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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09.10 11:54
김춘수 시인의 생애를 스쳐간 예수와 그 시적변용
-김춘수 시인의 대구 시절 <6>
양 왕 용
김춘수(1922-2004) 시인이 예수체험을 처음으로 한 것은 그가 고향 통영에서 미션계 유치원에 다닐 때이다. 그의 회고에 의하면 댓 살 났을 때라 하고 있으나 정확한 연도는 알기 어렵다.(김춘수 신작에세이집『하느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1985,현대문학사PP4-5,머리말/내 속에 자리한 예수) 이 유치원은 통영을 선교지로 하던 호주 장로교 선교부에서 운영하던 진명유치원이다. 그리고 이 유치원에서의 예수 체험은 김 시인의 산문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가) 웬일일가? 나는 그 이유를 모르는 채로 하루 두어 번씩은 아까 이미 말한 대로 멀리멀리 한려수도가 뻗어 있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그 윤선이 그리는 가느다란 흰 파장을 느끼곤 했다.
그러다가 문득 넘치는 햇살 속을 사금파리처럼 금빛으로 반짝 빛을 내는 것이 있었다. < 그아이가 예수다!> 하는 한 소리의 울림이었다. 그것은 복잡하고 미묘했다. 내 어린 감각으로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아이는 이발소든가 공동목욕탕이든가, 혹은 그 때 막 나돌기 시작한 그림책에서든가 본 그 아이이면서 내가 탱자나무 울 사이로 엿본 그 아이기도 했다. 그것은 그대로 빛이다.(김춘수; 앞의 책 P84 「나를 스쳐간 그<1>)
(나) 침모할머니도 동전을 한닢, 손을 바구니에 깊숙이 넣어서 연보를 한다. 틀림없이 연보를 했다는 것을 확인하듯이 말이다. 거기 앉은 누구보다도 긴 시간이 걸린 듯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입에서는 쉴새없이 주님이란 낱말이 새어나오곤 했다. 나는 그때 그녀가 울고 있었다고 느껴졌다. 그때 그녀가 부르던 주님이 바로 내가 여기저기서 본 그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일깨워 준 그녀―그 침모 할머니가 웬지 싫어지기만 했다.(앞의 책PP 85-86)
앞의 두 글은 유치원 시절에 김 시인이 느낀 예수체험을 60세가 되어 쓴 글(신작에세이『하느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은 《현대문학⟫1982년 3월호부터 1984년 12월호까지 「연씨의 낮과 밤」이라는 제목으로 34회 연재한 글을 1985년에 단행본으로 엮은 책임) 이다. (가)는 여왕산 기슭에 있던 유치원에서 통영 앞 바다를 바라보면서 느낀 회상이고 (나)는 독실한 크리스천인 김 시인 집의 침모할머니를 따라 예배당에 예배를 드리러간 때의 회상이다. 이 두 에피소드는 다분히 환상적이기도 하고 감각적이다. (가)에서 ‘탱자나무울 사이로 엿본 그 아이’는 호주 선교사의 자녀이다. 김 시인 자신도 이 시기의 예수체험을 ‘어린 시절의 꿈과 같은 환상적이고 감각적 정서적 체험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으며 예수를 발가벗은 이국의 금발의 아이쯤으로 느끼고 있었을 것’(앞의 책 P4 .머리말)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 일본대학 유학시절인 청년기의 예수체험에 대하여는 김 시인의 다음의 글에서 알 수 있다.
참으로 예수체험이라고 할 수 있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은 청년기로 접어들어서라고 할 수 있으리라. 내가 문학에 듯을 두고 문학공부를 하면서 성서(신약)를 문학작품(이스라엘 민족의 고대에 있었던)으로 대하게 된 뒤부터라고 할 수 있으리라. 성서는 다른 문학작품들과는 다른 충격을 주었다. 그것은 비현실적이고도 비논리적인(기적) 대목들의 연속으로 엮어져 있으면서도 야릇한 심리적 리얼리티를 간직한 채 나에게로 다가왔다.
