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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왕용의 시읽기 6> 정재필의 완사浣紗 가는 길

작성일 : 2020.10.23 10:43

완사浣紗 가는 길

정 재 필

 

어려서 진외갓집 찾아 완사 가던 길은

개구리 형상으로 엎드린 개굴바위와

너우니 얕은 강물 가르며

건너던 버스길로 신기하기만 했다

 

반세기만에 뭉친 그 무렵 까까머리 적 친구들이

노중路中*저녁 식탁에 초대되어

대평 내촌리에서 완사까지 잘 닦인 진양호 둘레길

수몰된 개굴바위와 버스길 얘기하며 걷는데

 

고향집과 유년을 이곳 호수 바닥에 묻었다는 한 친구가

허리까지 물에 잠긴 옥녀봉을 가리키자

물오리 한 마리 낙조 아름답게 드리운

호면 위를 열심히 헤엄치고 있었다

 

어르신들 완사까지 모셔 드릴까요

승용차 멈처 세운 젊은이의 순박한 인심이

푸근히 다가서는

덕천강이 진양호로 느릿느릿 섞여드는 길목쯤

 

손수 짠 비단 덕천강에 씻으며 사랑을 기다리던

옥녀의 완사浣紗

한 때 보부상과 객주집으로 붐볐던 완사가

진양호 땜 수위에 밀려

이제는 송비산 기슭으로 밀려난 완사가

저만치서 한 집 두 집 불을 밝히고

 

어느새 송비산 중턱에 걸터앉은 완사의 초승달은

진양호 호수 바닥에 묻힌 친구의 유년을

옥녀의 애잔한 전설을

보부상들의 왁자한 고함소리를

저 혼자서

열심히 건져내고 있었다

*작년 이른 봄인가 진주중 3회 동기 문인 4명과 또래의 천사 2명이 그의 서재 현판식에 초대되어 진주 대평 내촌리 달강팬션에서 1박한 적이 있었다.

-남강문학5(2013.9)

정재필; 진주사범, 부산대 국문과 졸업,영문(1950) 흑기》《시와 시론(1960)동인, 남강문 학회 초대회장,계간 문학예술등단, 시집 산에 들다

 

완사는 그 뜻이나 어감이 아름다운 지명으로 경남 사천시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그 지명의 유래와 그에 얽힌 전설은 이 작품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완사는 남강에 댐이 생기고 그로 인한 인공호수가 진양호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원래의 마을은 수물되고 완사의 주민들은 인근 고지대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옛날에는 남강변을 끼고 한참 가야하는 대평면도 많이 수몰되어 진양호 주변의 내촌리와는 십리 안쪽의 가까운 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 시는 각주에 언급되어 있듯이 노중 정봉화 수필가의 초대로 80을 중학교 동기 문인들이 풍광 좋은 내촌리에서 걸어서 완사의 식당에 저녁 먹으러 가면서 바라본 풍경과 나눈 대화와 그 소회를 담담한 어조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개인사가 제재로 되어 있지만 정 시인의 역량으로 시골을 고향으로 한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나 수몰지구를 고향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줄 작품이다.*<양왕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