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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09.11 02:35
지네 1 - 신출귀몰神出鬼沒
/서태수
으악! 지, 지, 지네! 파리채! 에프킬라!
조용한 강마을의 평화로운 돌담집에 때아닌 비명소리. 온몸 오그라들고 머리는 혼비백산, 앞강도 파랗게 질려 물비늘이 곤두선다.
누가 너를 두고 벌레라 이름하리. 곤충도 아닌 것이 금수禽獸도 아닌 것이 한집서 마주치기엔 너무너무 끔찍한 짐승!
달빛에 반짝이는 검붉은 철갑껍질 마디마디 겹쳐 입고 관운장 언월도偃月刀를 어금니로 곧추세운 바이오bio 첨단 시대의 살아 있는 청동제품靑銅製品. 고금의 전쟁 갑옷 실밥을 다 뒤지고 만고의 철갑동물 관절까지 다 살펴도 너처럼 이음새까지 쇠로 된 놈 못 봤느니.
독하고 무섭기야 전갈도 그렇지만 그나마 그 녀석은 새우인 듯 가재인 듯 우리네 먹거리 닮아 눈에라도 익었느니. 사람들 별난 식성 전갈인들 안 먹으랴만, 네놈들 튀겨 먹는 자 어디 그리 흔하더냐.
취미도 괴상한 세상 별의별 애완용愛玩用 중 네놈을 키우는 사람 단 한 명만 데려와 봐라. 모양만 무섭다면 난들 왜 치를 떨랴. 네놈 독이 워낙 독해 한 번 물린 그 자리는 풍선처럼 부풀기에 해독제로 쌓아 놓은 숱한 약들, 먹는 약 바르는 약에 감자, 부황, 닭똥오줌….
이웃집 노인네들 대대손손 쌓은 경험은 지네들 천적으로야 토종닭이 제일이라. 네놈들 씨를 말릴 닭이라도 키우련만 비좁은 마당 어귀 어디다 닭장 짓고 어느 뉘 이 바쁜 세상 삼시 세 때 모이 주랴.
심성 고운 이웃네들, 그것도 어렵다니 창고에 그득 쌓인 농약을 주는구나. 고맙게 받아놓고는 생각이 또 깊어진다. 강마을 풍광 좋아 온갖 이웃 어울린 집에 독하디 독한 약을 집 주위에 뿌린다면 죄 없는 개구리하며 개미, 여치 몰살할 터. 자식들 훌쩍 떠난 텅 빈 시골이라. 풀섶에 어울리는 이들마저 없어지면 달 밝은 외로운 밤에 어느 뉘가 벗할꼬.
“지네가 들고나는 일은 지네 마음이라우.”
윗고을 암자 스님 그 말씀이 맞나 보다. 소리도 소문도 없이 밤마다 기어드는 신출귀몰 손자병법. 정말, 재주도 용타, 어디에 숨었다가 어떻게 들어올꼬. 방충망 이중창에 숨구멍도 막았는데 출몰이 변화무쌍하니 저놈이 007이냐. 김해벌 강변 야산江邊野山 왕대숲 욱은 마을. 뙤약볕 한나절을 무쇠로 달군 댓잎이라. 마디마디 대나무가 지네로 변신하여 밤이면 거룻배 저어 방안으로 납시느냐.
곤고困苦한 하루 일과 세상 모른 잠을 자다, 손등에 스쳐가는 스믈스믈 기는 감촉. 화들짝, 뿌리치는 밤 ‘출-렁’하는 긴 느낌! 세월은 영락없어 변소 출입 잦은 나이. 밤마다 마루에서 화들짝! 발을 드니 내 지금 이 늦은 나이에 발레춤을 배울 때냐.
수많은 발을 저어 더듬이 슬슬 흔들면서 방안을 이리저리 산천경계山川境界 구경하다 들켰다! 눈치챈 순간 잽싸게 튀는 동작은 하필이면 그 방향도 내 발밑이 아니더냐.
마당 어귀 돌아가는 무심한 발목 언저리에 풀잎이 슬몃 스쳐도 화들짝 다리를 턴다. 웅크린 네놈 두려워 걸레도 집게로 들고, 신발을 신을 때마다 속창을 뒤지는구나. 걸레나 신발이야 또 그렇다 치더라도 압력밥솥 손잡이가 어디 네놈 구멍이냐. 마누라 혼절시켜서 홀아비를 만들 테냐.
너, 정히 괴롭혀서 내, 집을 팔아버리면 요즘 같은 맑은 세상 나 같은 주인 있어 낡은 집 잡초 마당을 그냥 둘 것 같으냐. 불도저로 밀고 당겨 네놈들 땅에 묻고, 최신식 자재들로 철옹성 집을 지어 기발한 방범장치로 어김없이 다 잡을 거다. 전깃줄 울타리 넘다 프르르번쩍 타서 죽고, 현관문 빼꼼 열면 세콤이 미융-미융. 운 좋게 들어온 놈도 CCTV에 다 걸릴 터.
이 세상 떠도는 소문 거짓 아님 과장인데 소문보다 흉한 너도 조물造物의 솜씨라니. 그 뜻을 알 수 없괘라, 어찌 이리 만들었을꼬. 낙동강 굽이지는 김해벌 동산 자락. 꽃 피고 새도 울고 풀숲에 벌레 노는 대숲 속 고요한 집을 들썩이게 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