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7. 연꽃놀이 가보자

작성일 : 2020.07.20 08:20 수정일 : 2020.08.22 10:26

연꽃 놀이 가보자

 

경주 동궁과 월지(안압지) 연꽃단지에 연꽃이 한창이다. 홍련과 백련이 연등처럼 초록의 연잎 바다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연밭 가를 걸어가면 이곳의 터줏대감인 개구리들이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 녀석들이 하도 많아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주위를 살펴야 한다. 빨리만 걸어가지 말고 주변의 풍경도 음미하라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길을 막는 것이다. 개구리와 온갖 풀벌레들이 아늑한 연잎 위에 누워 오수를 즐기고 있는 모습은 별천지를 연출하고 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하굣길에 갑자기 비를 만나면, 넓은 연잎을 밀짚모자처럼 쓰고 뛰었다. 머리칼은 비에 젖지 않았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풍경 속에 잠기면, 연잎 바다를 스쳐온 바람 속의 은은한 연꽃 향이 머리를 맑게 한다.

 

진흙을 뚫고 올라온 연대와 꽃대의 까칠한 돌기, 그 끝에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자태로 청정하게 피어 있는 연꽃을 두고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 했다. ‘더러운 곳에서 피어나지만 결코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이란 뜻이다. 불가의 수행자들은 연꽃을 보며 흙탕물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오염물질을 자양분으로 삼아 청량한 산소를 만들고 꽃까지 피우는 연처럼 번뇌와 애욕이 가득한 세상에 물들지 말고 오염된 세상을 맑게 하라는 깨우침을 얻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깨달음을 얻는다.’는 염화시중의 미소를 생각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낙조의 연밭을 걷다 보면 눈빛만으로도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다소 엉뚱하고 세속적인 생각에 잠겨보기도 한다.

 

연꽃은 불교 정신을 상징하지만 유학자들에게는 군자의 꽃이었다. 성리학의 창시자로 추앙받는 송나라의 문인 염계 주돈이 선생은 애련설(愛蓮說)’에서 나는 유독 연꽃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연꽃은 진흙에서 피어나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이 연꽃을 깨끗이 씻어도 요염해지지 않으며, 연꽃의 줄기는 속이 비어 통해 있고 겉모습은 올곧으며, 이리저리 덩굴지고 가지 치지 않고, 연꽃의 향기는 은은하여 멀리까지 퍼져도 오히려 맑고 그윽하며(향원익청,香遠益淸), 연꽃은 고고하고 꼿꼿하여 멀리서 관상할 수는 있어도 가까이서 마음대로 희롱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무수한 시인, 묵객들이 진흙 속에서도 순결하게 피어나는, 소박하면서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연꽃을 보며 세속에 물들지 않는 그 고고함을 노래하고 그렸다. 염계 선생의 수필 애련설에 나오는 향원익청, 향기가 멀리까지 퍼지는데, 그 향기는 더욱 맑다는 말은 참으로 오묘하다. 멀리 가는데 어떻게 그 향기가 더 맑아질 수 있을까? 직설화법에 익숙해 있는 우리들은 한참 동안 이 말을 음미해야 비로소 그 속뜻을 알게 된다. 군자의 덕행은 오래도록 은은하게 전해진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향기로운 사람은 그 향기가 오래간다. 멀어질수록 그 향기는 더욱 은은하고 맑게 느껴진다. 거짓과 위선이 일상화되어버린 우리 주변을 돌아본다.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우리는 평소 톱니바퀴와 디지털 계기판이 만들어 내는 기계적이고 인위적인 시간에 따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태양과 달, 별과 꽃이 만들어 내는 자연이 가르쳐 주는 시간은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잠시 심신의 피로를 풀고 재충전할 필요가 있다. 자연의 품에 안기면 모든 심신의 상처는 보다 쉽게 치유된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가다가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기가 달려온 쪽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달린다고 한다. 혹시 너무 빨리 달려 자신의 영혼이 미쳐 따라오지 못했을까 봐 영혼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당신의 영혼은 당신을 잘 따라오고 있는가. 잠시 연꽃을 바라보며 머물러 보자. 내 영혼이 지치지 않도록.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대구시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