나는 유명한 신학자들의 신학책도 더러는 섭럽했지만, 성서만큼의 감명을 나에게 주지 못했다. 여러 사람 예수 전기 작가들의 책도 읽어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앞의 책 p4 머리말)
우선 일본대학 재학시절의 예수체험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김 시인 자신이 일본대학 시절 국내 신문에 투고한 시 「성도와 밤」(창작일;1940.7.14., 매일신보1940.11.3. 발표)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 김 시인 자신이 생전에 발표지면과 제목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부산외국어대학교 박경수 교수가 발굴했다. 그것을 필자가 이미 작품 전문을 소개한 바 있다. 앞 부분에<십자가는 눈압해보인다//두 팔 양손에전쇄가 있다.>와 같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 전쇄는 쇠사슬을 한자어로 표현한 것이다. 필자는 앞의 글에서 이렇게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모습이 시에 등장하는 것은 일본대학 시절 김 시인이 매료되어 읽은 라이너마리아 릴케의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라는 책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아마 이 당시 김 시인이 신약성경을 읽었고 직접 그 영향을 받았음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일본대학 시절의 독서체험 가운데는 기독교적 실존철학자 니콜라이 베르댜예프(1874-1948)의 영향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한 김 시인의 생각과 그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도스토에프스키의 소설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특히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오는 아버지 카라마조프가 아들 이반과 알료샤에 묻는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형 이반과 동생 알료샤의 ‘없다’와 ‘있다’로 갈라지는 답에서 많은 충격을 받았으며 이반의 하느님이 없으면 우리는 무엇을 해도 좋다는 부분이 더욱 충격적이었다고 밝히고 있다.(김춘수의 앞의 책 p93 <나를 스쳐간 그 (Ⅱ)>)
1945년 광복 이후 시인이 되고나서부터 김 시인은 시집 속에서 종종 예수체험을 기반으로 한 시들이 등장한다. 그의 첫 시집 『구름과 장미』(1948,9.1행문사)에는 「예배당」과 「막달아·마리아」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막달라 마리아’는 1980년에 발간된 그의 시집 『비에 젖은 달』(1980,근역서재) p47에서는 「둘째 번 마리아」 라는 제목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김 시인이 2004년 8월 4일 기도폐색으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서 투병하다가 11월 29일 작고한 직후인 12월 3일 발간된 마지막 시집 『달개비 꽃』(2004.12.3. 현대문학사)에는 「눈」(p 52)이라는 제목 속에 나타나 있다. 김 시인에게 막달라 마리아는 194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60년 동안 떠나지 않던 성경 속의 인물이다. 이 세 작품 속의 막달라 마리아가 어떻게 변용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싱서신학자이자 목사이고 그리고 시인인 민영진(1941-) 박사에 의하여 쓰여진 『교회 밖에 핀 예수 꽃』(2011,창조문예사) PP36-51)에서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민 박사의 이 책은 <시인 김춘수의 예수 시 읽기>라는 부제가 있는 저서로 비록 끝내 크리스천이 되지는 못했지만 한국 현대 시인 가운데 누구보다도 예수체험을 심각하게 한 김춘수 시인의 ‘예수 시’(민 박사가 명명한 용어임)에 대한 총체적 저서이다. 민 박사는 첫 작품에서는 ‘부활 체험한 막달라 마리아를 둘째와 셋째 작품에서는 창녀로 간음한 현장에서 붙잡혀 온 막달라 마리아를 형상화 하고 있다고 본다.
첫 시집 이후 김춘수 시인은 한동안 예수체험의 시편들을 창작하지 않고 있다가 1960년대 그의 시 가운데 문제작 하나인 「나의 하나님」을 창작한다. 이 작품은 1969년에 발간한 제5시집 『타령조·기타』(1969.11.25. 문화출판사)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 시집부터 무의미시를 실험하고 있다고 필자는 밝힌 바 있다.(월간 《시⟫ 2022.4 PP122-123)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 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 어린
순결이다.
