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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안과 피안 -김 홍희의 범어사 사진

작성일 : 2020.09.14 10:01

차안과 피안

-김 홍희의 범어사 사진

                                                                                      /배학수<경성대 철학과 교수>

현대에는 인간을 비하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부정하는 고압적 종교가 판치고 있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인간은 비천한 존재에 불과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진리는 오직 저 세상에만 존재한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소리는 소외된 인간의 자기기만일 뿐입니다. 자기 확신을 자기 자신에서 추구하는 자유의 정신은 그런 인간 비하의 종교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래 김홍희 작가의 범어사 사진도 이 점을 언급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범어사 사진은 진정한 종교란 무엇인가에 관한 물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범어사 사진은 현대의 자기 기만적 종교관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화면은 수평 방향으로 3 등분 되어 있습니다. 왼쪽 1/3과 오른 쪽의 1/3은 어둠 속의 절 대문이며, 중앙 1/3은 환하게 빛을 받고 있는 대문 바깥 건물의 지붕과 강렬한 광선 때문에 색이 연하게 날린 앞산의 푸른 나뭇잎입니다. 빛과 어둠의 대립 구도는 차안과 피안의 대조를 상징합니다. 범어사 사진은 이렇게 구성됨으로써 마치 차안과 피안이 전혀 다른 이질적 세계인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차안과 피안의 관계를 지적하기 위한 영상 언어가 빛과 어둠의 절대적 격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현실을 경시하는 종교는 차안과 피안의 2분법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차안과 피안이 완전히 다른 영역이며, 이 세상의 삶이란 헛되기 때문에 저 세상에서 영원한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피안이 진리라면, 이 세상의 확립과 발전을 위한 노력은 아무 것도 아니며, 사후의 미래를 대비하는 것만이 진정한 가치일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하고 순수한 세상을 갈망하는 고결한 태도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의 실상은 이 세상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자기를 위로하기 위해 꾸며낸 환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리는 이 세상이 아니라 저 세상에 있다고 믿으면서, 이 세상의 소외와 좌절은 견디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차안과 피안은 두 세계이더라도 그렇게 격리된 영역이 아닙니다. 저 세상이란 이 세상의 희망이며, 이 세상 속에서 이 세상의 일들을 이끌고 나가는 목표인 것입니다. 차안과 피안을 완전히 격리시키고, 가치를 피안에만 두는 자세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시대는 인간을 절대자의 노예로 만들지 않으며, 이 세상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 자유와 자율의 종교를 원합니다.

저는 범어사 사진에서 현대 종교의 자기기만에 대한 각성의 요소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화면 중앙의 승려입니다. 바닥을 쓸고 있는 승려는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쪽 반은 암흑이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쪽 반은 광명입니다. 승려는 한쪽에는 어둠, 한쪽에는 빛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어둠과 밞음을 하나로 모으고 있습니다. 어둠과 빛의 합일은 차안과 피안의 통일입니다. 저는 이것을 차안과 피안의 2분법을 거부하고, 2분법에 기대어 자신을 위로하는 현대 종교의 허위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화면의 중앙에 선 승려는 빛과 어둠의 대립을 표현하기 위한 다른 물체들에 비해 매우 작으며 바닥을 쓰는 운동도 연약하게 보입니다. 모든 시작은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합니다. 그러나 그것과 함께 거대한 허위의식은 이미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란 이쪽에서 저쪽으로 강을 건너는 것이 아닙니다. 강 건너 저 세상도, 강도, 우리를 도와줄 뱃사공도 모두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저 세상은 범어사 사진의 승려에서처럼 이미 이 세상에 들어와 있습니다. 진정한 종교란 이 세상 넘어서 저 세상으로 안내한다고 사람들을 속이지 않고, 이 세상이 저 세상에 비추어 얼마나 아름답고 추한지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