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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수프 / 작고 외롭고 단단한 것들을 위하여 > 2-7.놓여남의 형식

작성일 : 2023.11.02 07:51

2-7. 놓여남의 형식

/양선규

문학이나 학문, 마음 수련을 하는 사람들은 한번씩 놓여나는체험을 합니다. ‘놓여난다는 것은 잡혔던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놓여날 때 황홀한 엑스터시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만 압니다. 그리고 그 놓여남의 시종(始終)과 경지 또한 사람마다 구구각색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불가(선가)의 깨달음입니다. 유명한 말로 돈오점수(頓悟漸修, 별안간 깨달아 꾸준히 수양함)라는 말이 있고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의 성령이 임한다도 놓여남의 체험에 속합니다. 예수가 자기 삶의 중심에 임하면서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됩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쓴 제임스 조이스가 말한 에피퍼니(epiphany, 한 단어의 출현에서 불현듯 오는 직관과 통찰) 역시 비슷한 내포를 지닙니다. 심층심리학에서는 주체를 구속하는 콤플렉스에서 놓여나려면 아는 것만으로는 항상 불충분하고 농밀한 정서적 체험을 동반한 에너지의 이동이 필수적이라고 말합니다. 흔히 세계가 선명하게(새롭게) 보이는 것을 경험했다”, 혹은 뒤통수가 확 열리는 체험을 했다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이런 주관적 체험을 객관화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이 어떤 효험을 가지고 있는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도 불확실합니다. 다만 태도의 유연성문제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생의 과정에서 놓여남의 엑스터시를 겪은 이들은 예외 없이 태도의 유연성을 보입니다. 자기중심의 태도를 버리고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여유를 가지게 됩니다.

 

베이징대학교 철학과로 유학을 갔다....어느 날 새벽, 잠이 들었다고 하기도 안 들었다고 하기도 모호한 순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던 어떤 신비한 느낌에 사로잡혀서는 마치 꽉 막혀 있던 기혈이 뚫리면서 몸과 정신이 질서를 찾고 순통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갑자기 많은 것들이 내게 마구 알려졌다....굉장히 짜릿했다. 학문의 위계질서, 왜 인간은 문자를 사용하는지, 왜 인간은 배우는지를 알게 된 그날 새벽, 지적인 환희라 할까, 그런 느낌으로 새벽에 일어나서 혼자 깡충깡충 뛰었다.

 

꽉 막혔던 기혈이 뚫렸다는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위의 예시는 철학자의 경우라 지적인 환희중심으로 놓여남의 체험 고백이 이루어집니다. 문학자 중에서는 카프카가 남긴 놓여남의 기록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아주 짧은 손바닥 소설로 너도 죽고 나도 죽는’, 혹은 죽어서 사는’, 자기해방의 경지를 잘 묘사합니다. 콘도르독수리라는 상징의 힘이 돋보이는 글입니다. 문학은 상징이지요. 문학은 상징을 사용하고, 또 그 스스로 상징의 지위를 얻고자 합니다. ‘제 한 몸으로 감싸는 상징이 문학의 정체성이고 모든 문학자들의 염원이 되는 것도 그런 소이에서입니다. 카프카는 생래적으로 그것을 알고 있었던 작가입니다.

 

(신사와) 대화를 하는 동안 콘도르 독수리는 조용히 귀 기울여 들었으며 나와 그 신사에게 번갈아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나는 그놈이 모든 말(자기를 죽이려는 대화-인용자)을 알아들었음을 알았고, 그것은 날아올라, 몸을 뒤로 한껏 젖혀 충분한 곡선을 그리더니 창을 던지는 사람처럼 그 부리를 곧장 나의 입을 거쳐 내 몸 깊숙이 찔러 넣었다. 뒤로 넘어지면서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모든 심연을 채우고 모든 강둑을 넘쳐흐르는 나의 핏속에서 그놈이 구제 불가능하게 익사했기 때문이다.

 

모든 놓여남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이에게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치열하게 자기 한계 안에서 고뇌하는 자에게만 찾아옵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