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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수프12>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작성일 : 2020.09.03 11:46 수정일 : 2020.09.19 10:55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우리가 보통 그 사람 의리(義理) 있다라고 말할 때의 의리는 소절(小節)을 뜻할 때가 많습니다. 소절은 대의(大義)라고 보기에는 그 미치는 범위와 영향이 현격하게 작은 행동을 가리킵니다. 이를테면 부모에 효도하거나 친구나 무리들과의 신의를 지키는 게 소절에 해당합니다. 민족이나 국가, 공동체를 향한 헌신이나 인간다운 삶을 선양(宣揚)하기 위한 희생은 물론 대의에 속하는 일입니다. 살다보면 문득문득 의리 지킬 일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대의는커녕 소절도 지키기도 어렵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많습니다.

 

...폭군 연산 때도 3정승, 6판서, 6승지(承旨)로 권세를 누리던 이들이 물론 있었다. 그러나 연산군 12(1506) 9월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승지 윤장(尹璋) 등은 바깥 동정을 살핀다는 핑계로 차차 흩어져 모두 수챗구멍으로 달아났는데, 더러는 실족하여 뒷간에 빠지는 자도 있었다라고 연산군일기가 기록하고 있듯이 제 살길 찾기에 바빴다. 연산군 말년의 영의정 유순(柳洵), 우의정 김수동(金壽童), 무령군 유자광(柳子光) 등은 되레 중종을 추대한 정국(靖國)공신에 책봉되었다. 한성판윤이었던 구수영(具壽泳)은 연산군의 딸 휘순공주(徽順公主)의 시아버지였고 미녀를 사방으로 구해 바쳐연산군의 사랑을 받은 인물임에도 역시 공신이 되었다. 중종반정에 아무 공이 없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좌의정 신수근(愼守勤)만 연산군 부인의 오빠라는 이유로 처형당했을 뿐 모두 연산군을 버리고 중종을 떠받들었다. 기사본말체 역사서인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이 연산조에만 유일하게 절신(節臣)’ 항목을 두어 홍언충(洪彦忠유기창(兪起昌김숭조(金崇祖남세주(南世周) 등 중종 이후에도 벼슬을 거부한 네 사람을 적고 있는 이유는 이런 세태 때문일 것이다. [이덕일, 소절과 대의]

 

언젠가 서울의 한 유수한 대학에서 삼국사기의 호동왕자 이야기’(고구려본기 대무신왕편)를 논술문제로 낸 적이 있었습니다. 호동왕자가 낙랑 멸망의 공을 세운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을 사관인 김부식이 소절과 대의를 들어 비판한 내용(중국의 순()임금이 아버지가 휘두른 큰 매는 피해서 도망가고 작은 매만 맞았던 고사를 적음)을 제시하고 수험생 나름대로 사관의 논조를 재구성해 보라는 문제였습니다. 요점만 추려보자면, 호동이 죽을 때 남겼다는 말(“내가 만약 부왕에게 ()어머니의 악행-호동이 자신을 능욕했다는 참소-을 밝혀서 왕의 근심을 더하게 하면 어찌 효라 할 수 있겠는가?”)과 김부식이 덧붙인 말(“호동왕자의 행동은 결국 대무신왕으로 하여금 죄 없는 자식을 죽이게 한 결과가 되었으니 오히려 소절을 지키려다 대의를 그르치게 되었다”)을 현대적 관점(천년 이상 흐른 뒤의 청소년 시점)에서 재해석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비판적 관점을 세워서 해보라는 거겠지요. 그래야 논술 문제가 성립되니까요.

