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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10.15 01:17
2-6. 고래사냥
지난 한 해 동안 가장 인기 있었던 드라마는 아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일 것입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한 천재 신입 변호사의 인간주의적 활약상을 실감나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많은 시청자들이 위로와 감동을 받은 작품이었습니다. 여성영웅 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마로는 《미스터션샤인》(tvN, 2018) 이후 최고의 시청률을 올렸습니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같은 서사장르들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입장 중의 하나를 취합니다. 낭만주의 아니면 사실주의입니다. 우리가 위로를 많이 받는 쪽은 주로 낭만주의적 서사에서입니다. 영웅의 화려한 활약상이 우리네 답답하고 지루한 현실을 시원하게 전복시켜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환상의 유혹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것은 그 선한 주제 때문입니다. 권선징악, 애국심 선양 등 윤리적 주제와, 선남선녀의 달콤한 러브라인은 대중들의 한계를 넘어선 자기 확장 의지를 고취합니다. 그래서 유사 이래로 지금껏 영웅 서사는 꾸준하게 지어지고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판타지 드라마입니다. 판타지 중에서도 상(上) 판타지입니다. “이게 과연 사실일까? 이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여도 될까?”라는 의문이 서사의 종결까지 줄곧 유지됩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그런 의미에서 순종 판타지입니다. 현실에서는 아직 보진 못했지만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믿음이 들도록 합니다. 그런 독자의 ‘순진한 믿음’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장치가 이 드라마에는 있습니다. 바로 고래환상입니다. 우영우 변호사는 자폐 스펙트럼 중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disorder)을 가진 사람입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사회적으로 서로 주고받는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고, 행동이나 관심분야, 활동분야가 한정되어 있으며 같은 양상을 반복하는 상동적인 증세를 보이는 질환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꽂혀있는 사물이나 분야에서는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기도 합니다. 우영우 변호사는 고래에 꽂혀 있습니다. 그녀에게 고래는 ‘제 한 몸으로 온 세상을 감싸는 상징’입니다. 그녀는 그것에 대해 말하기를 즐기며 특별한 시간이 올 때마다 환시(幻視) 속에서 그것을 봅니다. 그래서 동료들과의 토론 중 새로운 아이디어나 획기적인 해결책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의 고래환상은 화면 가득히 넘실됩니다. 그녀의 기쁨이 넘치는 표정과 함께 등장하는 고래환상은 보는 우리들에게도 충만한 생명의 기쁨을 선사합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아스퍼거 증후군과 고래환상의 절묘한 조합을 통해 영웅 서사 전통을 한결 새롭고 유익하게 재창조한 수작(秀作)이었습니다. 최근에 또 한 편의 고래환상을 봅니다.
이건 뭐지? 백이 무언가를 골똘히 본다. 상아로 만든 보검 같다. 아 그거? 진열장 안의 장검 같은 상아를 보고 민혜가 반긴다. 그게 바로 일각고래의 뿔이야. <중략> 정확히는 뿔이 아닌 이빨이지만, 북극에 사는 고래의 어금니가 상아처럼 길게 튀어나온 것이라고 했다. 북극고래는 유빙을 뚫어 숨을 쉬고 먹이를 잡고 적을 물리치니 어금니를 작살처럼 변형시킨 것이란다. 뿔이 아니라 작살인데? 백이 주먹을 쥐었다 펴며 작살 잡는 시늉을 해 보인다.
일제 단속을 피해 일본으로 도피여행을 떠난 고래 밀렵꾼들의 대화입니다. 그들에게는 고래는 값비싼 먹이이자 영혼의 상징입니다. 거침없는 인생 유영(遊泳)의 꿈입니다. 멋지게 뻗은 일각고래의 뿔을 보며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의 뿔이 어디에 있는지,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 마치 판타지 서사의 순진한 독자처럼 자문합니다. 제가 본 이 소설의 주제입니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