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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8.13 12:54
라파즈에서 한 시간
/김금아
뉴스를 쏟아내던 브라운관에서
플랑크톤이 떠밀려오고
볼리비아 마녀 상회에서는
상아인형들이 창문을 열고 달아난다
찢겨나간 스크린에 매달린
아나운서,
입술에 생크림 거품을 품어내며
오늘의 스폿뉴스를 쏟아낸다
스피커의 진동판 울림에서
하얀 티티카카 호수가 깨어난다
물속에 잠긴 암벽도시에서는
밀랍으로 빚은 얼굴들이
거꾸로 걸어 다닌다
사람들이 걸음을 옮겨놓을 때마다
발바닥에 붙은 건물들은
오백 주파수의 물갈퀴를 세운다
사회자가
구름 사이에 퓨즈를 꽂는다
까만 화면에서 국경이 열리고
여행자는 벌거벗은 능선을 둘러매고
호수 속으로 트레킹을 한다
티브이에서
일기예보를 들추던 아나운서가
안개 낀 보도 자료를 쏟아낸다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를 매개와 배경으로 한 이 시는 실제 그 고지대 도시에서의 한 시간을 그리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티브이화면의 뉴스에 방영되는 라파즈를 묘사하지만 사실을 그대로 그리지 않고 그 실제성을 전도된 현상으로 재구성해 묘사하고 있다. 볼리비아의 마녀상회, 그 상회의 인형들과 창문, 아나운서(사회자), 티티카카호수, 암벽도시(라파즈)와 사람들, 건물과 국경, 여행자 등은 구체성을 띠고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 구체적인 대상들이나 상황을 내면으로 끌어들여 화자의 심상풍경을 파격적으로 반영하거나 투사한다. 시인이 티브이로 본 건 스폿뉴스이기 때문에 ‘한 시간’이라는 표현도 한 순간을 주관적으로 길게 느낀 정도의 전도된 시간개념이다. 시인은 이같이 짧은 스폿뉴스를 보면서 상상력(환상)의 날개를 펼치는 과정에 실제정황을 내면으로 이입해 전도된 심상풍경을 연출함으로써 예상외의 정서적 효과나 의미 확산을 꾀하고 있다. 불연속적 이미지와 전도된 풍경 연출은 이 시에서 마지막까지 거듭되지만, 초현실적 이미지를 구현해 보일 뿐이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김금아 시인은 이 시를 통해 비약과 반전, 전도 등으로 야기되는 의미의 무화로 나아가고, 그 무화가 다시 새로운 의미로 변용되는 변신의 경이, 초월의 경이, 자아 해방의 경이를 창출하려는 ‘마음의 비구상그림’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개성적인 시다. 이태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