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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21> 도시락 갑을병

작성일 : 2020.09.08 11:41

도시락 갑을병

                                        <박명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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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은 점심시간이 되면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나온다.

그가 가는 곳은 수돗가다.

갑이 물을 먹을 때는 꼭 꼭지를

입 속으로 깊게 밀어 넣고는 빨아 마신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 때문인지

허기 탓으로 빨리 물을 마시려는지

점심 대신 애꿎은 물이나 마시는 것이 부끄러워선지

에라,’ 하는 자학 심정인지

아무튼 갑은 어른이 된 지금도 물을 게걸스럽게 마신다.

배가 불러오도록, 아니 허기가 채워지도록

꼭지를 빨다가 얼굴을 들면

그 시간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아이들이 수도꼭지에 달라붙어

갑처럼 머리를 처박고 수돗물을 빨고 있었다.

그 모습은 흡사 어미돼지 젖꼭지에 달려든 돼지새끼들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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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담임선생님은

배가 자주 아프셨다.

선생님이 배가 아플 때마다

을은 선생님의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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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노래를 잘 부르는 줄 알았다.

4교시 음악시간이면

선생님은 꼭 노래 잘하는 사람을 뽑았다.

병은 언제나 일등을 했다.

일등에게는 빵으로 된 도시락이 상으로 주어졌다.

병은 학년이 바뀔 때까지 정말 노래를 잘 하는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