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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11.12 12:27 수정일 : 2023.11.12 12:31
문학지의 품격과 문학단체 회원들의 욕구
/양 왕 용
부산의 대형서점 <영광도서>에 가보면 기성잡지 코너와는 별도로 경향각지에서 발간하는 문예지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심지어 해외교민문학단체의 연간지들도 꼽혀 있어 매우 친절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이렇게 진열된 문예지 말고도 필자에게 직접 배달되어 오는 문예지들도 많다. 한편으로는 문인협회라는 단체명 위에 갖가지 명칭을 붙인 단체들도 연간지, 반연간지 혹은 계간지를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기초 자치단체의 문인단체, 각종 종교인들이 모이는 문인단체들의 회지 그리고 각 장르별 문인 단체들의 회지까지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 발간되는 문예지의 종류가 도저히 짐작이 되지 않는다. 그 개수를 전국적으로 파악한다고 해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조차 든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잡지 등록을 중앙정부에서 받았으나 그것이 광역 자치단체로 이관되었다가 요즈음은 기초자치단체에 신고만 하면 문예지의 발간이 가능하게 되었으니 전국 기초자치단체에 전수조사를 해야 정확한 자료가 나올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는 그래도 현재 발간되고 있는 문예지 숫자의 파악은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고해 놓고 발간하지 않는 것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예지 홍수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한참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저 가운데 얼마나 많은 문예지들이 원고료를 제대로 주고 문인들의 작품을 받아 싣고 있으며, 저 잡지들이 과연 얼마나 독자들에게 팔리고 있을까 하는 점에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는 만부 넘게 찍던 우리나라 유수한 문예지의 발간부수도 공개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사실 원고료를 지급하는 소수의 문예지들도 원고료 수준은 몇십년 전의 물가 수준에 묶여있는 실정이다. 그것도 대부분의 문예지가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서 하고 있다. 더욱 부끄러운 일은 일부 문인들이나 단체에서 운영하는 문예지의 경우 신인을 양산하면서 신인들에게 상당히 많은 부수를 떠맡겨 거기서 마련되는 재정으로 문예지를 발간하고 단체를 운영하는 것이 관례로 받아드려지고 있다. 심지어 지자체로부터 예산을 지원받는 문예지도 충분한 지원이 아니라는 핑계로 개인 문예지의 잘못된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싣는 광고도 몇몇 문예지를 제외하고는 회원들의 책 광고가 대부분이다. 말하자면 원고료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 비록 큰 액수는 아니나 광고비 형식으로 발간비를 지원하는 셈이 되고 있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등록된 문예지라고 해도 기업체의 대형 광고를 받으려면 따로 기재부의 허가를 얻어야하는 정벽 때문이라고 한다.
필자는 지금으로부터 근 20 년 전 지역 문인단체의 임원으로 참여하면서 지역문예지를 계간지에서 격월간지로 승격시키는 데에 기여한 바 있다. 그리고 그 문예지의 편집인 자리를 맡아 한국 최고 수준의 격월간 문예지를 1년여 편집한 바 있었다. 편집정신은 문예지가 팔리지 않는 세태지만 그래도 뜻 있는 독자들에게는 읽혀 지역문학사에 남을 자료로서의 문예지가 되자는 것이었다. 참신한 특집과 그 필진을 전국에서 적합한 전문가를 물색하여 최고의 원고료를 주고 우리 회원이 아닌 전문가도 편집위원에 참여시키는 등 정말 의욕적인 노력을 한 결과 현재까지 뜻 있는 독자들의 칭찬을 듣고 있다. 그런 후 필자는 지역문인 단체의 책임자 선거에 나섰다. 투표장에서 투표를 한 후 필자의 자리로 돌아오는 도중 안면도 없는 회원의 혼잣말 소리를 들었다. 그 내용인즉 우리 회지에다 회원들의 작품은 많이 싣지 않고 쓸 데 없는 평론 나부랭이만 실었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낙선을 직감했다. 개표 결과 10표미만의 근소한 차로 패배했다. 그런 후 필자는 모든 지역 문인 단체의 선거에 나서는 것을 접었다. 사실 그 회지는 회지라기보다 오래 전에 지금은 불행하게 작고한 모 지역단체장이 중앙정부 임명 단체장 시절에 제2도시에 전국에 내놓을 만한 문예지 하나 없다고 하면서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지원 의지로 태동된 잡지였다.
회원이 많은 문학단체의 기관지일수록 회원들의 작품을 자주 실려 주게 되면 참신한 특집과 기획물이 실릴 공간이 없다. 말하자면 문학잡지의 품격과 회원들의 욕구가 서로 충돌한다. 잡지가 회원들의 작품으로만 채워지면 뜻 있는 독자들의 서가에는 꼽히지 못할 것은 물론 실린 회원들을 제외하고는 전혀 읽히지 않게 될 것이며 심한 경우에는 배달되어 봉투가 개봉되지도 않고 바로 쓰레기통에 버려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회원 수가 많은 규모가 큰 단체의 경우에는 회원만 작품을 실어준다고 해도 지면의 한계로 인하여 발표 욕구를 다 채워주지 못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럴 바에야 회원들에게 회비 내는 몫의 행사나 서비스는 따로 하고 기관지는 품격을 높이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회원 가입 절차도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비로 회를 운영하는 재정적 구조를 탈피할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시인/ 부산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