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인문학 수프
작성일 : 2020.07.05 09:06
<인문학수프7> 원치 않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양선규<소설가.대구교육대교수>
원치 않는 것이지만, 예고 없이, 혹은 정해 놓고, 찾아드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주로 트라우마성 기억들이 불러오는 불편한 생각들입니다. 제겐 여름이 되면 수박과 관련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불쑥불쑥 찾아듭니다. 최연소 상인으로 시장 골목에서 좌판을 벌이던 때의 기억입니다. 한 여름, 학교도 다니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로, 그날 팔지 못한 수박을 의무적으로 먹어치우던 그해 여름이 생각납니다. 시원한 수박을 먹다가 목이 멘다면 웃을 이도 있겠습니다만, 맛도 모르고 밥 대신 배가 터지도록 먹던 그때 그 수박이 제겐 영원한 트라우마입니다. 이 ‘수박 트라우마’가 모종의 심술로 둔갑해서 종종 제 주변을 괴롭힌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양상에 대해서는 상대가 있는 관계로 초고에는 있었으나 출판 시에는 빼기로 하였습니다. 설혹 가족이라도 프라이버시는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수박 트라우마’ 이외에도 스스로를 괴롭히는 자학적인 ‘원치 않는 생각’들이 제게는 많습니다. 사계(斯界, 그 전문 분야)에서는 그것을 ‘강박’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강박증은 어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끊임없이 생각이 나고(강박사고), 불안해서 특정 행동(강박행동)을 반복하는 질환이다.”라고 흔히 말합니다. 예를 들면, 문을 잠갔는데도 걱정이 돼서 계속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는 것 같은 것도, 별 것 아닌 것 같은데도, 거기에 해당한답니다. 그렇다면 제 경우는 차에서 내린 뒤 차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재차 확인하는 것이 거기에 해당되는 것이고, 집사람의 경우는 외출할 때 꼭 가스불 제대로 꺼져 있는지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하는 게 거기에 해당되는 것이겠습니다. 물론 그것 말고도 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하나만 봐도 우리 부부는 영락없는 강박증 환자 커플(환상의 커플)입니다.
...강박증의 특징은 ‘원치 않는 생각’을 계속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죽일 것 같은 생각 *몸이 더러워지거나 병균에 감염될 것 같은 걱정 *물건이 제자리에 정확하게 놓여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물건인데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걱정 *외설스럽고 성적인 생각 등이 대표적이다. 세브란스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세주 교수는 “과거에는 이런 생각을 하루에 한 시간 이상, 8회 이상 할 때 강박증으로 진단했지만, 최근에는 생각의 양보다 직장 업무, 가사 등 일상생활에 끼치는 영향을 보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원치 않는 생각’은 불안, 초조, 긴장감을 불러오는데, 환자는 이를 해소하려고 특정 행동을 반복한다. *청결(반복해서 씻기) *확인(가스불이나 문 잠금 계속 확인하기) *정리(물건 제자리에 두기) *수집, 저장(과도한 쇼핑과 물건 모아두기) 등이 대표적이다.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거나 단어를 반복하는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강박사고도 있다. 김세주 교수는 “강박행동은 은밀하게 하는 경우가 많고, 행동 없이 생각만 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어 주변 사람이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금숙 기자, 조선일보, 2012. 8. 22]
제 경우에는 스스로 생각해 볼 때(전문가에게 상담해 본 결과는 아닙니다), 자신감 결여와 타자(기계 포함)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는 강박성 불안증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그런 것이 제 안에 자리잡게 된 드러난 사건도 두어 번 있었습니다(그것들이 모든 것의 원인이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던 도중에 천변(川邊) 길에서 당한 낙반(落磐) 사고와 20대 중반 군대 시절 때 당한 고속도로 상에서의 대형 교통사고가 그것입니다. 앞의 것은 제 글에 자주 등장하는 대구의 달성공원 옆으로 나 있던 개울가를 걷다가 당한 사고였습니다. 아직 복개가 되지 않았던 부분을 까불까불 모서리만 찾아서 걷다가 2~3m 높이에서 거꾸로 떨어져 쇄골이 부서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지금도 제 오른쪽 쇄골은 툭 튀어나와 있습니다). 마침 하수구에서 나온 물들이 조금이나마 흐르고 있어서 더 큰 부상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부터 제가 하는 일에는 늘 스스로에 대한 불신감이 따라다녔던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자신감으로부터 좀 더 격리되었습니다. 실수나 실패에 대한 예감이 시도 때도 없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불안이 고착되었던 것입니다. 거기에다 한창 나이에 겪은 큰 교통사고가 불을 지른 형국이 되었습니다. 단체로 부대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다가 고속도로 상에서 곡물을 가득 실은 대형 트럭과 정면충돌을 하는 사고를 겪었습니다. 선혈이 낭자한 차체 안에서 별 부상 없이(하급 장교라 뒷좌석에 앉았다가 화를 면했습니다) 뛰쳐나올 수는 있었지만 그 뒤로는 사람(운전자)과 기계(차량)에 대한 불신감 때문에 기차 이외의 교통수단에는 몸을 싣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사실을 모르고 대구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가(그것도 가장 앞자리) 서너 시간을 꼼짝없이 ‘죽음까지 파고드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끔찍한 무간도행 버스여행을 했습니다. 