채를 받는 인기 스타이지만, 저같은 국악 성악가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국악을 배우고 듣는 시간이 너무나 적은 것도 커다란 이유일 것입니다. 학교에서 더 많이 국악을 공부하고 감상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국악을 좋아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 말고 국악 자체에도 현대인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국악의 단조로움 때문입니다. 아악은 서양음악처럼 7음을 활용하지만, 향악은 5음밖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소설가들은 문장에서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같은 단어를 중복하지 않고 새로운 단어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악곡에서 음을 적게 쓴다는 것은 적은 어휘로 문학작품을 만드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7음에서 변치와 변궁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향악은 변화성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사정은 악화되었습니다. 향악의 평조는 5음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계면조는 5음 중 한 음 또는 두음을 상실하여 음이 더 적어졌기 때문입니다. 향악에는 두 가지 선법이 있습니다. 평조는 치가 중심음인 음계이며, 계면조는 우가 중심음인 음계입니다. 조선 말엽에 이르러 평조는 그대로 5음 음계를 갖추고 있었으나, 계면조는 대부분 5음 음계에서 3음 음계 또는 4음 음계로 변질되었습니다.
향악에서 평조 악곡은 별로 없습니다. 5음 음계의 평조 악곡은 가곡의 우조, 종묘제례악중 보태평, 그리고 길 군악 등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면 가곡의 계면조, 종묘제례악 중 정대업, 영산회상, 정읍 등 대부분은 계면조입니다. 나아가 판소리를 비롯하여 시나위, 가야고 산조, 거문고 산조, 12잡가, 각도의 민요, 무악에 이르기 까지 5음 음계인 평조는 거의 찾기 힘들 정도로 희귀하며, 대부분의 악곡은 변질된 계면조입니다(1). 5음 음계로 구성된 음악에서도 변화를 느끼기 어려운데, 3음, 또는 4음 음계에서는 더욱 더 단순함을 피하기 힘들 것입니다.
장 사훈 교수와 황준연 교수는 계면조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과정을 고악보 분석을 통해 보여줍니다. 영산회상(중광지곡)의 원형은 현행 영산회상 중 첫째 곡인 상영산입니다. 영산회상(靈山會相)의 최고(最古) 악보는 이수삼산재본금보(二水三山齋本琴譜)에 실려있습니다. 영산회상(靈山會相)은 이 악보에 우조계면조(羽調界面調)로 기록되었고, 이후 많은 고악보(古樂譜)에 동일한 악조명(樂調名)으로 적혀있습니다(2).
영산회상은 원래 노래로 불렀습니다. 황준연 교수는 원래의 영산회상의 선율이 궁을 중심으로 ‘하2-하1-궁-상1-상2로’ 배열된 5음 음계의 계면조였다는 점을 밝혀냅니다. 그리고 이 원래의 영산회상이 정조 때 졸옹가야금보(拙翁伽倻琴譜)와 순조 때의 유예지(遊藝志) 등에서 3음 음계로 변했다는 점을 장 사훈 교수는 확인합니다(3). 졸옹가야금보(일명 拙庄漫錄)는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가야금 고악보이며, 유예지는 조선 후기 문신 서유구가 편찬한 악보입니다. 졸옹가야금보가 1796년(정조 20)에, 그리고 유예지가 1806~1813년 사이에 간행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장사훈이 지적하는 계면조의 변화 시기는 19세기 초엽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