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짧은 소설

짧은 소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31> 감동커피

작성일 : 2020.11.24 11:53

감동 커피

                                                  /박명호 소설가

비슷한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다면, 어느 것이 꿈이고 현실인지 혼동할 수 있다. 진한 감동을 줬던 자판기 커피에 얽힌 두 사건은 십 년이 지난 지금 와서 둘 다 비몽사몽이 되어버렸다.

 

기차출발 시간이 조금 남아 역전 광장으로 나왔다. 커피를 뽑아 담배를 피울 요량이었다. 마침 광장 한 쪽에 자판기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동전을 밀어 넣고 버턴을 눌렀다. 가만히 보니 자판기가 아니라 젊은 사내였다. 청년의 귀에 동전을 넣고 남방의 단추를 누른 것이었다. 내가 미안하다고 쓴 웃음을 짓자 청년은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청년의 열려진 남방 사이로 종이컵이 보였다. 청년은 잘못하다 들킨 듯이 쑥스러워하면서 커피를 내밀었다. 나는 커피를 받아들고 한동안 멍하게 서 있었다. 청년은 이내 사라졌지만 커피향기는 꽤 오래 남아 있었다.

 

우울증이 심각한 후배 시인에게 위로주를 산다며 불러냈다. 자아自我의 신화神話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도와주는 수많은 표지들이 있다고 술잔마다 위로를 실어주었다.

헤어지기 위해 전철역 의자에 부부처럼 앉았다. 힘없이 쳐진 후배의 어깨가 안쓰러워 그녀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그때 우리 앞에 불쑥 커피 한 잔이 내밀어졌다. 낯선 중년이었다.

-참 보기 좋습니다.-

사내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쑥스러운 듯 가버렸다. 자판기에 커피를 뽑다가 다정히 앉아 있는 중년남녀의 모습에 감동되어 무의식중에 커피를 그냥 내민 것 같았다. 자아의 신화가 실현된 것이다.

세상은 정말 살아야 할 가치가 있네요.”

후배 시인은 한동안 꿈인 듯 감동에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