군복 입은 젊고 멀쩡한 장교 체면에 도중에 내려달라고도 할 수도 없고, 비명도 지를 수도 없고, 그저 얼굴이 샛노랗게 변하도록 꼼짝 못한 채 죽은 듯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그 덕에 차는 남들보다 일찍 사서 타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대인기피증, 광장공포증, 공황장애 같은 증세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일일이 다 밝힐 수는 없습니다만 남모르는 고통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런 것들이 저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글을 쓰고(본격적인 자기부정), 검도를 배우고(거의 미친 수준), 담배를 끊고(일신우일신), 신앙생활을 다시 이어가면서 조금씩 그 ‘두렵고 낯선’ 오래된 친구들과 헤어지는 방법들을 강구했습니다. 신문에 실린 위의 인용문에 따르면, 강박증은 신체적으로 대뇌 전두엽의 안와피질(눈 바로 위쪽에 있는 부분)이 과도하게 활성화된 결과랍니다. 이 부분에서 적절한 행동을 하도록 사람을 통제하는데 그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긴 결과라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는 대뇌의 미상핵(대뇌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부위)에 이상이 생기면 자신의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정보(첩보)를 필터작용 없이 사고에 반영하게 되어 지나치게 걱정을 하는 등의 ‘원하지 않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고 합니다(고속버스에서의 지옥행 경험이 바로 그 예가 되겠습니다). 강박증은 대체로 이 두 가지 기능에 동시에 이상이 생겨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추정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스트레스는 이 경우에도 역시 ‘약방의 감초’입니다. “강박증의 소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왕따를 당하거나 가족이 사망하는 등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면 강박증이 나타나기도 한다.”(서울아산병원 신용욱 교수)는 것이 학계의 소견입니다.
신경과학적 측면에서 보는 강박증은 생물학적 이상 상태에서 오는 것이니 당연히 약물치료나 외과적 처치(수술)를 통해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는 대상입니다. 그러나 쉽게 된다고 그 길을 선택하는 건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사람의 몸, 특히 뇌나 순환기 부분의 질환에 대해서는 좀더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합니다(나이 들어 고혈압 약을 복용해 보니 그 부작용을 실감하겠습니다). 목전의 해결책보다는 그것들이 찾아온 경로를 역주행해서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는 게 부작용이 훨씬 덜한 방법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글 제목으로 즐겨 쓰는 ‘싸움의 기술’도 그런 ‘근원적인’ 해결책 중의 하나에 해당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 그런 증세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하고 현저한 장애를 겪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부단한 신체 단련이나 집중적인 정신훈련을 통해서 스스로 그 ‘고착화된 불안’에 대적하는 편이 훨씬 유용할 것이라는 게 제 생각(경험에서 나온)입니다. 자신감의 회복, 신체 에너지의 활성화, 스트레스로부터의 탈출, 탈자기(자아) 노력 등을 통하여 서서히 그리고 부단히 불안의 근원을 희석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자발적인 ‘최적화’ 노력으로 신체적, 심리적 과부화 상태를 벗어나는 것이 올바르고 효과적인 자가 요법이 될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육체의 부단한 수련과 함께 하는 ‘무념무상 명경지수(無念無想 明鏡止水)’의 탈자기화(脫自己化) 노력이야말로 불필요한 전기 에너지가 과도하게 뇌 일정 부위로 흐르는 것을 막아주는 최적의 방법일 것입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식의 민간요법이긴 합니다만.
사족 : 세상을 재미있게(?) 만드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첩자(諜者)입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재미있는 자가 '내 안의 숨은 적'이지요. 교묘하게 정체성을 교란합니다. 밖에서 미운털이 박힌 자를 만나면 안에서 맹활약합니다. 음모, 배신, 복수, 반전이 늘 그들과 함께 합니다. 가히 불패의 적입니다.
대중소설이나 영화가 첩자를 애용하는 것은 그만큼 쓸모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간의 내면심리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효과가 탁월합니다. 손자병법 용간편(第十三 用間篇)에 보면 다섯 가지 용간(用間: 첩자를 부리는 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향간(鄕間), 내간(內間), 반간(反間), 사간(死間), 생간(生間)이 그것입니다. 향간은 고정 간첩, 내간은 뇌물로 포섭한 적국의 관리, 반간은 이중간첩, 사간은 죽음으로 임무를 완성하는 결사대, 생간은 살아 돌아오는 특수임무자를 가리킵니다. 그 기준으로 본다면 첩보영화 <007>이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향간, 내간, 반간, 사간을 적절히 활용하는 생간의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어디에서 살든, 조직에 몸을 담고 있으면 반드시 안팎의 간자들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유능한(?) 간자 스스로가 나서서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겠다고 설치는 것을 보게 될 때도 있습니다. 평생 간자로 살아온 자들이 많은 조직에서는 능히 가능한 일이지요. 그런 자들끼리 권자를 물려주면서 권력을 독차지 하는 조직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조직은 결국 망하고 맙니다. '내 안의 적'으로 살아 온 그들의 '본성'이 끝내 스스로를 배신하고픈 욕망을 떨쳐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