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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책상과 밥상 사이> 104.가을, 책을 들자

작성일 : 2023.09.07 12:02

가을, 책을 들자

/윤일현

 

 

미국의 심리학자 다니엘 골만의 저서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1996년 출간된 후 장기간 뉴욕 타임스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면서 EQ라는 용어가 학계, 기업, 학부모들에게 널리 회자하기 시작했다. 감성지수(EQ)는 지능지수(IQ)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는 마음의 지능지수를 뜻한다. 지능지수는 언어, 수리, 공간 지각 등 주로 학업과 관련된 지적 능력을 측정한다. 감성지수는 사람 사이와 조직에서 원만한 인간관계 유지를 통한 세속적 성공에 필수적인 능력의 척도로 인식됐기 때문에 그 열풍이 대단했다.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을 배양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과 독특한 프로그램이 유행했다. 지금은 이론과 논리뿐만 아니라, 남다른 감성과 감각을 가진 조직과 개인이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는 감성 시장의 시대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감성과 감동은 논리나 이성보다 깊고 긴 여운을 남긴다는 말도 맞다. 그러나 감성과 이성은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중시되거나 강조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루소는 아동기에는 감성 교육’, 그 이후 소년기·청년기에는 이성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감성과 이성은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고 감성은 이성의 발달에 전제되는 기초이고, 이성은 감성의 성숙 단계이기 때문에 둘은 필연적인 협력 관계에 있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이성보다는 감성의 옷을 입은 바람이 대선, 총선, 지방선거를 비롯해 크고 작은 민감한 이슈의 향방을 결정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한류 열풍도 감성적 성향과 무속적 상상력이 결합한 결과라고 말하기도 한다. 서울대 김상환 교수는 무속적 상상력의 특징은 감성적 충동과 즉흥성에 있다. 여기서는 형식적 균형을 깨는 파격, 비대칭을 낳는 역동적 흐름이 관건이다. 무속적 역동성은 단순히 질서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있는 것은 어떤 무질서의 질서, 비형식의 형식이다. 물론 이런 역동성은 비합리적 충동과 광신적 맹목으로 빠져들기 쉽다. 무속적 상상력이 통제 불가능한 광기로 번져갈 가능성, 이 끔찍한 위험성이 과거 한국문화의 진보와 좌절을 모두 설명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흥분하고 감정에 지배되는 경향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성적 사고가 더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이성이란 본능·충동·욕망 등에 좌우되지 않고 스스로 도덕적 법칙을 만들어 그것에 따르도록 의지를 규정하는 능력, 올바르게 사물을 인식하는 능력을 말한다. 감성은 욕구 또는 본능을 가리키며, 그것은 이성에 의해 억제될 수 있다임마누엘 칸트의 이 말은 무조건 동의하기는 어려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괴테와 실러 등이 주도한 독일의 질풍노도 운동은 자연, 인간의 개성, 감성 등을 앞세운 낭만주의 운동으로 그때까지 유럽 지성계를 지배하던 계몽주의의 합리성, 즉 이성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러나 확고한 뿌리 없이 폭풍처럼 밀어닥친 낭만주의라는 일시적 현상은 이성을 꺾을 정도로 지속적인 위력은 발휘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성은 다시 본래의 힘을 회복하게 되었다. 감성과 이성은 우리 삶에 필수적인 요소로 상호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유난히 무덥던 여름이 물러나고 책 읽으며 사색하기좋은 가을이 왔다. 독서를 통해 다양한 추체험을 하지 않은 사람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자기 하나만의 세계에 감금되기 쉽다. 독서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알게 하여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보편적 가치에 비추어 성찰하게 해준다. 독서는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지혜를 제공한다. 독서는 지적인 유연성과 다양성, 탄력성을 배양하며 정신과 영혼의 힘을 길러준다. 책을 읽지 않는 곳에는 신도 침묵을 지키고, 정의는 잠자며, 과학은 정지되고, 철학도 문학도 힘을 잃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너무 들뜨고 소란하여 차분해지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에겐 냉정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사태를 직시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감성 없는 이성은 공허하고, 이성 없는 감성은 맹목이다라고 한 칸트의 말을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맹목적인 추종과 편 가르기, 냉소와 저주, 증오와 분노가 일상화된 시대에 이성 없는 감성이 어떻게 공동체를 피폐하게 하는지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나라가 산다.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