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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7.30 11:50 수정일 : 2020.07.30 12:02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의 「꽃」
시인은 사물 그 자체와 함께 존재의 심연에 이르려 하면서 스스로 ‘사물화’됨으로써 상식의 차원을 넘어선 형이상학적 인식의 공간을 열어 보인다. ‘나’와 ‘너’ 사이에 의미 있는 관계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꽃’을 볼 수 있다고 암시하는 이 시는 그러므로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한 추구가 그 명제이며, 그 관계는 대상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줄 때 형성된다는 깨달음의 세계를 떠올린다.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서술하는가 하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내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고 한다. 이어서 ‘나’와 ‘너’의 만남은 대상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줄 때 가능하다는 인식의 눈을 뜨면서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 달라는 소망을 간절하게 토로한다. 마지막 두 행에서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라는 구절에서 느끼게 되듯, 시인이 추구하는 ‘꽃’은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다. 이 시를 제대로 읽으려면 “우리는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는 구절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내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태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