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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수프 6> 아버지 만들기

작성일 : 2020.06.26 10:51

<인문학수프 6> 아버지 만들기

이문열 소설 금시조(金翅鳥)는 스승과 제자의 갈등, 서로 다른 예술관으로 인한 의사(擬似) 부자갈등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예술가의 삶에 대해서 주로 말하고 있으니 예술가 소설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승(석담)은 예도사상(藝道思想), 제자(고죽)는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를 추종하면서(살아내면서) 대립합니다. 그러나 그 대립은 모의쟁투에 불과합니다. 그냥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겉모양 내기에 불과합니다. 주의(主義) 그 자체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 만들기'였을 뿐입니다. 그래서 부자(사제) 갈등은 그 결과가 뻔한 일이었습니다. 누가 이기느냐가 이미 결정된 일입니다. 제자(아들)가 극복하고자 한 것은 스승의 예도(藝道)’가 아니라 자기 안의 아버지 결핍이었다고나 할까요? 마지막에 가서 부자유친(父子有親)의 길에 들어선 아들이 예술을 버리고 예도를 택하는 일은 그래서 '정해진 길'이었습니다. 자신의 서화를 모아서 불태우는 결말 장면은 그래서 당연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억지스러운 종결)이었습니다.

고죽(古竹)이 평생 자신이 그린 서화를 모아서(최대한) 불태우고, 죽기 직전 그 불길 속에서 금시조(가루라)를 보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 됩니다. 가루라는 깊은 바다속에 있는 흑룡을 쪼아먹는 큰새로서 깨달음의 표상입니다. 그렇게 작가는 자신이 '아버지 콤플렉스'를 극복했다고 선포합니다. 예도사상으로의 귀의는 그래서 환유가 됩니다. 독자들은 그렇게 '알아서 읽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지(그 중에서도 부자유친이지) 한갓 종이나부랑이 위의 잔재주(예술적 구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작품은 별것이 아니고 그것을 만든 인간의 정신이 실로 위대한 것이다라는 생각도 일종의 예술가(책 좀 읽는 자)들의 환상이라고도 소설은 말하고 있습니다. 석담도 고죽이라는 아들이 있었으니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는 예도사상을 옹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석담의 강변은 결국, 비유하자면, 마치 술꾼들의 술자리 약속과 흡사한 것입니다. 술자리에는 술맛을 돋우기 위한 그 나름의 코드가 있는 법, 술꾼 아닌 자가 그 자리에 끼여서 그들이 취해서 한 약속이 어김없이 이행되리라고 믿는 것은 순진함을 넘어 우둔한 일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술 안에 거룩한 그 무엇이 있다고 믿는 것은 예술에 취한(취한 척하는) 자들에게만 유효한 것입니다. 술꾼들의 생각과 약속을 각성된 자의 맨 정신에게도 강요할 수 있다고 여겨서는 곤란합니다. 술꾼들은 시키지도 않은 말을 계속해서 하고, 반드시 했던 말을 또 다시 되풀이합니다. 어쩌면, 작가 이문열이 원용한 금시벽해 향상도하(金翅劈海 香象渡河)’도 그런 술꾼들의 '슬픈(술푼?)이야기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金翅劈海 香象渡河(금시벽해 향상도하)

불행히도 석담선생은 외아들을 호열자로 잃고 또 특별히 제자를 택해 의발(衣鉢)을 전한 것도 아니어서, 임종 후로는 줄곧 석담의 고가(古家)를 지킨 고죽에게는 비교적 스승의 유품이 많았다. 그러나 장년(壯年)을 분방히 떠다니는 동안 돌보지 않은데다 동란까지 겹쳐 남아 있는 진적은 몇 점 되지 않았다. 언젠가 고죽은 병석에서 이미 머지않아 스승을 뵈올 터인즉 후인(後人)의 용렬함을 어떻게 변명하겠는가, 하며 탄식한 적이 있는데 그 속에는 자신의 그와 같은 소홀함에 대한 뉘우침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예외가 지금의 액자였다. 그가 일평생 싫어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이르고자 하면서도 넘어서고자 했던 스승의 가르침이 거기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붓을 놀릴 수 없는 요즈음에 와서도 그 액자의 자획 사이에서 석담선생의 준엄한 눈길을 느낄 정도였다. [이문열 금시조중에서]

