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서지월의 만주詩行
작성일 : 2020.10.29 01:40 수정일 : 2020.10.30 10:31
-송강하역에서
노릇한 초가을 햇살이 금싸라기를 뿌리는 듯 내리고 있었지요 가족도 애인도 버리고 온 송강하역, 무슨 이유에선지 마지막 정열의 불꽃을 사루는 듯 맨드라미가 피를 내뱉듯 피어있었고 나는 여기에 눈을 맞추고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바람이 불다가 가야할 곳 잃어버리고 주저앉은 신세였습니다
사방 어디에도 유효우 그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주족인 그녀는 이제 성큼 커서 대학생이 되어 있겠지요 그녀의 집에서 하룻밤 묶었던 송강하 부근 만주족 집은 우리와 다름없이 돼지를 키우고 있었고 텃밭에는 상추 배추 쑥갓 오이 강낭콩 줄기가 울타리를 오르고 있었지요
동행한 박명호작가는 '서시인은 송강하역 온 소감이 남다를 건데......' 하고 운을 때기도 했는데 더욱 슬픔 아닌 슬픔에 북받혀 오르는 듯 했으나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요 지구는 둥글고 세계인류는 어딜 가나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정 때문에 아쉬워 하는 법, 헤어질 때 엄마와 함께 송강하역까지 마중 나와 채송화 꽃잎같은 손 흔들어주던 통화소학교 3학년 그녀, 누구의 장난인지 세월은 너무나 빨리 후다딱 지나가버려 서로 송강하역에 다시 마주한들 알기나 할까요
연길에서도 3시간 백두산 아래 장백에서도 3시간 엄청난 거리의 중간에 와서 그녀를 기다리는 듯 서 있는 내 앞에 과거시간은 깨어나올 줄 모르니 안타까운 건 나, 머리카락마저 희끗희끗해졌으니 엉겅퀴 흰 꽃대궁 다름 아닌데 왜 이리도 날씨는 맑고 햇빛은 금싸라기를 뿌려대는지......
오라, 지나간 시간의 물알갱이들이여!
오라, 배회하다 흩어진 구름조각들이여!
외쳐대어도 흩어져버린 잔해들은 찾을 길 없는데
아, 어쩌자고 송강하역마저 새론 모습으로 덩그러니 버티고 서 있으니!
<시작노트>
**지난 2017년 9월초 송강하역에서의 무상이 지워지지 않아 쓴 시이다. 제1차 만주기행을 남이 거름지고 장에 갈 때 따라가는 지혜마저 사라져간 요즘 시대인데, 20년전 박명호작가 따라간 첫 만주기행 때의 일로 통화역에서 송강하로 오는 삼등완행열차 안에서 방학이 되어 외할머니댁에 놀러오는 만주족인 그녀와 그녀 가족을 만나 송강하에 내려 하룻밤 묶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 20년이 지난 오늘날, 내 해마다 가게 된 만주기행에 박명호작가가 동참하게 된 것이다.별로 처량할 것도 없을 듯한데 내가 생각하기에 머슴애 둘이가 처량하게 연길에서 6시간 정도 소요되는 북한땅 마주하고 있는 장백현을 간 것이다. 장백현에서 하루를 묶고 이튿날 장백현에서 이틀에 한번뿐인 버스에 몸을 싣고 돌아나오는데 내린 곳이 송강하였다.
송강하역에서 연길로 다시 돌아오려면 열차로 갈아타고 이도백하 가서 다시 버스로 연길로 와야 하는 좀 번거로운 행보였다.송강하역 앞에서 한 시간 정도 열차를 기다린는 시간도 있고해서 간단한 식사도 하고 했으나 옛 정취의 역사건물도 새로 지어졌고 해 너무나 낯설어 보였다. 맨드라미는 붉게 피어서 피를 내뱉지요, 하늘은 마음껏 맑지요, 초가을 햇살은 마구 퍼붓지요, 아무도 아는 이 없고 언어마저 통하지 않은 송강하역 광장 한 귀퉁이에 앉아서 나는 상념에 잠겼던 것이다.
너무나 쓸쓸해 다시는 혼자 만주땅에 오지 않으리라, 지나간 날들은 가서는 전혀 돌아올 기미없고 바람 불어 날리는 히끗히끗한 희어져 가고 있는 흰머리카락만 원망스러울 뿐이었으니까 말이다.<서지월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