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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수프 / 작고 외롭고 단단한 것들을 위하여 > 2-2. 비 내리는 고모령

작성일 : 2023.08.25 10:40

2-2. 비 내리는 고모령

 

오랜만에 유튜브에서 맹인 가수 이용복씨가 부르는 비 내리는 고모령을 듣습니다. 장사익이 부르는 '비 내리는 고모령'과는 전혀 맛이 다릅니다. 장선생 노래가 청장년기의 정서를 환기시킨다면(한 인생 살아낸 내면의 힘이 느껴집니다) 이선생의 노래는 소년기의 정서를 환기시킵니다(어머니 앞에서는 언제나 아이일 수밖에 없다는 것 같습니다). 같은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노래해도 불러내는 때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이선생의 노래 속에서 까마득히 잊힌 옛날 일들이 어제 일처럼 떠오릅니다. 카프카도 같이 떠오릅니다.

 

카프카는 아무런 막힌 곳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 막다른 골목을 보고, 그 막다른 골목 앞에서 전심을 다해 출구를 찾는다. ‘벽 속의 블록과도 같은 사무실, 블록화된 사무실을 잇는 복도, 열린 창문, 그 창문 너머에 있는 이웃의 창문, 그 사이를 가르며 달리는 도로들, 혹은 우리 자신의 방이나 그 방에 인접한 다른 방들. 이 모든 곳에서 카프카는 닫힌 세계, 막다른 골목을 본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처럼 막다른 세계다. 거기서 그는 말한다. “저는 자유를 원했던 게 아닙니다. 다만 하나의 출구만을 원했습니다.”

 

카프카에게는 문학만이 유일한 출구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그에게 유용하고 효과적인 출구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의 문학에 표현된 견줄 데 없는 '불안'이 우리에게는 작지 않은 위로가 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모든 세상에는 어디나 늘 막다른 골목이 있습니다. 그 막다른 골목을 견디는 자기만의 수단과 방법을 가지고 사는 게 인생입니다. 그 막다른 골목 앞에서 혼자서 피 흘리는 자가 작가입니다. 그가 흘린 그 낭자한 핏자국이 다른 이들에게 유용하고 효과적인 출구가 될 때가 있습니다. 제게도 카프카가 작지만 유용한 하나의 출구가 되었습니다. 그가 인도한 문학이라는 세계가 없었다면 지금쯤 제 인생이 어디쯤 가고 있을지 전혀 가늠이 안 됩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학교에서 보리 베기 행사를 나갔습니다. 처음 가보는 도시의 끝자락에 마지막 버스 정류소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 내려갔습니다. 언덕 아래로 호수처럼 푸른 보리밭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리를 베어 봤습니다. 고개를 숙이니 어지럼증이 찾아왔습니다. 허리를 펴서 고개를 드니 멀리 기찻길이 흘낏 보였습니다. 그 너머는 강이 흐른다고 옆에서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찻길 없는 곳 너머에 보이지 않는 강이 숨어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끝에 놓여있다는 막연함밖에 없었습니다. 그 막연함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에게는 그 시절이 가장 막다른 골목이었습니다. 두어 해 전에 어머니를 잃고 도망치듯 가난한 아버지를 떠나 낯선 도회로 온 저로서는 봄날의 끝을 장식하고 있던 그 푸르른 보리밭마저 아무런 감흥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 나이에 하루하루의 끼니와 학교에 가져가야 할 월사금을 걱정해야 했던 저에게는 자유라는 말이 너무 호사스러운 단어였습니다.

그 언덕 위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것은 그 후 30여년 뒤의 일입니다. 우연히 그 아파트에 들어가 살면서 드문드문, 사라진 언덕 아래의 푸른 보리밭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자리잡은 신설 고등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아침마다, 또 밤마다, 아이를 실어 날랐습니다. 아이의 학교 옆으로 난 그 철길 건너 오솔길 언덕에 이제는 노래비까지 세워져 있는, ‘비 내리는 고모령의 그 고모령(顧母嶺)이 실재한다는 것은 그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