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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예유근의 시간기억

서양화가 예유근의 시간 기억

- 기억의 더께 다섯. - 꿈을 먹고 살던 고교시절

작성일 : 2020.07.22 02:07 수정일 : 2020.07.24 12:10

서양화가 예유근의 시간 기억
- 기억의 더께 다섯. - 꿈을 먹고 살던 고교시절

1970년 부산고진학에 실패한 후, 영도의 집에서도 아주 멀고 먼 동래고등학교로 한용식(디자이너)과 함께 진학하였다. 이유는 1년 선배인 안석준(한국화가)형의 권유도 있었고, 민병표미술선생님의 추천과 진병덕선생님의 인품도 한몫했다.
 영도에서 동래까지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언제나 만원버스인 82번을 타고, 또 내리면서 참 많이 걷고도 뛰었다. 어쩌면 아직도 잘 견디어주는 나의 기초체력은 두꺼운 책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달린 고교시절에 갖추어 진 듯하다. 더구나 툭하면 선배들의 집단 폭행 속에서도 감수성 예민한 좀 유별난 학생이 많았던 미술부는 전통을 강조하며 심하게 때리며 그림 훈련(?)을 시켰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한 학교폭력을 당연한 일과처럼 격고 다녔다. 수업시간의 일부 선생님도 마찬가지로 조금 반항적인 학생에게는 엄청 때렸다. 선생님께 맞고 분을 풀지 못한 좀 별난 친구는 도끼를 들고 교문 밖에서 복수의 결의를 다지며 때린 선생님의 퇴근을 기다리기도 했지만 거의 미수에 그쳤다. 군사 독재시절의 잔재였던 교련과 함께 대학진학과 출세가 인생의 모두인 듯 목숨 걸고 열공도 해야 했다. 교복 왼쪽 가슴에 새겨진 내 이름표 밑에는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 리본을 달고 다녔다. 이 각박한 시절의 나의 정신적 도피처는 해 지면 오로지 미술학원에 가서 그림 그리는 일이었다. 해 뜨고 등교하면 내 공부도우미 학급반장 구철수(사회복지법인 장산법인대표) 외 반 친구들과, 시문학 친구인 옆자리 짝 (고)조동식(동래구청 총무과장), 문학의 스승 같은 박태일(전경남대 국문과교수), 후배 민병욱(부산대학교 국문과교수), 김삼영(전부산예고교장), 묘수근 등의 문예반 시화전에 그림을 그려주면서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어느 정도 가지기도 했다.
 
 당시 부산시내 각 학교 미술부는 경쟁적으로 <미육회> 등의 미술실기대회에서 상을 받기위해 경쟁적으로 출전했다. 심사위원선생님도 자기 제자에게 좀 더 큰상을 주기 위해 눈치작전과 설득도 치열했다. 또 각 학교 미술부는 교내, 또는 시내 화랑이나 전시장 등에서 매년 미술전시회를 열었다. 서로들 미술실기대회에 가면 자주 보는 정겨운 얼굴들이라 서로 초대하여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특히, 부산고의 허 상, 박세형(만화가, 전한국예종교수), 박재동(만화가, 전한국예종교수), 김덕길(서양화가), 정영진(전안동대교수) 등의 작품은 지금의 모습과 어울려지어 더 강열하다. <부산데파트전시장>에서 몇 여학생들과 통기타를 치며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과 피터 폴 앤드 메리의 <500miles>를 부르던 박재동형의 모습은 팝송을 한글로 적어 겨우 외워서 뜻도 잘 모르며 따라 부르던 나에게는 잊지 못할 멋진 모습이었다. 김덕길의 부산항의 화려한 불빛이 바다에 내리 비쳐 일렁이는 황홀한 그림은 일품이었다.
동아고미전에서는 샤갈풍의 초현실적이며 염세적인 그림을 그렸던 안창홍(서양화가)이 “그림도 볼 줄 모르는 선배들이 자기 그림이 이상하다고 괄시를 많이 한다”며 나에게 툴툴거리며 하소연을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손가락에 연필을 끼워 눌림을 당하면서 선배들에게 고문을 당하던 이야기들...ㅎㅎ- 그래서 그런지, 동아고 출신의 김창민, 김응기(서양화가), 박은주(미술이론, 전경남도립미술관장), 장건조(서양화가), 강현근(서양화가), 조종호(서양화가), 강문칠(서양화가), 이동림, 주남돈 등의 모습도 선하다.
 동래고는 <동고의 날>을 기념하여 교내, 교외 남포동 <숙녀화랑>에서 전시를 하여 나는 나대로 작품의 인기가 대단했는데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아 많이 아쉽다. 전시가 끝난 작품은 모교 현관, 복도 등에 환경미화용으로 전시를 하고 졸업을 했다. 도서관의 김원갑선생님의 대형 풍경화와 진병덕선생님 작품들과 내 작품과 함께 그 후 행방은 알 수가 없다. 한해 선배 안석준(한국화가), 동기 이영길(서양화가) 정철교(조각, 서양화가), 한용식(인테리어디자이너), 류영진(재미) 한해 후배 (고)이갑재(시인, 추리소설가), 허용철(서양화가), 김홍술(목사), (고)박수용(미술교사) 등과의 남모르는 객기의 재미있던 추억은 언젠가 따로 글로 좀 남겨놓고 싶다.
(고)진병덕(서양화가), (고)김홍석(서양화가)선생님의 인품의 덕으로 선배들의 모교 후배 격려 방문도 많았다. 특히 조기수(조각가), 백성도(서양화가), (고)권상오(공예가)선배는 자주 뵈었고, 이추복(건축가), 조승래(디자이너), 남순추(서양화가), 안석준(한국화가) 형들... 그리고 평생 나를 아끼고 지원해 주셨던 높고 큰 나무 (고)김종근(서양화가, 초대부산시립미술관장)선생님과 (고)김홍석(서양화가, 교육대학교교수) 두 분 과의 계속된 인연은 이때부터 돌아가실 때 까지 평생 이어져 내 작업의 버팀목이 되어 주셨다.

 나에겐 부분적 편집증적인 증세가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광복동과 남포동주변의 화랑들과 부산시 공보관전시장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본 선배, 선생님 작품의 기억들, 어린 눈으로 본 지금은 유명하고 대단한 선배님들의 옛날 모습들로 가득 차 있는 기억들이 뚜렷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저 분들보다 더 유명하고 멋진 작가가 되어야지 하는 꿈을 가지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지금도 70년대 한 분 한 분, 내가 본 그때 모습을 설명하라면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다.
 일요일은 교회(영도성결교회)에 가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교회에 미술과 관련된 일은 도맡아 했다. 기도와 찬양으로 사귄 친구 김의호(전삼성여고음악교사), 후배 강광수(목사)외 보고 싶은 친구들,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내가 직접 그린 수제 카드를 광복동 길가 좌판대위에 놓고 장사를 하던 일, 사람 많은 남포동 거리 한 복판에 이젤을 펴고 휘황찬란한 간판 빛의 도심 야경을 그리던 일, 학원의 예쁜 누나들이 <뉴욕제과점>에서 맛있는 빵과 우유를 사주던 일, 왜 이렇게 기억의 파편들을 가지고 다니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르지만 그 파편들은 아마도 그 청소년기, 나의 모든 관심의 꿈 조각들이었다.  <계속>

#고3때 미술반 앨범사진(좌상부터 예유근, (고)0종호, 허용철, 정철교, 이영길, 좌하부터 (고)박의동, 김성래, (고)박수용, 김홍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