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작성일 : 2020.10.05 02:17
감, 대추, 무화과
어머니는 살아생전 꽃 가꾸기를 좋아하셨다. 도시 출신인 아내는 꽃과 채소 키우는 법을 시어머니로부터 처음 배웠다. 한창 바쁘게 살아야 했던 시기엔 어쩔 수 없이 아파트에 살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아이들도 집을 떠나자 아내의 채근으로 조그마한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아내의 부지런한 손 발품 덕에 마당에는 사철 내내 갖가지 꽃이 피고 진다. 도시에서 나비와 벌, 박각시나방, 딱새, 박새 등과 함께 하는 호사도 누린다.
나는 꽃뿐만 아니라 과일나무도 좋아한다. 아내는 무화과나무를 심었고, 둘째 형님께서 감나무와 대추나무를 심어주셨다. 매년 8월부터는 아침마다 무화과 따는 일로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무화과는 수확이 많아 이웃과 나누거나 잼으로 만든다. 감은 두세 개만 남기 때문에 까치밥으로 그냥 둔다. 사과대추는 크고 달아서 정말 좋다. 유실수를 편애하는 나더러 아내는 먹는 것만 좋아한다며 놀린다. 나는 촌에서 가난하게 자라 먹는 것만 밝힐 수밖에 없다며 태연히 응수한다. 그렇다. 감, 대추, 무화과는 유년의 허기를 달래준 생명의 과일이었다.
추석 며칠 전 집안의 장손인 오촌 조카가 한가위 날 성묘에 올 수 있는지 전화를 했다. 추석날 아침 잘 익은 무화과를 땄다. 발 딛고 있는 의자를 아내가 꼭 잡아주는 동안 대추도 땄다. 올해는 장마가 길어 대추는 지난해보다 반의반도 열리지 않았다. 아내는 산에서 바로 먹을 수 있게 무화과와 대추를 깨끗이 씻고 닦아 종이 상자에 정갈하게 담았다. 조금 일찍 산에 도착해 부모님과 윗대 묘소를 둘러보았다. 나는 스무 명이 넘는 사촌 중에서 막내다. 오촌 조카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동년배라 서로 친구처럼 지낸다. 산이 높지 않아 아흔을 바라보는 사촌 형님과 형수도 올라오셨다. 오촌 조카들도 장성한 아들딸들을 데리고 도착했다. 성묘를 마치고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음복을 했다. 대추와 무화과가 단연 인기였다.
대추는 다산의 상징이어서 고향 동네 집마다 한두 그루는 있었다. 대추가 많이 열리기를 소망하며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넣는 ‘대추나무 시집보내기’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니 아이들은 재미있다는 듯 귀를 쫑긋했다. 혼례식 폐백 때 아들딸 많이 낳으라고 부모가 대추와 밤을 신부에게 던져주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무화과도 지중해 연안에서는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라는 설명에 진지하게 귀를 내주었다. 오촌 조카의 아들딸들에게 내 시집을 나누어주며 촌수를 가르치기 위해 ‘경자년, 한가위, 재종조부가’라고 써 주었다. 할아버지의 사촌이 ‘재종조부’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졸참나무에서 툭툭 떨어지는 도토리를 주워 묵 만드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이런 세시풍습도 조만간 사라지리라. 유난히 깊고 푸른 하늘 때문인지 갑자기 눈이 시려 눈물이 나왔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대구시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