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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그레이 게이머를 위하여

작성일 : 2023.10.12 07:38

그레이 게이머를 위하여

-이경민의 <게임하는 뇌>-

/박 홍 배

1.

, 장년 시절 어쩌다 늙어 보인다는 말은 그냥 듣기 거북한 말이었고, 노인이라는 단어는 나 자신과 상관없는 단지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어휘였다. 그래서 노인의 시기가 안 올 것만 같았던 나에게도 여러 건강의 적신호로 인해 내 나이를 돌아보게 된다. 내 젊은 시절의 지금 내 나이는 노인 중에도 한참 노인이었다. 자연히 지금의 나는 지난 과거를 돌아보며 앞으로의 인생을 나름대로 정리해야 하는 노인임을 깨닫게 된다. 무심히 스쳐 지나가던 아파트 노인정을 이제는 노인정 창 안을 힐끔 들여다보면서 지나게 된다. 문제는 나이라는 숫자는 거스를 수 없지만 어떻게 하면 남보다 좀 더 건강하게, 젊게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요즈음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미이론을 쓴 라프 코스트는 늙는다는 건 뉴런을 잃고, 뉴런 간의 연결을 잃고, 우리가 만들고 준비해둔 패턴을 점점 잃어서, 주변의 세상이 노이즈로 가득 차 희미해져 가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보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노인은 언제나 새로운 문제를 다룸으로써 정신을 유연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노인은 일상생활의 활동을 뉴런의 문제 즉 인지능력 향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늙는다는 것의 가장 큰 특징은 인지능력이 얼마나 저하 되었는가로 나타나는데, 치매도 인지능력이 크게 떨어져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워졌을 때를 가리키는 용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2004년부터 어리석다는 뜻의 치매보다 인지증(認知症)’이란 용어를 쓰기로 공식화 한 바 있다.

노인 인구의 증가는 최근 들어 가파르게 진행된다. 이렇게 빨라진 고령화 속도에 발맞춰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노인 복지에 중점을 둔 노인 대책 관련 정책이 증가하고 있다. 길어진 수명으로 인한 노인 삶의 질은 다른 세대에게도 큰 관심거리이다. 노부모를 모시는 성인들에게는 노인 복지가 당장 마주한 현실적인 문제이고, 수십 년 안에 자신이 겪을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라에서 펼치는 여러 복지 정책들이 별 실효성이 없어 보일 때가 많다. 노인 인구나 지역의 사정을 깊이 고려하지 못한 체면치레용 정책들이 주먹구구식 행정으로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이런 와중에 읽은 이경민의 <게임하는 뇌>는 노인들의 인지능력 향상에 게임이 큰 역할을 할 수 있고, 제도적으로 잘 이용하면 성공적인 노인 정책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을 접하고 일단 제목이 썩 마음에 들었다. ‘게임하는 뇌’, 게임은 내가 최근 관심을 갖는 분야이기도 하다. 10년 게임물 등급 심의 관련 일을 하면서 게임의 새로운 면모를 한참 재미있어하고 있다. 이전의 단순한 오락을 넘어 지금 시대의 중요한 산업이자 대인 관계 소통의 한 축이 된 게임에 몸담게 된 데 대한 자부심도 생겼고, 그동안 일반인이나 내가 가지고 있던 게임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몇몇 게임 관련 서적을 통해 바로 잡는 중이기도 하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인 이경민은 뇌인지과학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지학회장과 서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장을 맡기도 했고, 작고하기 직전까지는 게임문화재단 산하의 <게임과학연구원>의 원장을 맡았다. 특히 인지신경과학과 임상 신경학 분야의 다양한 주제와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의 종교와 과학, 비디오와 게임을 통한 뇌 발달과 뇌 건강 증진 등의 주제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해왔다고 한다. 한편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과학적 근거하에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과학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연구를 지속해 왔다고 책날개에서는 소개하고 있다. 이 책도 그런 연구를 바탕으로 마련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을 읽는 내내 든 생각 중 하나는 저자를 꼭 만나고 싶다는 거였다.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최근 게임에 대한 나의 긍정적 사고도 더 견고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필자도 게임문화재단 산하의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어 기회가 되면 만나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비보를 듣게 된 것이다. 책 읽기를 마쳤을 즈음, 이경민 교수가 미국 출장 중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재단에서도 연락이 왔기에 우리 위원회 이름으로 조화를 보내긴 했지만 정말 안타깝고 슬픈 소식이었다. 마치 가까운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듣는 것 같았다. 아마 학계에서나 게임 관련 단체에서는 오래도록 이경민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경민 교수의 명복을 빌면서 <게임하는 뇌>의 일부를 소개해 본다.

