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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8 /시인과 전쟁

작성일 : 2020.06.21 10:56 수정일 : 2020.07.18 11:31

시인과 전쟁 

                        

시인은 아비규환 피난 열차 구석진 자리에 겨우 몸을 구겨 넣을 수 있었다.

급하게 떠나오느라 짐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열차 안은 다소 진정되었다. 이내 시장기가 밀려왔다. 주먹밥을 끄집어내어 주변 사람에게 조금씩 나누어주고는 한 입 먹었다. 살았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막막했다. 표정만 봐도 모두 사선을 넘어왔는데 이런저런 사정을 물어 이야기 할 수도 없었다.

시인은 야전을 끄집어내어 판을 얹었다. 그 와중에서도 야외전축과 몇 개의 레코드판은 먼저 챙겼다. G선상의 아리아. 굵은 G선의 그윽하고 절제된 선율이 혼잡한 열차 안으로 퍼져갔다. 열차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간혹 흥얼거리는 아기 보채는 소리뿐 모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그 순간 그들은 헤어진 가족의 생사나 앞날에 대한 걱정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듯, 피난 열차를 탄 것이 아니라 어느 먼 여행을 떠나고 있는 듯, 전쟁 연극을 보다가 잠시 암전 상태에 놓여 있는 것 같은 풍경이었다. 기차가 낙동강 철교를 지나고 있었다.

얘야, 아기 쫌 보자. 시아버지는 파랗게 질려 아기를 감싸는 며느리에게 아기를 빼앗듯 안아들었다. 더 지나면 정 못 땐다. 시어머니 목소리도 단호했다. 옆에 남편은 아예 눈을 감고 있었다. 젖먹이 하나로 인해 앞으로 닥칠 가족들의 험난한 여정을 생각하다가 시아버지는 입술을 깨물며 단호하게 창밖으로 휙 던져버렸다. , 시인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철교 아래 낙동강은 꽁꽁 얼어 있었다. 곧이어 G선이 끊어지는 것 같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여기저기서 툭툭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그 소리에 망설이던 다른 가족들도 아기 내던지기에 합류하고 있었다.

시인은 더 이상 G선상의 아리아를 들을 수 없었다. <박명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