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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평전

<김춘수 평전 > 후일담

작성일 : 2023.11.02 07:54

<양왕용의 탐사 후일담>

 

스승 김춘수와 제자 천상병의 사제 시비 제막

 

양 왕 용

 

필자는 지난 20208월호부터 202210월호까지 <양왕용의 탐사>라는 제목으로 <김춘수평전>을 연재하여 민윤기 시인의 배려로 김춘수 은사님이 100 살 되는 20221125일 자로 김춘수평전(문화발전소)을 책으로 내었다. 그리고 그날 은사님의 고향 통영에서 김춘수 시인을 사랑하는 통영 사람들의 모임인 <통영 예술의 향기> 회월들과 함께 화기애애한 북 콘서트를 가졌다. 최근에 <유 튜브>에 제 이름을 쳐보니 그 전모를 촬영하여 올려놓은 것이 있어서 새삼 감회 깊게 본 바 있다. 필자는 탐사를 하는 과정 동안 통영 , 마산, 대구, 서울 등지에서 앞으로 탄생 100주년 이후에도 김춘수 시인을 기억하고 아직 전집에 수습되지 않은 많은 산문들의 발굴과 확정되지 않은 머물었던 공간과 기념 시비와 문학관 건립 등을 소망한 바 있다.

그러던 차에 202362일 마산고등학교 임채환 교장이 지난해에는 세우지 못한 스승 김춘수 시인과 제자 천상병 시인의 사제 시비를 세우겠다면서 자문을 청해왔다. 자기가 8월말로 정년이라 그 전에 완공하겠다는 것이었다. 시비에 새겨질 시는 김춘수 시인의 경우 마산고등학교 가교사 시절인 1952년에 쓰여진 대표작이자 국민과 시인들의 애송시인 으로 하고 천상병의 작품은 어느 것이 좋겠냐고 물어 왔다. 그래서 임 교장과 천 시인의 말년의 대표작 귀천문예초회(19521월호) 추천작 강물(유치환 시인 추천)그리고 마산중학 5학년 때 대구에서 발간된 죽순(1949.6 통권 16)에 추천된 空想피리가운데 어느 작품으로 할 것인가를 고심하였다. 그러다가 마산중학 5학년 때의 작품 가운데 하나를 하자는 데에 의견의 접근을 보았다. 그런 후 대구문학관에 연락하여 말만 듣던 죽순의 작품 두 편을 스캔으로 전달받았다. 54페이지와 55페이지에 걸쳐 세로로 편집된 두 편은 <추천>이라는 표시와 함께 空想 外 1이라는 제목 옆에 馬山中學五年 千祥炳이라고 밝혀져 있었다. 이 자료로 김춘수 시인이 천 시인의 5학년 담임으로 그에게 보여준 작품을 바로 청마에게 보내어 추천의 절차를 밟은 것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더욱 뜻깊은 것이라고 생각되어 두 편 가운데 보다 서정적인 피리로 결정하였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피리를 가졌으면 한다

달은 가지 않고

달빛은 교교히 바람만 더불고――

벌레소리도 죽은 이 밤

내 마음의 슬픈 가락에 울리어오는

! 피리는 어느곳에 있는가

옛날에도

달 보신다고 다락에선 커다란 잔치

피리 부는 樂官이 피리를 불면

고운 宮女들 춤을 추었던

나도 그 피리를 가졌으면 한다

불 수가 없다면은

만져라도 보고 싶은

이 밤

그 피리는 어느곳에 있는가

 

