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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09.25 11:51
지네 3- 선악수연善惡隨緣
이크, 놀라워라! 생각만도 소름 돋고 마주치면 섬뜩하고. 한 주먹도 안 되지만 주먹으론 절대 못 쳐. 너 한 놈 때려잡을 일도 적지 아니 난감하다. 빗자루로 메어친들 겹겹이 갑옷이요, 다리를 분지르자니 어느 다리 겨냥하며, 발톱을 뽑으려 한들 하세월何歲月에 끝을 보랴.
토막을 내자 하나 애초부터 토막진 놈. 헷갈리는 마디에다 어설피 동강내면 제 각각 개체분열個體分裂하여 떼거리로 달려든다. 자연시간에 배운 공부 곤충의 신체구조를 <머리, 가슴, 배>로 익힌 철없는 초등생도 생물은 3등분하면 ‘죽-는-다’고 하였니라. 두들겨도 못 잡고 토막 내면 더 날뛸 놈. 조물造物의 삼긴 대로 집게로 곱게 집어 저놈들 제일 싫어하는 햇볕에다 내다 널자. 조심조심 모셔가서 강언덕 양지볕에 훌쩍 던져두자.
소슬한 강바람이 마디마디 스며들어 몽롱한 한나절이면 저도 몰래 송장 될 터. 더듬이, 눈알, 이빨 숱한 다리 다 살리고 발톱 하나 안 다치게 빳빳하게 염殮을 하여 만고萬古의 흉물전람회에 일등상을 받게 하자.
어-화 어화넘차, 꽃상여 나가신다. 늘어진 몸뚱이에 오색실 단단 묶어 흉악범 목을 걸었다, 처마끝의 풍장風葬이라. 이승의 인연을 접어 긴 몸 편히 뻗고 대롱대롱 매달려서 지난날을 돌아보면 한세상 맺고 또 끊은 숱한 사연 생각날 터.
이 세상 숨탄것들 한둘이 아니거늘 하늘이 네 만든 뜻 어찌 우리 다 알랴마는, 만물이 넉넉한 계절 여름에만 기어나와 으스름 달빛 마루에 소름 돋게 하던 중생衆生이라. 스치는 바람이며 몸에 닿는 햇살 아래 가을 겨울 보내면서 네 한생을 돌아봐라. 오가는 숱한 물생物生들 사는 모습 어떠하냐.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화무쌍 사계절四季節에 우리네 사는 일이 달력에만 있겠느냐. 허허한 강변 들판 씽- 하고 부는 바람, 우리네 돌아길 길을 미리 보는 것 아니더냐. 풍장風葬 후 긴 세월에 무엇이 남을는지. 바람에 흔들리는 부질없는 물길에는 청명淸名도 유유하지만 오명汚名 또한 흐르려니.
유월 장마 왕대 숲에 장검으로 죽순 치듯, 단칼에 끊은 악연惡緣 마음 이리도 후련하다. 쾌재라, 기쁜 이별 다시는 만나지 말자.
저놈 흉측한 놈 장례 다 치른 후 동네방네 소문내어 액막이도 하였건만 이 무슨 연고인고, 내 허리에 동티났네. 어둑귀신 몽니 부려 사흘 밤을 끙끙 앓다 더 이상 참지 못해 신새벽에 감발한다. 펴지 못해 굳은 허리 기역자로 몸을 굽혀 대나무 지팡이에 온몸을 의지한 채 시오리 먼 길 걸어 약전거리 찾았더니 화들짝, 다시 놀라 내 눈을 부릅뜬다.
너, 지네 아니더냐? 약재상엔 웬일이냐? 살아 흉물이던 너가 죽어 인술仁術 베푸니 조물造物의 속 깊은 뜻이 여기에 있었구나. 이름도 많고 많아 토충土蟲 천룡天龍 어지럽더니 드디어 변신해서 명약名藥으로 매달렸네. 그대, 오공蜈蚣 선생 그 한 몸 다 바쳐서 날 궂어 쑤시는 몸, 허리 아파 누운 사람 뼈 속에 편작이 되어 깊은 시름 더는구나.
오호라, 그렇구나. 천불생무록지인天不生無祿之人이요 지부장무명지초地不長無名之草라. 천지天地 삼기실 제 명물名物만 삼겼으리. 지네의 살신성인 오공蜈蚣 선생 낳았으니 흉물 있어 명물 있고 부귀빈천도 얽혔구나. 그래, 그래었지. 흙에서 청자靑瓷 나고 돌 다듬어 부처 되지. 개똥도 약이 되듯 하찮은 미물微物이라도 제 소용所用은 다 있구나.
하루해 가는 길에 중도 소도 만나는 삶, 선악善惡도 수연隨緣이나 한세상 사는 길이 참으로 난감하다. 살아 있는 널 만나면 온몸에 쥐 내리고 죽은 너를 만나는 건 내 허리 고장일 터. 우연히 스친 옷깃도 천만겁千萬劫 인연因緣이라. 만나고 헤어짐이 필연必然이라 하더라만 한 생애 피하고 싶은 그런 연緣도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