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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8.23 09:36
어느 이상주의자의 죽음
/최서림
마침내 그도
책장에서 먼지 쌓인 『자본론』치워버렸다.
그렇게 한 시대가, 한 시대의 꿈이
한 사람씩에게서 지워졌다.
검사시보, 그에게도 싸움은
생각보다 빨리 끝이 났다. 아니,
스스로 <적>이란 단어 지워버렸다. 아니,
통속적으로 그러나 침통하게
스스로 적이 되어 적과 싸우려 했다.
그 단어 너무 쉽게 지우는 순간,
골수에 핏속에 잠복해 있던
사이보그 같은 촌충 같은 또 다른 적이
서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철갑 촌충과의 지리한 싸움은
두 번의 감방에서 시작되었던 것,
검사시보, 가벼운 체중은
감방에서보다도 고시할 때보다도
형편없이 더 내려갔다.
벌레가 그의 잠을, 진액을 다 빨아 먹어버린 것,
<적>이란 단어 지우는 순간
그에게 휴식은 사라진 것,
스스로 몸속 벌레를 닮아간 것,
새로운 적을 만드는 데 실패한 검사시보,
마침내 그는
잠을 위해
20층에서 몸을 날렸다. <최서림 시인/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