이렇게 작품을 결정하고 그 진척만 지켜보고 있는 동안 필자는 그 동안 코로나로 방문하지 못한 동경 방문의 기회가 생겼다. 623일부터 25일까지 월간 시인 제작팀과 서울 시인협회 회원 일행 14명과 같이 일본 동경을 23일 동안 탐사하게 된 것이다. 그 전모는 이미월간 시인20238월호에 김종숙 시인의 취재기 <일본 도쿄 23>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은사님이 다녔던 일본대학 본관 자리는 법정학부 건물이 되어 있었고 릴케를 만나 시인의 길로 들어선 간다 고서점가는 많은 서점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필자가 19971월 제자들과 <일제강점기 재일한국인의 문학활동과 문학의식연구>라는 연구 과제 수행 차 일본을 방문해 한나절을 머물었던 고서점가와는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6개월 동안 구금되어 있었던 세다가야 경찰서 자리는 필자는 일정에 쫓겨 못 찾아 갔으나 우리 일행 보다 하루 더 머물었던 홍찬선 시인이 찾아가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 자리에 있기는 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이 여행의 결과 일본 현장을 탐사한 셈이 되었으나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다시 한 번 직접 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데 임 교장으로부터 마산고 동문 조각가의 힘을 빌린 시비 디자인이 필자에게 전달되었다. 시 두 편 사이에 김춘수 시인과 천상병 시인의 캐리캐추어와 시 원고를 주고받는 손까지 음각으로 새겨진 특색 있는 작품이었다. 717일에는 <사제 시비>라는 개념 말고 다른 좋은 제목이 없겠느냐면서 제안한 임 교장의 뜻을 반영한 <스승 김춘수와 제자 천상병의 만남>으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시비에 새길 건립 날자는 비록 늦었지만 스승님의 100회 탄신일인 20221125일로 하자는 결정도 하였다. 그런 후 드디어 100주년으로는 9개월 늦은 2023825일 오후 2시 제막식을 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지난 번 마산 행 때와 같이 권오주 시인의 승용차로 집사람과 같이 넉넉한 시간으로 출발하였다. 마산 도착하기 전에 고속도 휴게소에서 간단히 점심을 하고 마산고등학굑 정문을 들어서니 이상근 교감선생이 알아보고 교장실로 안내하여 들어서니 마산고등학교 총동창회 임원들이 반겨주었다. 이렇게 뜻깊은 시비를 세워주어 감사하다고 하니 자기들이 우리 모교에 이런 훌륭한 시인과 선배와의 인연을 기념하는 것이 오히려 영광이라고 하는 말에 필자로서는 흐뭇하기도 했다. 조금 있으니 마산고 출신인 김춘수 시인의 처조카 명유진 대현기업 사장이 도착하여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이어서 김춘수 시인의 둘째 아들 김용욱 선생과 부인, 유미 유빈 두 딸이 도착하였다. 김용욱 선생은 마산중학교를 졸업한 후 대구의 계성고등학교로 진학했기 때문에 마산고 동창들과도 여러 인연이 있는 것 같았다. 김용욱 선생과는 성인이 된 뒤에 처음 만나는 것이라 다소 생소하였다. 그러나 30여년 전의 김춘수 선생님을 뵙는 것같이 부자가 닮아보였다. 그래서 그렇다고 하니 김용욱 선생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우리 일행은 운동장 가장 자리를 지나 본관 건너편 운동장 끝자락에 마련된 제막식 장소로 이동했다. 가는 도중에 3.15마산의거에 회생된 마산고 동문들의 기념비가 보였다.

제막식은 이상근 교감의 시회로 내빈 소개로 시작되었다. 김용욱 선생과 가족소개,우리 일행 그리고 통영에서 참석한 <예술의 향기> 박우권 회장과 그 일행, 마산고 동창회 측은 가장 원로이신 홍광식(26) 변호사, 경남문인협회 회장을 지낸 김복근(27)시조시인, 김정대(31) 경남대 명예교수. 박원철(33)28대 현 동창회장을 비롯한 역대 동창회장들 그리고 지역구 국회의원인 최형두(40) 의원 등 많은 분들과 동창회 사무총장인 최영찬 (44)학교운영위원장을 비롯한 학부모들, 그리고 다수의 재학생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그리고 나서는 참석자들이 양쪽으로 늘어서서 제막식을 하였다. 흰 가림막이 벗겨지는 순간 길이 3.5m 높이 1.5m의 거대한 화강암 자연석에 <스승 김춘수와 제자 천상병의 만남>이라는 제목 아래 검게 새겨진 두 사람의 시와 캐리캐추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 시비의 설립 경위와 의의를 설명하는 게시판이 스테인레스로 제작되어 세워져 있어서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게 되어 있었다.