 

2.

요즈음은 노인들이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 운동과 음식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기도 하고, 오락이나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여행에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과거에는 단순히 즐기거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하는 행위들이었지만 이제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그리고 치매 예방을 위한 인지능력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보통 인지하다라는 말은 무언가를 안다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인지 기능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저자는 세상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세상에 적응하고, 세상과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총체적인 능력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게임을 통한 노인과 인지 기능과의 관계를 이 책에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우리 할머니의 뇌건강을 위한 비책>, <내 나이가 어때서, 게임하기 딱 좋은 나이>, <엑서 게임이 채매 예방에도 효과적일까>란 단락의 제목들이 저자의 그런 의도를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나이가 들면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현상을 인지 노화라고 하는데, 저자는 인지 노화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기능이 주의 집중력이라 설명하고 있다. 주의 집중력은 곧 뇌가 돌아가는 속도를 말한다. 이 속도는 나이가 들수록 느려진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생각을 하다가도 속도가 느려져서 깜빡깜빡하거나, 무언가를 하기 위한 계획을 머릿속에서 되뇌다가 막상 하려는 순간에 잊어버리기도 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경우에 <뉴로 레이서> 같은 게임을 통해 훈련한다면 뇌가 돌아가는 속도, 즉 주의 집중력을 향상시키거나 유지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저자는 실제 실험의 예를 인용해 설명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신경과 연구팀은 <뉴로 레이서>라는 비디오 게임을 실험에 이용했다. <뉴로 레이서>는 여러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게임이다. 해당 게임으로 주의 집중력을 트레 이닝했더니 나이가 많은 참여자도 인지 기능이 저하 되는 것을 억제할 수 있었다. 즉 주의 집중력이 젊어졌 고’,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전환 능력 등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그 효과가 6개월가량 지속돼 장기적인 치료 효과도 확인할 수 있었다. (102)

 

그레이 게이머는 노년층 게이머를 가리키는 말로, 우리에게는 조금 낯설지만 서구권에서는 이미 한 세대를 특징짓는 단어로 자리 잡는 추세라고 한다. 지금 노인들이 젊은 시절이었던 1980년대에는 동네마다 전자오락실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사회활동이 줄어들자 어린 시절에 게임을 경험했던 60대가 게임 인구로 합류했고, 게임을 아이들이나 젊은 세대의 전유물처럼 여기던 고정관념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저자도 이런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 지금은 퍼즐 게임이나 그림 맞추기처럼 단순한 게임을 즐기는데 그치고 있지만, 게임에 대한 이해가 좀 더 늘어나면 많은 연구자나 개발자들에 의해 노년층의 인지 기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임이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음의 연구 결과를 덧붙인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연구진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비디오 게임의 이용 정도와 그들의 정서, 사회적 삶의 질을 평가했다고 한다. 그 결과 비디오 게임을 한다고 답한 응답자들은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삶에 대한 만족도나 행복감이 훨씬 높았고,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우울증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났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신체 노화로 인하여 평소 운동량이 적어진 노인들에게는 머리만 쓰는 게임보다 엑서 게임이 더 유익할 것이라 말한다. 엑서 게임은 운동이 동반되는 게임으로 인지과학, 신경과, 의학에서 강조하는 뇌 건강에 좋은 게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엑서 게임은 개발 초기 단계부터 치료를 목적으로 노인들의 인지 퇴화를 늦추거나 기능적 개선에 도움이 되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개발되어 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저자는 노인들이 게임을 하는 만큼 그 수준이나 시간에 대한 적정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게임을 통해 인지 기능을 개선하고자 할 때는 1회의 플레이 시간보다 전체적인 플레이 기간이 더 중요하다. 즉 게임을 단숨에 많이 하는 것보다 기간을 두고 꾸준히 참여했을 때 게임이 주는 이익을 체험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과유불급, 게임을 무조건 많이 한다고 해서 인지 기능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한 이용은 되려 중독과 같은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휴대용 전자기기의 발달로 게임은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익숙한 오락거리가 되었다. 그래서 추후 게임의 활용 방안과 적절한 사용법에 대한 임상적 관점에서의 연구를 통해 게임이 접근성 높은 노인들의 인지 개선과 유지 도구로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3.

