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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8.11 05:47
미투 투미
-아닌 밤 홍두깨
산불이 났다.
띄엄띄엄 보이던 등산객들이 급하게 산을 내려오고 있다. 불길은 사방으로 퍼져간다. 중간 중간 서 있던 늙은 소나무들을 그대로 스쳐간다. 큰일이다. 바람이 세계 불면 불길이 삽시간에 내가 있는 쪽으로 덮칠 수도 있다. 나는 너덜너덜한 바지가 불을 피하는데 거치적거릴까 봐 바지를 벗어 쥐고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자리를 피한다.
산 아래 갈림길에서 긴 치마를 입은 여자가 아직 불난 것을 모르는지 한가하게 지나간다. 나는 위험하니 치마를 벗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자는 내 말에 눈을 흘기며 산등성이를 돌아간다. 잠시 뒤 그 여자가 어디서 구했는지 홍두깨 같은 몽둥이를 들고 내 쪽으로 달려온다. 씩씩거리는 표정이 나를 사정없이 내리칠 기세였다.
“산불이 났어요, 산불!”
나는 소리쳤지만 여자는 나를 더욱 이상한 놈으로 보고 달려들었다. 여자의 인상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험악해졌다. 이럴 땐 삼십육계 줄행랑이 상책이다. 나는 어쩔 수없이 뒤돌아 도망을 간다. 마치 내가 여자에게 나쁜 짓을 하고 내빼는 꼴이 되었다. 여자는 몽둥이를 들고 따라오고 나는 바지를 벗은 채 팬티 차림으로 달아나니 누가 봐도 뻔한 장면이었다. 나는 도망가면서 그게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 달리기를 멈추고 뒤돌아서 따져볼까 하다가 상황이 너무 험악해서 그냥 도망을 친다. 여자는 계속 따라온다. 언제부턴가 여자의 남자도 따라온다. 상황이 더 험악해졌다.
앞에는 불이 타는 산이 다가온다.
진퇴양난 정말 난감하다.
<박명호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