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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노래는 길다

<가요산책13> 송창식의 고래사냥

작성일 : 2020.08.17 09:46

 

송창식, 고래사냥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 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우리들 사랑이 깨진다 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다 해도

모두들 가슴속에는 뚜렷이 있다

한 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 우리 청춘의 날들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꿈마다 예쁜 고래를 만났다. 그것은 청춘의 가슴 속에 뚜렷이 숨쉬고 있는 것으로 너무나도 간절했으나 억압된 염원이었으므로 그때 우리들은 누구나 동해바다로 떠나는 푸른 날들의 삼등 완행열차에 몸을 실어야 했다. 동해바다야말로 푸른 날들이 한꺼번에 잃어버린 모든 것들과 깨진 사랑을 신화처럼 그대로 다시 가슴 속에 복원시켜주는 공간이며, 그곳에서 우리는 꿈속의 그 예쁜 고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날이 저물면 우리는 다시 공주식당에 모여 막걸리 잔을 높이 부딪치며 밤새 목청껏 고래를 불러야 했다.

 

제대를 앞두고 마지막 휴가로 친구가 울산에 있는 나를 찾아왔다. 둘이는 시내에서 저녁을 먹고 동해의 밤바다를 보기 위해 장생포로 갔다. 썰렁한 방파제 옆 포장마차 몇 채의 불빛이 흐릿했다. 찬 바닷바람에 실린 파도소리만이 검은 하늘에 닿고 멀리 집어등 불빛 몇 개만이 부표처럼 시커먼 밤바다에 떠 있었다. 우리는 캄캄하게 한정 없이 깊어진 동해의 밤바다를 바라보며 고래고기 수육 몇 점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마침내 한두 방울 빗발이 포장을 때릴 때 이미 우리는 많이 뜨거워져 있었다. 그날 밤 우리가 나누었던 그 많은 말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때 내가 그 즉석에서 휘갈겨써서 그 친구에게 건네준 장생포에서란 시를 지금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그때 그 장생포 방파제 옆의 그 포장마차에서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 알면서도우리는 밤이 깊어가도록 고래의 신화를 이야기했던가. 우리 먼저 장생포에 와서 고래를 기다리다 늙은 사람이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삶 그 자체가 바로 살아 있는 우리의 바다이고, 우리가 기다리는 고래야말로 삶의 바다에서 우리가 기다리는 꿈이라고 말할 때 우리도 포장마차의 불빛처럼 아득히 서러워졌던가.

 

산 너머 산 너머

그 집에는

흐리고 비 오는 날의

내 왕년이 거기에 있다.

바람 불고 낙엽 지는 날의

내 왕년이 거기에 있다.

 

나는 그 집으로 간다.

아직도 낡지 않는 깃발이

그대로 펄럭이며 반기는

지금 나는

그 집으로 간다.

 

초라한 왕년이든

아름답지 않는 왕년이랴.

 

마음 먼저 산 너머 가는 길

해 돋는 집도 아니고

언덕 위의 집도 아닌

저녁 가슴에 등불이 걸리는

그리운

고래의 집.

이승주, 고래의 집

 

내게도 고래는 비록 초라했을지언정 아름다웠던 왕년의 꿈이었으며, 지금도 저녁 가슴에 등불이 걸리는 / 그리운 / 고래의 집은 내 꿈이 아직도 거기 살고 있는 동해바닷가 추억의 집이다. <이승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