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인생은 짧고 노래는 길다

인생은 짧고 노래는 길다

<가요산책 25> 진성의 안동역에서

작성일 : 2020.11.15 11:42

진성, 안동역에서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오지 않는 사람아

안타까운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기적소리 끊어진 밤에

 

어차피 지워야 할 사랑은 꿈이였나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대답 없는 사람아

기다리는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밤이 깊은 안동역에서

기다리는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밤이 깊은 안동역에서

 

허무한 맹세는 아니었다. 하늘과 땅을 두고 두 눈빛을 걸고 맹세한 그 순간에는 모든 걸 건 진정한 약속의 맹세였다. 아마도 십년 뒤쯤, 지금 이 순간 이별의 상처가 아물고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더욱 성숙되고 깊어진 사랑의 새살이 돋을 때쯤,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드디어 약속한 오늘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새벽부터 그를 기다린다. 아직 그 사람은 오지 않는다. 점점 흐르는 시간은 무릎까지 내려 쌓이는 눈처럼 내 마음에 쌓이고 기적소리조차 끊어졌다.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한 그 약속은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단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들, 아니 내 사랑은 어차피 내 삶의 기억에서 지워버려야 할 한때의 헛된 꿈이었단 말인가.

약속한 그 사람은 왜 아니 오는 것일까. 혹여 불치의 병이라도 깊었단 말인가. 아니면 나를 두고 다른 사랑을 찾아 갔단 말인가. 그도 아니라면 처음부터 딴 마음이었단 말인가. 바보같이 애당초 내가 붙잡을 수 없는 사랑을 꿈꾸었단 말인가. “안 오는걸까. “못 오는걸까. “오지 않는 사람을 두고 노래 속의 사내는 연인이 끝내 오늘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그 대답을 알 수 없는 그것 때문에 더욱더 애절하게 애간장이 녹는다. 애청자들의 심금에 이 노래가 더욱 애절하게 와 닿는 것은 만나기로 맹세한 그 사람이 안 오는 것이 아니라 피치 못할 어떤 사정으로 못 오는 것이리라는 믿음이 앞서기 때문이리라. 그 사람도 그날의 그 맹세를 잊지 못하고 있음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도 눈물처럼 펑펑 쏟아지는 첫눈을 보며 지금 이 노래 속의 보다도 더 마음 아파하리라. 들을수록 애절하기만 하다. 아프다. 진짜 사랑이라면 왜 아프지 않겠는가. 진짜 사랑은 아프다고, 사랑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아프지 않으면 가짜다. 진짜 사랑은 마음이 녹아내린다. 그것이 내 전부이었으므로 오래도록 마음이 아릴 수밖에 없다.

 

십년 뒤에 만날 사람 있다

 

낮에는 앞산 보면 되고

날 저물어 산 볼 수 없는 캄캄한 밤엔

그 사람 생각

 

생애 단 한 번의 순간을 호명하지 못하고

꽃을 지난 다디단 단내의 그리움으로

맞이해야 할 밤들

 

그 사람으로 인해 고쳐질

그 사람으로 인해 깊어진 병

 

그 사람을 떠올렸다 함께 떠오른 생각

그 사람을 잊었다 함께 잊어버린 생각

지금, 그 시간을 다 찾을 순 없어도

 

열일곱 여학생보다

마흔이 더 아름다운 그 사람

 

십년 뒤에 만날 사람 있다

이승주, 십년 뒤에 만날 사람

 

식당에 홀로 앉아 늦은 저녁밥을 먹다 벽에 걸린 액자 속의 사슴의 눈망울을 보면 생각나는 사슴 같은 그 사람. 꽃가게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장미꽃을 보면 생각나는 장미꽃 같은 그 사람. 오전 11시 좀 지나 에프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여가수의 애틋한 사랑노래를 들으면 애절하게 생각나는 그 사람. 노래 속의 사내는 아마도 십년 뒤쯤의 오늘까지 어떻게 견디며 기다렸을까. 위의 졸시를 그 사내에게 바친다. <이승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