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인생은 짧고 노래는 길다

인생은 짧고 노래는 길다

<가요산책 22> 이화자의 화류춘몽

작성일 : 2020.10.15 02:28

이화자, 화류춘몽 /이승주 (시인)

유튜브로 미스트롯 송가인의 노래를 듣다 이 노래가 있는 줄 알았다. 이 무슨 때늦은 인연인가, 운명인가? 오래 전 잊은 옛 정인(情人)을 다시 만난 듯 만감이 스친다. 동병(同病)을 넘어선 상련(相憐)이다. 노래를 타고 눈앞에 금세 흑백필름이 흐른다. 밤늦은 시각, 취한 내가 인력거에 실려 흔들리고 흔들린다. 물론, 애상적인 상념이 빚은 상상이다. 어찌하랴. 지금도 여전히 나는 다분히 신파적이고 어느 한편으로는 탐미적, 향락적인 것을.

꽃다운 이팔소년 울려도 보았으며

철없는 첫사랑에 울기도 했더란다

연지와 분을 발라 다듬는 얼굴 위에

청춘이 바스러진 낙화 신세

마음마저 기생이란 이름이 원수다

 

점잖은 사람한테 귀염도 받았으며

나 젊은 사람한테 사랑도 했더란다

밤늦은 인력거에 취하는 몸을 실어

손수건 적신 연이 몇 번인고

이름조차 기생이면 마음도 그러냐

 

빛나는 금강석을 탐내도 보았으며

겁나는 세력 앞에 아양도 떨었단다

호강도 시들하고 사랑도 시들해진

한 떨기 짓밟히운 낙화 신세

마음마저 썩는 것이 기생의 도리냐

유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이화자의 목소리가 애처롭다. 듣기에는 그보다 송가인, 김소유의 목소리가 낫다. 노래는 곡명(曲名)처럼 이제 청춘이 바스러진”, 낙화의 처지가 된 기생의 신세 한탄이다. 기생이란 잔치나 술자리에서 가무나 풍류로 흥을 돋우는 여자로, 노류장화(路柳墻花)에 비유하여 길가의 버들이나 담장 밑에 핀 꽃같이 누구나 꺾을 수 있고 관계할 수 있는 여자를 가리키지 않은가. 화류(花柳)는 또 유곽(遊廓)을 달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니, 화류 기생은 몸을 파는 천한 창기(娼妓)이겠는데, 창기라 한들 이들에게도 어이 순정이 없고 욕망이 없으랴. 다른 여염(閭閻)이나 궐내(闕內)의 여인네의 삶과 마찬가지로 그네들의 꿈도 호강사랑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름조차 기생이면한때 빛나는 금강석도 탐내 보고 점잖은 사람한테 귀염도 받고 또 철없는 첫사랑을 만나 사랑도 했겠지만 그 호강, 그 사랑은 끝내 짓밟히고 말 한 떨기의 춘몽으로 끝나고 말 것을, 그게 또한 기생의 숙명이니 마음마저그 이름이 어찌 원수와 같지 않으랴.

나도 한때 이 세상 오직 시와 여자만이 가장 절실했을 때 한 여자를 만나 사랑한 적 있었다. 그때, “나의 쓸쓸함이 외로워지고 나의 외로움이 쓸쓸해질 때돌아갈 집이 없는 나의 거처가 되어 주어 그에게 나의 청춘을 들여놓았던, “그의 입술과 종아리를 사랑하고 그의 풀어진 매무새를 사랑하고 // 아득히 깊은 그의 눈우물을 사랑하고 / 눈우물 속에 비친 외로움 때문에 / 눈우물 속에 비친 쓸쓸함 때문에 / 뽀얀 가슴을 더욱 사랑했던.

나의 쓸쓸함이 외로워지고 나의 외로움이 쓸쓸해질 때

나는 한 퇴폐 씨를 만나

그의 입술과 종아리를 사랑하고 그의 풀어진 매무새를 사랑하고

아득히 깊은 그의 눈우물을 사랑하고

눈우물 속에 비친 외로움 때문에

눈우물 속에 비친 쓸쓸함 때문에

뽀얀 가슴을 더욱 사랑하고

돌아갈 집이 없는 나의 거처인 퇴폐

그에게 나의 청춘을 들여놓고

어스름 창가에 애틋하게 꺾이는 그의 트로트를 사랑하고

나 지금도, 옆에 없는

그의 손을 만지며 질퍽한 슬픔을 사랑하고

그가 가르쳐주는 슬픔을 밤새 사랑하고

그도 나를 사랑하고

이승주, 그리운 퇴폐

 

그리운 퇴폐여. 나 지금도, 옆에 없는, 너의 손을 만지며 질퍽한 슬픔을 사랑하고 네가 가르쳐주는 슬픔을 아직도 밤새 사랑한다.

사랑. 사랑이라면, 사랑의 끝은 이별이 다가 아니다. 이별 뒤에 남는 것, 그것까지도 사랑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불사르는 것이지만, “질퍽한 슬픔을 포함하여 이별 뒤에 남는 미련이나 회한, 그리움은 잿불처럼 더욱 그 사랑을 생각나게 한다. 이별 뒤에 찾아오는 그것은 이별의 아픔보다 더 마음을 아리게 하고 더 애간장을 녹인다.

그리움. 그리움은 사랑을 확인하는 추수의 과정이다. 한 조각 미련이나 회한, 그리움조차도 없이 그 사랑을 없던 일처럼 잊을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영원한 건 없다지만, 진정 그것이 사랑이었다면 이별 그리고 그리움 또한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네 인생에 아름다운 화상(火傷)을 더한다. 이별의 상처, 그리움 또한 이 외롭고 쓸쓸하고 부박한 인생을 데우는 잿불의 온기가 된다.

이화자, 김소유, 송가인의 화류춘몽을 번갈아 들으며 인생과 사랑의 비애와 감상(感傷)에 젖는다. 알 수 없는 애잔함이 허한 마음을 휩싼다. 새삼 전생(前生)의 비디오테이프를 다시 돌려 본다. 전생에 나는 선화공주(善花公主)를 사랑한 서동(薯童)이였으며, 수로부인(水路夫人)을 사랑한 견우노옹(牽牛老翁)이었으며, 황진이를 사랑한 임백호 서화담이었으며, 윤초씨네 증손녀를 사랑한 소년이었으며,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사랑한 목동이었으며, 화류춘몽의 기생이 울린 그 꽃다운 이팔소년이었구나. 졸시 그리운 퇴폐화류춘몽의 기생과 이팔소년에게 바친다.

구절초들이 청춘이 바스러진꽃잎을 내리고 열매를 맺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