닮고자 하면서도 스승을 넘어서고 싶은 간절한 욕망을 억누를 수 없는 제자와 그런 제자에게 길 없는 길을 강요하면서 지속적으로 자신의 그림자(shadow)를 투사(projection)시키는 스승간의 갈등관계는, 자수성가한 아비가 다스리는(?) 가정에서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그런 애증병존을 금시조는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작가의 전기적 사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경험의 구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작가의 부성 콤플렉스입니다(石潭古竹에 대한 그림자 투사는 이 소설이 지니는 소설적 흥미의 핵심을 이룬다. 石潭은 첫눈에 大器임을 알아본 古竹을 통해 완전한 藝道의 실현을 자신의 生前에 보고자 한다. 그러나, 石潭의 눈에는 자신의 그림자만 보일 뿐이다. 石潭은 무의식중에 古竹이 시공을 훌쩍 건너뛰어(석담 자신이 밟아왔던 착오와 좌절의 경로를 뛰어넘어) 자신이 바라는 자리에 이미 가 있기를 원한다. 일반적으로 자수성가한 부모가 자식들에게 보이는 그림자 투사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이런 콤플렉스 소설들의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자식은 결코 아버지를 이길 수도, 뛰어넘을 수도 없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그의 품안에 안겨야만 하는 게 호로자식의 운명입니다. 제자는 결국 스승(자신이 섬긴 가짜 아버지)의 그 준엄한 눈길에 굴복하고 맙니다(그 부분에서 스승의 그림자 투사와 함께 제자의 절대적 타자를 통한 나르시시즘의 실현이라는 정신분석학적 이해도 가능하다).

고죽(古竹)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작품을 모아서 불태우는 과정에서, 비로소 금시조(큰 새)가 사악한 용을 잡기 위해 바다를 칼로 치듯이 가르고, 향상(큰 코끼리)이 물을 가로막으며 큰 강을 건너는 듯한 기세로(金翅劈海 香象渡河)’라는 서화의 최고 경지를 이루게 된다고 작가 이문열은 쓰고 있습니다. 있는 것들 가운데는 진짜가 없고, 그것들의 소멸 속에서 비로소 진짜가 등장한다는 전형적인 술꾼들의 논리입니다.

사족 한 마디. 검도에서도 금시벽해 향상도하(金翅劈海 香象渡河)’는 중요한 가르침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금시조는 자신의 날갯짓 한 번으로 바다를 가르고 심해 한 가운데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흑룡을 쪼아 먹는 거대한 새입니다. 불가적 상징체계 속에서 이해한다면 자기 안의 고뇌의 근원을 일거에 말소하는 돈오(頓悟)의 경지를 일컫는 것이라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크게 내려치는 한 칼 한 칼 속에서 이 금시벽해의 의미를 추구하면서 중단 없이 길 없는 길을 추구하는 것은 검도의 이념에 부합합니다.

실기적 측면에서도 금시벽해 향상도하(金翅劈海 香象渡河)’는 유용한 기술입니다. 검도에서 중시하는 멀리서 크게, 들어가며 치는 머리의 은유적 표현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뭐니뭐니해도 검도에서 가장 멋지고 의미있는 기술은 역시 들어가면서 치는 큰머리치기입니다. 그것 하나만 제대로 칠 수 있다면 만() 기술이 그것 아래에 복속합니다. 열 번 맞고 하나 쳐도, 그쪽을 택하는 것이 모든 검도인들의 인지상정입니다. ‘길 없는 길이든, ‘싸움의 기술이든, ‘금시벽해는 그래서, 검도인들의 좌우명이 될 법한 글귀입니다. 나중에 제가 언제 따로 도장을 하나 만들 때가 생기면, 고죽이 그렇게 했듯이, 이 글귀로 액자를 만들어 걸고 그 준엄한 눈길아래서, 부질없었던 흑룡의 세월을 반성하며, 노구(老軀)의 하루를 보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