삼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빛 바람이다.
-「나의 하나님」 전문(」『김춘수 시전집』,2004. 햔대문학사 P223)
여기서 우선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제목에서 표준말로는 ‘하느님’인 것을 개신교에서 만 사용하는 ‘하나님’으로 했다는 점이다. 이 제목을 김 시인은 끝까지 바꾸지 않았다. 그런데 간혹 ‘하느님’으로 바꾼 기록들이 나오는데 그것은 오류이다.
이 작품에 대하여 필자는 ` 오래 전에 이 시에서 작용하고 있는 이미지를 형이상학적 이미지로 규정하고 이 시에 등장하는 은유를 치환은유로 보았다. 따라서 하나님으로 치환되는 ‘늙은 비애’,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 ‘놋쇠 항아리’, ‘어리디 어린 순결‘,’연두빛 바람‘ 등은 원관념 ’나의 하나님‘ 과는 유사성을 좀처럼 찾을 수 없는 ’비동일성‘의 원리로 파악해야 하며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은유 속에 들어 있는 의미를 결국 관념적으로나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없기 때문에 형이상학적 특질의 시라고 보았다. 이렇게 형이상학적 특질 배후에는 ’신의 정체불명성‘ 혹은 신앙의 다양성이 자리 잡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필자 『현대시교육론』,1997,삼지원 PP206-209)
앞에서 인용한 민영진 박사의 경우 「김춘수의 <나의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응답」이라는 소제목으로 자세히 살피고 있다. (민영진, 앞의 책 PP11-23) 민 박사는 김 시인이 크리스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평신도로 보면서 김 시인의 이 작품들의 병치은유의 보조관념 하나하나에 대한 신학적 혹은 신약학적 해석을 하면서 이 작품과 김 시인의 예수체험 시편들을 ‘세계 신앙고백 역사에서 한국적 공헌’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김 시인이 ‘예수 체험 시편’을 집중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1977년이다. 발표지면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차후의 과제이나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까닭은 그것들이 수록된 시집 『남천』(1977,10.20,근역서재) 말미에 붙어 있는 <수록작품제작연도>와 ‘후기’에 김 시인 스스로 그렇게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가 김 시인이 50대 중반이며 위궤양 수술을 한 뒤이다. 시집 『남천』은 반양장 국판으로 비닐 커버가 있는 칼러 표지에 세로 편집 총 125쪽의 시집이다. 김 시인은 이 시집 마지막 부분(P110-121)에 <예수를 위한 6편의 소묘>라는 제목으로 「마약」,「아만드 꽃」,「요보라 쑥」, 「세번째 마리아」,「가나에서의 혼인」,「겟세마네에서」 등 6편을 수록하고 있다. 필자는 이 6편과 1980년의 시집『비에 젖은 달』(1980,11, 근역세재)(이 시집부터 가로 편집을 하고 있다)에 <땅 위에>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가나 마을에서」, 「땅 위에」,「둘째 번 마리아」,「서쪽 포도밭 길을」,「나자로여!」, 「분꽃을 보며」와 1982년5월호 《한국문학⟫에 발표된 「에리꼬로 가는 길」 등 총 12편을 대상으로 「‘예수룰 소재로 한 시‘에서의 의미와 무의미」라는 글을 1982년 12월에 발간된 『김춘수연구』(시인 김춘수 송수 기념 평론집>(1982,학문사PP243-234)에 발표한 바 있다.
‘예수를 위한 6편의 소묘’는 최근작이다. 앞으로도 예수를 소재로 한 시가 더 씌어질 듯하다. 예수에 대한 매력은 날이 길수록 더해 간다. 그러나 예수는 나에게 자주 주제를 강요하고 있어 거북한 데가 없지는 않다.(시집『남천』P122)
앞에서 밝힌 ‘후기’ 가운데 ‘예수를 소재로 한 시’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예수는 나에게 주제를 강요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것을 다시 이 당시에 추구하고 있던 시작의 경향을 감안하여 표현하면 무의미적 경향보다는 의미의 시 즉 시에서 관념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고백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당시 김 시인은 예수의 생애를 일차적으로 성경에서 찾을 수 있었겠지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면 다른 전기도 읽고 있었다.