유엔에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그런가 하고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게임산업의 규모를 생각해볼 때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임을 실감하게 된다. 202012월 발표된 국내 게임 시장의 규모는 연간 155,750억 원으로 세계 5위 수준이다. 우리나라 영상산업의 규모가 연간 5조 원 안팎인 점에 비추어보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 동안 국내 게임산업은 연평균 9%에 달하는 성장을 보여주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3.3%였던 것과 비교하면 그 성장의 부가가치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시장에 견주어도 우리의 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연간 205조 원의 세계 시장 규모도 10년 동안 매년 약 5% 성장의 결과라고 하는데 성장 속도가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인 셈이다. 이런 사정을 놓고 볼 때 게임산업의 성장은 우리나라가 확실한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중요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이런 조건을 감안할 때, 노인 인구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노인 문제 해소를 게임과 결부시키는 것은 아주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도 다음 사항을 지적한다.

피아의 구분과 옳고 그름의 구분을 쉽게 해 버리는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분법적 태도로 일관한다. 절친한 친구와 가족에 대해서는 다면적으로 이해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지니지만, 몇 번 만날 일 없는 누군가의 첫인상에 대해서는 좋다혹은 나쁘다로 단순하게 판단해 버린다. 이분법적 사고는 편하다. 그러나 편한 것이 반드시 유익한 것만은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분법적 사고는 양극 사이에 존재하는 많은 것을 희생시킨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학부모들의 그 이분법적 사고로 인해 게임을 즐기는 많은 청소년이 피해를 보았다고 분석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분법적 사고로 그레이 게이머를 보는 잘못된 사회의 시각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놀지 말고 공부해!”공부해야 하는데 게임만 한다.”라는 말로 귀결된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의 인지 기능과 뇌를 발전시킨 주역 중 하나는 놀이였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쓴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게임에 대한 지식을 인지 기능 측면에서 넓히는 것을 목표로 삼아 이항 대립적 사고 안에서 놓치 는 것은 없는지 분석하고, 게임에 대해 이해하며 슬기로운 게임 생활을 영위하는 방법을 제시하도록 했다. (239)

이 책의 독자와 수많은 연구자, 정책 집행자의 충분한 관심을 통해 게임에 대한 논의가 이분법으로 인해 두 진영의 편 가르기로 전락해 버리지 않고 건설적인 게임 플레이 환경과 지침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기를 기대 한다. (240)

 

즐겁고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어느 세대에게나 꼭 필요한 삶의 조건이다. 특히 노인들에게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관심 가져야 할 조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직은 여러 기술적 미비로 그런 정책적 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그 조건을 충족시켜줄 매체 특히 게임이 노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면 이 사회는 하나의 큰 짐을 덜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길을 안내하고 있는 소중한 지침서다. 컴퓨터나 모바일로 게임을 즐기고 있는 노인들의 환한 미소가 기대된다.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 위원장, 문예타임즈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