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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7.03 11:04
오늘의 시 4
내 홀로 어쩌자는 마련도 없이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운주사 거쳐 유달산 지나 보길도까지
어기적어기적
세상의 끝이랴 싶던 그때가 언제던가
목숨은 마냥 서러웠다
어인 밤 기우뚱
섬 하나 지울 듯 파도는 쳐쌓는데
민박집 전등불 촉수가 낮거나 말거나
썼단 구겨버리고 다시 쓰며
밤새도록 버려지던 헛된 반성문이여
—이무열의「섬」
시집 『묵국수를 먹다』(문학세계사, 2019)에 실린 이 짧은 시에서 시인은 ‘지금․여기’에서의 떠돌이 행각을 최대공약수로 떠올린다. 연 구분 없이 열한 행으로 구성된 이 시는 몸과 마음의 행로를 압축해서 보여줄 뿐 아니라 ‘시 쓰기=삶 자체’라는 등식으로 그 떠돎과 서러움(고난), 부단한 지향과 자성의 과정을 그려 보인다. 시인은 어떻게 하겠다는 작정도 없이 홀로 길을 나서지만, 산사를 찾게 되고 바다 인근의 산을 지나 남도의 섬에 다다른다. 그 섬에서 밤을 맞으면서는 ‘섬’을 ‘나’와 ‘시’로, 다시 ‘삶=시’로 들여다보면서 반성적 자기성찰을 하게 된다. 하지만 화자(시인)의 이 길 나서기는 “어쩌자는 마련도” 없고, 어기적거리며 가는 떠돎의 연속이다. 게다가 “세상의 끝”이라는 절망이나 좌절감을 거쳤음에도 “마냥 서러”우며, 깃들어 머물게 된 곳도 밤새워 거센 파도가 치는 작은 섬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을 지울 듯 치는 파도와 민박집 전등불 촉수와는 아랑곳없이 반성문(시)을 밤새도록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시간에 놓인다. 이 대목은 시인이 바로 그런 정황 속에 놓인 ‘섬’에 다름 아니며, 시인의 삶(시 쓰기)이 홀로 “헛된 반성문”을 썼다 버리고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무상감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숙명이 ‘시(시인)의 길’이라는 뉘앙스를 끌어안고 있는 것으로 읽히게 한다. 이태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