E씨의 ‘예수전’을 읽기 시작했다. 예수의 용모에 대한 궁금증에서부터 허두를 떼고 있다. 듣고 보니, 성서에서는 아무 데도 예수의 용모를 말하고 있지 않다.(김춘수;「남천재수상(초). 산문집 『오지 않는 저녁』,1979,근역서재,1983,문장사 판 전집 <수필> P196 참조)
여기서 E씨는 일본 가톨릭 소설가인 ‘엔도 슈사꾸’를 말하고 책은 『예수의 생애』이 다 이 책은 1975년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정종화 번역으로 간행된 바 있다. 김 시인은 한글판보다 일본어로 된 원작을 읽었을 가능성이 있다. 엔도 슈사꾸는 이 책에서 예수를 무력하지만 약자와 소외자들을 향한 연민의 정이 피곤한 듯 보이는 움푹 파인 눈에 깃들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김 시인의 1977년의 작품 「마약」을 전문 인용해 보기로 한다.
예수는 눈으로 조용히 물리쳤다.
―하나님 나의 하나님.
유월절 속죄양의 죽음을 나에게 주소서.
낙타 발에 밟힌
땅벌레의 죽음을 나에게 주소서.
살을 찢고
뼈를 부수게 하소서.
애꾸눈이와 절룸발이의 눈물을
눈과 코가 문드러진 여자의 눈물을
나에게 주소서.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내 피를 눈감기지 마시고, 잠재우지 마소서.
내 피를 그들 곁에 있게 하소서.
언제까지나 그렇게 하소서.
-「마약」전문(『김춘수 시전집』2004,현대문핚사 P.405)
이 시는 마가복음 15장 23절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 하시다’라는 성경을근거로 하여 쓰여진 작품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시적화자는 첫 행에서는 작품 밖의 관찰자의 입장이나 그 다음부터는 십자가에 매달려 하나님께 기도하는 예수의 입장이다. 이러한 화자의 변화나 다양성은 김 시인의 ‘예수 체험 시편’ 전반에 걸쳐 있다. 이 시편 창작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이 시의 시작 배경이 될 수 있는 산문을 발표하고 있다.(김춘수; 앞의 책 p.196-197 <무리칠 수 없는 아픔>) 이 시 「마약」은 나약하지만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면서도 병든 자와 소외자들을 사랑하는 예수의 모습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지면 관계상 전문을 인용하지 못한 산문에서는 마약을 거부하는 것을 ‘민중이 겪은 모든 아픔을 어느 것도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각오였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김 시인의 예수는 다분히 엔도 슈사꾸의 예수와 상통한다고 볼 수 있으며 민중지향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 대하여 민영진 박사는 「김춘수의 <마약>에서 보는 예수의 실존」이라는 글(민영진; 앞의 책PP108-117)에서 예수의 죽음을 ‘유월절 속죄양의 죽음‘이라고 신학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예수 체험 시’ 가운데 마지막으로 쓰여진 것이 1982년 5월호 《한국문학⟫에 발표한 「에리꼬로 가는 길」이다. 이 작품은 시집 『라틴 점묘 · 기타』(1988,탑출판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가 이 작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1982년이라는 발표시점이다. 김 춘수 시인은 1981년 4월부터 1985년4월까지 제11대국회의원(문공위원)으로 활동한다. 말하자면 전두환, 노태우가 주축이 된 신군부의 민정당 비례대표가 되어 의정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이 시절에 발표된 작품이 「에리꼬로 가는 길」이고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예수체험‘은 시에서는 사라지고 이 글 서두에서 인용한 『하느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이라는 신작 에세이집의 내용이 되는 에세이 「연씨의 낯과 밤」 1-34회 연재( 《현대문학⟫1982년 3월호 –1984년 12월호)로 옮아간다.