이어서 건립의 주체인 임채환 교장(마산고391980년도 졸업)선생이 간단한 인사말씀이 있었는데 주로 시비 원석의 소재를 밝히는 내용이라 흥미로웠다. 경남 김해시 생림면에 있는 해발 703m의 무척산에서 운반해 온 것이라 하였으며, 무척산 정상에는 연못이 있는데 가야개국 시조인 김수로왕이 그 연못물을 끌어다 가야 백성을 먹였다는 유서 깊은 곳의 돌이라고 설명하였다. 이어서 김용욱 선생의 시비 세워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말씀, 필자의 축사, 김복근 시조시인의 축사로 이어졌다. 필자는 이 시비가 세워진 경위와 의의 그리고 이러한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강조한 시비는 대한민국에서 전무후무할 것이라고 하면서 김춘수 시인과 천상병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될 것이라 했다. 김복근 시조시인은 마산과 마산고에 결핍한 서정을 채워준 것을 강조하였다. 이어서 이 시비 제작비 전액을 혼자 부담한 제 25대 동창회장 한철수 고려철강 대표이사의 축사가 있었는데 이러한 기념비적 사업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라는 겸양의 말씀에 모두 박수를 보냈다. 최형두 국회의원의 경우 채널 A 장치부 기자인 김춘수 시인의 손녀 유빈 양이 알려주어 이렇게 참석했다면서 연애시로서의 의 기능을 후배들에게 설명하여 폭소를 자아내었다.

이어서 피리의 낭송이 이어졌는데 은 손녀 김유빈 양이 피리는 마산고등학교 학생회장 김민준 군이 낭송하여 더욱 의미기 있었다. 김유빈 양은 정치부 기자로 국회 출입을 하면서 최형두 의원과의 인연을 밝혀 김춘수 시인으로 인하여 이러한 인연도 이어진다는 점에서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필자는 이 시비 건립을 202177일 마산고등학교 탐방할 때에 임 교장 선생에게 제안을 할 때만 해도 이렇게 전격적으로 세워질 것이라는 점을 예상 못했다. 왜냐하면 시비 그것도 두 사람의 합동 시비를 세운다는 것은 많은 제작비가 들기 때문에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임채환 교장이 재정은 걱정하지 말라는 자신감에 기대가 되었다. 임 교장의 노력의 과정을 이곳에서 밝히는 것이 도리라 생각되어 자세히 알아보았다. 임 교장으로서는 필자의 제안을 받고 모교 마산고등학교에서 정년퇴임하는 자기로서는 매우 뜻깊고 길이길이 기념될 사업이라 생각되어 21회 선배이자 부산의 법무법인<국제>의 대표인 홍광식 변호사와 의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31회 한철수 선배가 혼자 제작비를 감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동문들의 재능 기부 등으로 제작비는 생각보다 많이 들지 않은 2천만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코 2천만원이 적은 돈이라고는 볼 수 없다. 제작비 전액을 감당한 한철수 동문은 ()고려철강 회장으로 창원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한 바 있고 무엇보다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을 역임하여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이 투철한 기업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필자가 잠간 만나 대화를 나눈 한철수 회장에 대한 인상은 지금까지 만난 많은 기업인들과는 다른 품성을 보여주었다. 겸손하면서도 소탈한 점에서 이런 인격 때문에 선뜻 시비 제작을 감당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산고등학교는 앞에서 언급한 3.15마산의거에서 2명의 사망자와 10명의 부상자를 낸 민주의거의 참여자를 동문으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1942년에 창단한 유서깊은 야구부는 최근 임채환 교장 재직 시기인 2021년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 등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렇게 정의감과 체력의 명문에다가 김춘수 시인과 천상병 시인의 인연을 두고두고 기릴 수 있는 시비가 세워짐으로써 1950- 60년대 김춘수, 김남조, 이원섭, 이석 시인들이 길러낸 기라성 같은 시인과 소설가들(문학인 신문20221229<>1316-17 페이지 홍찬선 시인의 글 <문학인학맥 마산고 편> 참조)의 후예들이 생겨나는 문예부흥 운동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제막식에 이어 거행된 임채환 교장의 정년 퇴임식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우리 일행은 부산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김용욱 선생의 고맙다는 인사 전화와 명유진 사장의 전화를 받았다. 김춘수 시인의 마산시절 거처인 중성동 58 번지 위치 확정을 김용욱 선생과 명유진 사장이 시도했으나 확정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다각적으로 노력하겠다는 명 사장의 전화에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통영에서의 김춘수 시인 생가 구입 소식, 대구 경북대 문리대 국믄과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미발굴 산문수습 사업 소식이 하루빨리 들려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은사님의 서거 19주년인 금년 1129일 전후해서 김춘수 시인의 유족들과 마지막 제자 류기봉 ,심언주 시인들과 함께 만년의 명일동, 경기도 광주의 김춘수 시인의 유택을 방문하고 참배하는 행사를 마련하여 시행해 볼까하는 계획을 미리 글로 발표하면서 김춘수 평전낙수 즉 후일담 첫 번째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