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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명작 · 다시 보는 명화

이육사 청포도

작성일 : 2020.07.14 07:05

 

 

<청포도靑葡萄>를 다시 읽는다 / 왕 용

 

7월은 여름의 한 가운데이다. 여름이라는 계절은 우리에게 결코 상쾌하거나 흥겨운 정서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무덥고 짜증스럽다. 특히 올 여름은 연초 겨울 끝자락에 급습한 <코로나 19>라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전염성이 강한 급성폐렴 때문에 우리나라는 물론이요 이웃 일본과 중국 그리고 미국과 영국과 이태리, 독일 등 전 세계가 불안과 죽음의 공포 그리고 숨막힘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때 일수록 7월에서 찾을 수 있는 상쾌한 계절의 감각을 음미할 수 있는 시 한 편을 감상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7월의 계절의 감각을 상쾌하고 희망적으로 보여주는 시 한 편을 꼽으라고 하면 이육사(1904-1944)<청포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 전문을 인용해보기로 한다.

 

내 고장 七月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이 시는 행동적인 독립운동으로 감옥을 여러 차례 드나든 이육사의 생애에도 불구하고 <절정絶頂>(1939.1文章)과 함께 일본의 대동아제국 건설이라는 망상이 극성을 부리면서 모든 출판물의 검열을 강화하던 조선총독부의 검열망을 피하여 19398월 문예지 文章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으로 오랫동안 중고등학교 국정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기도 하였다. 이 작품과 함께 역시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오래 수록되어 있던 <광야曠野>는 그가 북경감옥에서 쓴 유고로 광복이후에 엮어진 유고집 육사시집(1946)에 수록되어 빛을 본 작품임에 비하여 이 시는 일제강점기에 이미 독자들에게 전달된 시이다. <청포도>의 주제는 광복에의 염원이라고 알려져 있고 특히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에 그렇게 가르쳐왔다. 그리고 그 근거로 이 작품의 넷째 연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에서 청포를 입고 오는 손님을 들고 있다. 이러한 주제가 어떻게 검열망을 피하였을까 하는 의문과 이 시를 광복에의 염원이라는 주제에만 가두어 두지 않고 의미를 확장하여 읽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시를 다시 읽어보고자 한다.

이 시의 창작 배경은 육사의 고향인 경북 안동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안동은 바다가 없는 내륙지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시적화자 는 육사가 아니라 그가 설정한 가상인물이다. 이 시의 공간적 배경은 일제 강점기 경북 포항시 오천면 구정동과 동해면 도구동 일대에 있던 포도농장이라는 주장이 197312월호 시문학에 포항에 거주하던 수필가이자 번역문학가이던 한흑구(1909-1979)에 의하여 제기된 이후 거의 정설로 굳어져 있다. 1991612일 자 朝鮮日報에는 명시名詩의 산하山河’<13>으로 문학담당 전문기자 박해현에 의하여 이 지역이 칼러 사진과 함께 취재되고 있다. 그의 연보에 의하면 이육사는 19343월 남경 군사간부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구속되었다가 8월에 기소유예로 출소한다. 그 이후 건강이 안 좋아 1936년과 1938년에는 정양 차 경주에 머물기도 하였다. 이때에 포항의 지인 집을 찾아 포도 농장에 들렸다고 한다. 이러한 체험이 바탕이 된 작품이 <청포도>이다.

이육사 시의 대표적 경향은 일제 강점기의 상황의식을 남성적인 어조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그의 나이 30세에 발표한 처녀작 <황혼>(1933,新朝鮮)에서부터 보여준 특징이다. 그리고 상황의식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비유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점은 그의 행동적인 독립운동과는 대립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시작태도 때문에 일제강점기에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만약 이육사의 저항이 행동적이 아니었다면 저항시가 아닌 순수시 혹은 본격적인 상징시라고 볼 수 있는 작품들도 있다. 달리 말하면 그는 지사의 길은 행동적이라 해도 시인의 길에는 시적 상징과 비유 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시작 태도 혹은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아마 이러한 시작 태도를 잘 보여준 작품 가운데 하나가 <청포도>일 것이다. 이육사가 시에 대하여 이러한 태도를 가지게 된 기저는 그가 조선조의 거유 이퇴계(1501-1570)14대 손이라는 그의 가문의 전통에서 왔다고 보고 있다.