 

일국의 왕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는 사서에 기록되지 않은 여러 불가피한 상황이 존재했을 것이다.” “동아시아 지도가 크게 바뀌는 격변기에 권력을 둘러싼 여러 가지 암투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정략결혼으로 고구려의 침략을 막아보려 했던 낙랑국왕 최리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스스로 소리를 내는 북과 피리를 공주가 못쓰게 만들었다라는 기록은 낙랑성 내부의 배신자들이 고구려 군사에 일제히 호응했다는 사실을 설화적으로 윤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죽음을 효와 불효의 문제로 윤리적으로 초점화하는 것은 낙랑보다는 고구려에 비중을 두고 역사를 기술하는 입장 유학자였던 김부식의 충효 중심 사관 등에 의한 필연적인 역사적 왜곡이라고 볼 수 있다.” 등등 여러 가지 논점들이 나올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학교 측에서 신문지상에 공개한 최고의 답안은 자기 아내(연인)에게는 자명고를 찢어 나라에 불충하고 부모에 불효하게 한 자가 자기는 자신의 부모에 대한 불효를 내세워 자살을 한 것은 아주 잘못된 (도덕적으로 나쁜) 처신이라 할 것이다.”였습니다. 대구 출신 한 여학생의 답안지였습니다. 이미 김부식은 두 사람 모두를 소절에 얽매여 대의를 그르친 사람으로 매도하고 있는 판국인데(그 두 사람이 일국의 왕자와 공주로서 자신의 처신이 당연히 국가적 차원의 의미와 비중을 가진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언급은 아예 없습니다. 이런 부분이 삼국사기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 우리가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설화적으로 왜곡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랑을 미끼로 아내를 침략전쟁에 이용한 남편의 처신을 (봉건적 성차별의 관점에서) 엄히 나무란다는 것은 논점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논술입니다. 누가 봐도 생각 없는 소녀의 감정적인 발언인데 출제자(채점자)누구도 보지 못했던 (사실은 자기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보았다는 투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왜 그 사실을 여태 몰랐을까요? 아니, 사람들이 왜 그 점에 대해서는 아예 입에 올리지 않았을까요? 그 점을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았으면 그런 터무니없는 오답 만들기는 없었을 것입니다(공자는 대놓고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듣기에 시원하다고, 마치 정곡을 찌른 것처럼 대접 받아서는 안 되겠지요. 문제의 답을 써야지, 바른생활의 도리를 써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생각해도 참 재미있는 출제자(채점자)들이고 순진무구한 수험생입니다.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라는 제목을 내걸고 엉뚱한 논술 이야기만 늘어놓았습니다. 요즘의 의리대의보다는 소절에 너무 치우쳐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던 것이었는데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샛길로 새고 말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獨臂刀)>라는 영화는 아주 옛날 영화입니다. 50년도 전에 상영된 영화입니다. 그 줄거리는 자신의 한 팔을 잃게 만든 못난 옛 친구들(스승과 그의 가족, 동료들)이 큰 위기에 처했을 때 의리를 지켜 그들을 구해준다는 내용입니다. 팔이 한 쪽밖에 없어서 영영 칼을 잡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반 동강난 칼로 한 팔로 익힐 수 있는 절세의 무공비급을 얻어 불세출의 검술가가 된 주인공이 대의(大義, 인간의 도리)를 실현한다는 전형적인 가족주의’ ‘의리형무협 영화입니다. ‘가족의리앞에서는 그 무엇도 날뛸 수 없다는 무협 영화의 한 정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영화입니다. 최근의 영화 중 <무협>이라는 영화가 이 가족주의의리의 정석을 영화의 주제로 삼고 있어서 흥미롭게 본 적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무협>에서 절대악으로 군림하는 무패의 살인마가 바로 <의리의 사나이>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라는 것입니다(王羽라는 홍콩배우). 더 재미있는 것은 <무협>의 주연배우 견자단이 마지막에 한 팔을 잃고 독비도를 쓰면서 왕우에게 대항한다는 것입니다(실력으로는 절대강자인 스승-양아버지-을 죽일 수 없으나 그의 몸에 쇠를 감아서 하늘의 번개를 이용해 그를 죽입니다). 영화평론가들은 그 대목을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에 헌정된 장면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런 것을 오마주(hommage)라고 하죠? 영화에서 존경의 표시로 다른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것을 뜻한답니다. 원래 오마쥬는 프랑스어로 존경, 경의를 뜻하는 말이랍니다. 영화에서는 보통 후배 영화인이 선배 영화인의 기술적 재능이나 그 업적에 대한 공덕을 칭찬하여 기리면서 감명 깊은 주요 대사나 장면을 본떠 표현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무협>의 오마쥬는 그 자체로 예술적이기도 하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양선규 소설가/대구교육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