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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수프13> 도둑질에도 도가 있다

작성일 : 2020.09.19 10:45 수정일 : 2020.09.19 10:53

도둑질에도 도가 있다

 

1. 도둑질에도 도가 있다

...옛날 용봉(龍逢)은 머리를 잘렸고 비간(比干)은 가슴을 찢겼으며 장홍(萇弘)은 창자를 찢겼고 자서(子胥)는 썩어 죽었다. 그러니 이 네 사람은 현자라고 하는데도 살육을 면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도척(盜跖)의 부하가 도척에게 물었다. “도둑질 하는 데도 도()가 있습니까?” 도척이 대답했다. “어디에든 도가 없는 곳이 있겠느냐. 방안에 감춰진 것을 짐작으로 아는 것이 성()이고, 훔치러 들어갈 때 먼저 들어가는 것이 용()이며, 훔친 다음 맨 뒤에 나오는 것이 의(), 훔치게 될지 안 될지를 아는 것이 지(), 훔친 것을 골고루 나누는 것이 인()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않은 채 큰 도둑이 된 자는 아직 없었다. [장자외편, 거협(胠篋), 윤재근, 우화로 즐기는 장자참조]

우화(寓話)는 여타의 이야기 방식과는 좀 다릅니다. 비슷한 이야기 형태인 소설이나 동화는 작품 속에서의 리얼리티를 중시하지만, 우화는 그 뜻을 우선시 합니다. 리얼리티, 혹은 내적인 논리성은 그 다음입니다. 그럴듯한 이야기를 통해서 천륜이나 때()가 요구하는 교훈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전문적인 용어를 써서 말하자면, 사회적 코드가 심미적 코드에 기생(寄生)하는 형태입니다. 누구나 아는(인정하는) 사회(윤리)적 가치를 흥미로운 이야기 소재에 얹어서 과장된 스타일로 강조하는 방식입니다. ‘발견이 아니라 강조입니다. 자연히 이야기가 극단적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십상입니다. 심청이가 굳이 인당수행()을 고집하고, 다시 살아나 심황후가 되는 것도 그 까닭에서입니다. 이야기는 이미 현실을 넘어서있습니다. 현실의 간섭을 받는 내적 논리성을 던져 버린 지 오랩니다. 흥부의 박도 마찬가집니다. 그 이야기들은 발견이 아니라 강조의 목적을 가진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소설로 부르지만 사실은 우화인 것입니다. 그렇게 옛날이야기들은 우화에 그 뿌리를 둔 것들이 많습니다.

장자(莊子)에는 우화가 많이 등장합니다. 서두를 장식한 도척 이야기 역시 우화의 일종입니다. 용봉, 비간, 장홍, 자서 등 폭군에게 바른 말을 했다가 죽음을 당한 이들의 사례와 비루하게 도둑질이나 하며 살아가는 막장 인생 사이에 그 어떤 논리적 연관성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화는 그들을 한데 묶어서 뜻을 전하기 위한 용의주도한 선후(先後)를 만듭니다. 그들이 그렇게 죽은 것은 세상에 도()가 없다는 말인데 비천한 도둑질에 무슨 도()가 있겠습니까라고 한 도둑이 묻습니다(우화에서 묻는 자들은 언제나 상식의 대변자입니다). 그 물음에 터무니없는 대답이 주어집니다. 도둑질에도 엄연한 도가 존재한다고 강변합니다. 이 이야기의 앞 부분은 현실을 꼬집고 있습니다. 뒷부분은 이상을 말하는 것이겠구요. 그렇게 이야기의 비논리성이 활개를 칩니다. 왜 그런 이야기 섞기가 자행되는 것일까요? 그 의도는 간단명료합니다. 그들 죽음을 무릅쓰고 직간(直諫)하다가 비참하게 죽은 이들의 인()과 의()와 용()의 아우라가 지닌 그 압도적인 장엄함에 빌붙어 살기 위해서입니다. 덧붙여지는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이야기 자체로(현실론적인 반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의도한 대로, 하나의 강조(지켜야 할 규범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바라서인 것입니다. 자신의 강조가 그저 한 번 웃자는 농지거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삶의 중대한 지표가 되는 거룩한 말씀에 속하는 것임을 인정받기를 바라서입니다(이 도척 이야기는 크게 성공한 사례는 아닙니다만). 모든 일에는, 하다못해 도둑질에도,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는 것을 설득적으로 전달(설파)하고 싶었다고 할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의 비논리성을 흠잡지 않고 슬쩍 눈감아주는 것은 독자입니다. 독자들의 바람이 우화의 취지와 같은 것이기에 그렇게 간단히 작품의 비논리성이 초래하는 불신의 장벽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화는 그래서 저자와 독자의 합작품입니다.

