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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11.15 06:24 수정일 : 2020.11.15 07:05
명절, 일장춘몽
배재경
오래만에 가족이 모였다
서울과 일산 구미 부산에서 모인 형제들의 웃음이 아
지랑이마냥 피어 오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랭이논같은 주름을 활짝 열고 차
례상보다 자식들에게 먹일 음식과 사 보낼 물건 마련에
1주일 전부터 부지런히 시골장 순회했다
그렇게 명절은 찾아들고
그렇게 집나간 자식들도 찾아들고
그렇게 가족들은 둥근상을 마주하고 파안대소를 하는데
명절아침, 서울아들 밥 먹자 주섬주섬 일어서고
일산, 구미, 부산 아이들도 차 막힐까 오후 들자 죄 떠
나가고
길나서는 자식들 품에 그동안 준비한 시골 먹거리들
을 떠안기고는
휑한 골목길 오래도록 말없이 서 있는 두 노인네
일장춘몽의 명절은 그렇게 지나가는구나
우리명절 매일매일 왔으면 좋겠는데
바람처럼 빠져나간 빈집으로 우두커니 들어선다
에구, 고생 안하고 잘 가야 할 텐데
그날 밤 노 부부 잠도 못들고
한마디 말도 없이 그렇게 흰 밤을 새웠다는데,
-배재경 시집 『그는 그 방에서 천년을 살았다』(2013.12 작가마을)
*배재경(부산);시인 경북 경주 출신, 1994년 《문학지평》으로 등단, 계간 《작가사회》,
《게릴라》 편집위원,, 현제 도서출판 작가마을 대표,, 계간 시전문지 ⟪사이펀⟫발행인, 시집 『절망은 빵처럼 부풀고』 『그는 그 방에서 천년을 살았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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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다소 완화되었지만 해마다 추석이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귀성전쟁을 치루고 있다. 이 작품은 추석을 배경으로 도시에 사는 아들들이 귀향한 상황을 시적 공간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은 아들들이 아니라 시골 고향을 지키고 있는 노부부 즉 아버지와 어머니이다. 시인은 그렇게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닌데 노부부의 자식 사랑을 추석 전후의 그들의 행적을 통하여 진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작품의 끝 부분 노부부가 자식들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데서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아마 이러한 능력을 배 시인이 갖추게 된 배경은 그가 신라 천년 고도 경주 출신이라는 데에 있을 것이다. 추석이라는 우리의 미풍양속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요즈음 특히 도시에서 쫓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양왕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