이 에세이에 대한 글은 다음에 따로 보충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에리꼬로 가는 길」에 대하여 언급해 보기로 한다.
비가 올 듯 하고 있다.
아니
날이 어느새 개이고 있다.
잎진 감람나무 어깨가 젖어 있다.
시장기가 도는 비탈길
포도밭길을
사제와 레비인이 가고 있다.
때에 절인 그들의 아랫도리가 거무스름
젖어 있을 뿐
착한 사마리아인은 아직도
오지 않고 있다.
-「에리꼬로 가는 길」전문(『김춘수 시전집』현대문학사 p500)
이 시는 누가복음 10장 25절부터 37절까지의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 부분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예수의 비유 가운데 ‘착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알려진 비유이다. 이 비유는 유대율법사가 예수께 영생에 관한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되고 있다. 예수는 이곳에서 영생의 조건을 하나님과 이웃 사랑으로 보는데, 율법사가 다시 ‘이웃’에 대한 정의를 요구하자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등장시켜 제사장이나 레위 인이 이 사람을 무관심한 상태에서 지나쳤으나 사마리아 사람이 이 강도 당한 사람을 진정으로 보살폈다는 예화를 이야기 해주고 이 가운데 누가 진정한 이웃인가를 율법사에게 물어 스스로 고백하게 만든다. 여기서 그 당시 인종적 편견으로 상종도 하지 않는 사마리아인을 착한 사람으로 설정하였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사실이었을 것이며 이러한 인종적 편견을 깨뜨리는 예수의 강한 의지가 나타나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비유의 배후에 숨은 관념은 이웃사랑에 대한 표상이며 말보다 행동을 통한 이웃사랑을 강조한 것이다.
김 시인의 이 작품은 그러한 표상으로 이 비유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단지 예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만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 역시 시적화자의 위치가 미묘하다. 예화에서 가장 중심인물인 강도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지나가는 사람과 풍경의 변화를 묘사하고 있다. 말하자면 가장 주체적인물인 강도당한 사람이 직접 관찰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으로 설명하는 것의 타당성을 획득하는 부분이 마지막 2행‘ 착한 사마리아인은 아직도/오지 않고 있다’라는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오늘날의 현실에서 나 혹은 우리는 이 가운데 누구인가 하는 의문을 던져 볼 수 있다. 그것을 기독교적 입장에서 한정하여보면 강도당한 사람은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나오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사제와 레위인은 오늘날 지나치게 외식적으로 되어가는 성직자와 장로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정하기보다 인류 전체의 보편적인 관점에서 나 혹은 우리는 이 작품 속의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우리는 강도당한 사람 즉, 생각하지도 못한 그렇다고 옳지도 않은 여러 형태의 유형, 무형 폭력에 시달리는 피해자는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를 김춘수 시인 자신에게도 적용시켜 볼 수 있울 것이다. 김 시인의 시와 산문 곳곳에 일제 강점기의 감방체험이라는 폭력에 대한 공포가 에피소드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를 발표할 때에 김 시인은 신국부의 폭압정치에 의하여 어쩌다가 국회의원이 되어 억지춘향으로 의정 활동을 하였다. 그 때의 권력과 폭압에 대하여 어쩔 수 없는 심정이 이 시 속에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닌지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필자는 김춘수 시인이 예수체험 시편을 창작할 무렵 그 당시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으로 번역한 성경전서 초판을 선물로 보내드린 적이 있다. 그리고 혹시 예수를 믿는 신앙인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였다. 그러나 김 시인은 예수를 문학적 소재로 활용하여 많은 크리스천을 감동시키는 시와 산문을 창작하였지만 끝내 크리스천은 되지 않았다.
*양왕용; 시인, 부산대학교 명예교수(국어교육과),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동북아기 독교작가회의 한국 축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