우선 이 시의 시적화자에 대하여 살펴보면 그의 시에 자주 보이는 남성화자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1연과 4연 그리고 5연에 등장하는 가 결코 이육사 자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밝혔다. 그렇다면 전체적 문맥으로 보아 가상인물 는 그의 다른 시에 등장하는 일제강점기의 고통에 당당하게 맞서는 남성이라 보기는 힘들다. 식탁의 은쟁반에 청포도와 모시수건을 놓고 시중하는 아이와 함께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청포를 입고 배에 실려 올 님을 기다리는 여성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나약한 여성이 등장하는 시를 썼다고 우리는 이육사를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독립운동가 그것도 지극히 행동적인 지사라고 해서 포도농장에서 맛있는 포도를 맛보며 미각에 도취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포항 포도밭에서 피폐한 심신을 회복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에서 느끼는 주된 정서는 김현승(1913-1975) 시인이 오래 전에 지적한 청포도라는 사물에 대한 아름답고 신선한 작자의 감각’(한국현대시해설1972,관동출판사)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청포를 입고 오는 손님에 대한 의미가 확장된다. 즉 사랑하는 임, 혹은 동경의 세계를 가져다 줄 어떤 사람, 그리고 독립운동을 하면서 해외 머문 그리운 사람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다의성 때문에 시 <청포도>는 시적 성공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청포도>의 시적 공간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한 폭의 그림과 같은 감동을 가져다주는 청포도가 탐스럽게 열리는 바닷가 과수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식탁과 은쟁반은 다분히 이국적인 풍물이고 그에 대비되는 모시수건은 전통적인 이미지이다. 이러한 대비 혹은 충돌로 인하여 청포도를 맛보는 감각은 더욱 실감나게 된다. 또한 아이와 더불어 청포을 입고 오는 손님을 기다리는 여인은 다분히 기품 있는 여인일 것이고 그녀는 하얀 모시옷을 아래위로 입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면 더욱 아름다운 장면이 될 것이다. 이렇게 상상력을 발동하는 것 자체가 이 시를 더욱 가치 있게 하고 의미를 확장 시킨다. 뿐만 아니라 이와 유사한 체험을 가진 독자들은 그 때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감동할 것이고, 그런 체험이 없는 독자들이라도 7월이 되면 우리의 미각을 자극하는 청포도나 포도를 먹던 감각을 기억하며 이 시를 읽을 것이다. 물론 이육사 시에서 빈번하게 발견되는 상황의식 즉 광복에의 염원을 이 시에서 전혀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넷째 연 에서 독립투사나 애국지사의 행색이나 육신과 정신의 피폐함이 어느 정도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기보다 비유적이고 상징적으로 암시되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으로 인하여 이육사의 시 가운데 감각성이 뛰어난 <청포도>의 시적 의미가 확장되지 않고 지나치게 좁아지게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앞에서 열거한 이육사의 <절정>이나 <광야>도 문맥적 의미나 등장하는 사물들이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심훈(1901-1936)<그 날이 오면>과 같이 직접적이고 격정적인 어조가 없기 때문에 저항시로서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들 한다. <그날이 오면>을 비롯한 심훈의 시편들은 1932년 심훈의 생전에 시집으로 발간할러고 했으나 총독부의 검열에 걸려 빛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광복이 한참 지난 1949년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그의 둘째 형이 주선하여 발간하였다. 결국 심훈의 <그날이 오면>은 일제강점기에 독자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육사의 <절정><청포도>는 그 시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에 일제강점기에 발표되었고 뜻 있는 독자들에게 상황의식과 독립투사의 고뇌가 전달되었다.

바단 이육사의 작품뿐만 아니라 한용운(1879-1944)의 시집 님의 沈默(1926,회동서관)이 가지고 있는 내포의 다양성 때문에 일제강점기에 널리 배포되었다. 그러나 우리 학계에서는 한 동안 의 내포에 대하여 조국부처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놓고 어느 것이 올바른 것인지를 다툰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에 대하여 1926년 한용운은 시집 님의 침묵서문 격인 <군말>에서 <만 님이아니라 긔룬 것은 다님이다 중생이 석가의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님이다 장미화의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사랑할뿐아니라 나를사랑하나니라>라고 하여 그 의미의 다양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의 상징적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이 한용운이 바라는 읽는 방법인 것이다.

이육사의 시와 한용운의 시뿐만 아니라 김수영(1921-1968)의 유작이자 대표작인 <>에서 풀을 민초혹은눌린 자라고만 해석하는 태도 역시 올바른 시 읽기가 아니다. 이러한 경직된 시 읽기는 경직된 사고를 낳고 자기 생각과 다르면 모두 틀리고 심한 경우는 적이라고 매도하거나 증오하는 습관을 낳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러한 풍조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시 읽기의 다양한 견해는 존중돼야 할 것이고 문학교육 혹은 시 교육의 중요한 방법론으로 강조돼야 할 것이다. 이육사의 <청포도>에서처럼 우리는 싱그럽고 탄력성 있는 생각과 시적 감수성 나가서는 문학적 상상력으로 작금의 우리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