장자는 소백정이나 수레바퀴 만드는 늙은 목수나 잔인하기로 소문난 도둑 두목의 이야기를 통해 치자의 도를 설파합니다. 공맹처럼 단도직입하지 않고 이야기를 섞어 우회합니다. 우회해서 좀더 곡진하게 전달합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우회하면서 다소간 희석시키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노장의 무위자연설(無爲自然說)과는 좀 거리가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세상의 공명에 아직도 미련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외편과 잡편은 장자의 소작(所作)이 아니라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후학들이 자신의 취향을 살려서 덧붙인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장자의 우화 몇 편을 소개하기에 앞서, 왜 장자가(혹은 장자의 후학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코드) 섞기를 즐겼는지, 그 연원(淵源)을 좀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장자 철학은 제물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다라는 겁니다. 일종의 차별 폐지법입니다.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 이래야만 하고 저래서는 안 된다가 없는 논리를 폅니다. 이를테면 논리를 해체하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종종 궤변이 동원됩니다. 장자의 궤변은 장자로서는 피치 못할 논리입니다. 현실의 논리로서는 닿을 수 없는 지점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궤변이 동원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부분은 다음 이야기 때 다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족 한 마디. 앞서 든 도척 이야기는 두말할 것도 없이 치자(治者)의 도리를 강조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시대의 치자들에게 당연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과 인()은 고사하고 의()도 용()도 지()도 없는 자들이 치자(治者)입네 하는 꼴들을 얼마나 많이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도 없이 어떻게 미래를 창조할 것이며, ()도 없으면서 소통과 통합을 어떻게 이루겠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 , 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보여주는 게 없습니다. 권력 주변에 득실거리는 자들은 제발 남부끄러운 짓이나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자식들 보기가 부끄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다른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제발 그 자리에 있는 동안이나마 사람 구실이나 제대로 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드는 세상입니다.

2. 서울을 사수하라

옛 선비들의 사는 방식에도 두 가지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입신양명(立身揚名)과 안빈낙도(安貧樂道)가 그것입니다. 학문의 목적을 부귀공명을 얻는 것에 둘 것인가, 아니면 자기 수양의 수단으로 여길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조선의 일류 선비 다산 정약용을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됩니다. 자신의 아들들에게는 철저하게 전자를, 유배지에서 가르치던 제자들에게는 강력하게 후자를 강조합니다. 비유하자면, 아들들에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울 쥐로 살 것을, 제자들에게는 쓸데없이 욕심 내지 말고 시골 쥐로 살 것을 권합니다. 아들들에게는 끝까지 서울을 사수하라라고 당부합니다. 살기가 어려워져도 서울 십리 밖으로는 절대 나가 살지 말라고 합니다. 폐족이 되어 세상에 절망하고 아예 시골로 은둔하면 시골살이가 몸에 배어 더 이상은 출사(出仕)의 기회를 얻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계합니다. ‘시골 것들은 본시 "그늘진 곳에 살면서 비루하고 몽매하고 원망하는 마음만 가득해서 그들과 어울리다보면 그저 남을 모략하고 시기하는 데 몰두하게 되어 제 자신의 학덕을 쌓는데 결정적으로 소홀하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제대로 된 선비로 살려면 일류들이 모여 사는 서울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귀양살이 중에 얻은 시골 제자들에게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일관되게 지족안분(知足安分)시골 쥐 살이'를 강조합니다. 한거(閑居)에서 거둔 제자들이어서 그런지(실제로 그런 삶의 장점을 몸으로 느껴서일지도 모릅니다) 벼슬보다는 사람(군자)됨에 더 비중을 두는 삶을 권합니다. 안빈낙도(安貧樂道) 할 것을, 도학(道學)에 정진할 것을, 두루 그 요목을 밝혀 권합니다.

....학문은 우리들이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학문이 제 일등의 의리(義理)라고 하였으나 나는 이 말에 병통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땅히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의리라고 바로잡아야 한다. 대개 사물마다 법칙이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배움에 뜻을 두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 법칙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수(禽獸)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첫째로 선을 막고 도를 어그러지게 하는 화두가 있으니, “가도학(假道學)은 진사대부(眞士大夫)만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요즈음의 사대부는 곧 옛날의 군자이다. 도학이 아니면 군자라는 이름을 얻지 못하며 사대부라는 이름도 얻지 못한다. 그런데 어찌 도학과 상대하여 말을 할 것인가.

위학(僞學)이라는 명칭을 피하였다면 정주(程朱)(송나라 대학자인 정자와 주자)도 그 도를 세우지 못했을 것이고, 명예를 구한다는 비방을 두려워하였다면 백이(伯夷)나 숙제(叔齊)가 그 절개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며, 곧다는 명예를 얻으려 한다는 혐의를 멀리했다면 급암(汲黤)과 주운(朱雲)(한나라의 대표적인 직신(直臣)들이다)도 간쟁(諫諍)하는 데에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부모에게 효도하고 벼슬살이할 때 청렴하게 지낸 것을 경박한 무리들이 모두 명예를 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하니, 이러한 무리들을 위하여 악()을 따라야 할 것인가. [중략]

과거학(科擧學)은 이단(異端) 가운데서도 폐해가 제일 혹독한 것이다. 양자(楊子)와 묵자(墨子)는 이미 낡았고 불씨(佛氏)와 노자(老子)는 크게 우원(迂遠)하다. 그러나 과거학은 가만히 그 해독을 생각해보면, 비록 홍수와 맹수라도 비유할 바가 못 된다. 과거학을 하는 사람들은 시부(詩賦)가 수천 수()에 이르고 의의(疑義)5천 수에 이르는 자도 있는데, 이 공()을 학문에다가 능히 옮길 수 있다면 주자(朱子)가 될 것이다. [중략]

시골에 사는 사람이 그 자제가 혹 총명하고 민첩한 지혜를 가져서 남보다 몇 등급 뛰어난 말을 하여 사람들을 경탄시키는 자가 있으면, 곧 그에게 과거시험을 준비하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자는 일찌감치 학문의 길로 돌아가게 하거나 아니면 농사짓는 일에 돌아가게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비록 총명하고 지혜가 있는 자라도 나이가 서른이 넘도록 이룬 것이 없으면, 곧 마땅히 학문에 전념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아마 낭패하는 데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된다는 말은 참으로 큰 용기가 아니면 그 교훈을 실천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나이가 사오십이 된 사람은 도리어 할 수 있다. 혹 고요한 밤에 잠이 없이 초연히 도를 향하는 마음이 생겨나거든 이러한 기회에 더 확충하여 용감히 나아가고 곧게 전진할 것이지 노쇠하다고 주저앉는 것은 옳지 않다. ([정수칠에게 당부한다](정수칠의 자는 내칙(內則), 호는 반산(盤山)으로 장흥(長興)에 살았으며 다산 초당 18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학문이 높았다)) [정약용(박석무 편역),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중에서]

위의 글만을 본다면, 폐족(廢族)이 되어 낙심천만인 두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울을 사수하라"는 당부를 할 이유도 명분도 없을 것 같습니다. 전혀 다른 또 하나의 다산을 보는 듯합니다. 한 사람에게서 나온 두 개의 선비관을 억지로라도 하나로 묶어본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입니다. <선비로 살려면 최대한 서울을 사수하기에 힘쓸 것이다. 배운 자로서 사람답게 살려면 시골 것들의 비루함에 물들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여의치 않을 시에는 독하게 도학에 정진해라. 그렇게라도 해야 덜 억울하다. 선비로서의 삶은 그렇게 양가적인 것이다.> 자나깨나 세속을 한 시도 떠나지 못하는 제게는 그런 산술적인 합산(合算)밖에는 다른 계산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평생 시골 쥐로 살아왔으니 시골에서 선비로 산다는 게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리 없습니다. 시골에서 무탈하게 살려면 거의 독기(毒氣)에 가까운 나름대로의 도학(道學)’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다산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시골 쥐라면 누구나 자득해 마지않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양선규 소설가 /대구교육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