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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6.21 10:36 수정일 : 2020.06.21 11:58
인생은 짧고 노래는 길다
<시가 있는 가요 산책 7>
은방울자매, 마포종점
“기다리는 새벽은 기어이 온다.”는 말. 그렇다. 기다리면 기어이 새벽은 왔다. 그러나 기다리지 않아도 새벽은 왔다. 안 왔으면 하고 바라던 새벽도 왔다. 그래, 새벽은 기다린다고 해서 온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리석게도 더 이상 그런 믿음에 기만당하지 말자. 끝내 오지 않게 되어 있는 것은 기다리지 말고, 필연코 오게 되어 있는 것만을 기다리자. 새벽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는 것이니까. 나는 불혹의 중반에 이르러서야 간밤을 눈물로 새우고 맞이한 새벽에 뼈아프게 이 사실을 깨달았다.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
강 건너 영등포의 불빛만 아련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 하나
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저 멀리 당인리의 발전소도 잠든 밤
하나 둘씩 불을 끄고 깊어 가는 마포종점
여의도 비행장의 불빛만 쓸쓸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생각하면 무엇 하나
궂은비 내리는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첫’이란 말은 ‘설레다’란 말과 같다. ‘첫날’, ‘첫 시작’, ‘첫 만남’은 늘 설렘을 동반한다. 설렘은 곧 어떤 기대감이다. 새로이 변화된 환경, 새로운 경험, 새로이 펼쳐질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는 마음을 부풀게 한다. 사랑도 ‘첫사랑’은 더욱 그렇지 않으며, 그래서 우리는 그 첫사랑을 더욱 잊지 못하지 않은가.
‘첫사랑’. 첫사랑이란 말은 혀끝이 아리다. 첫사랑이 모두 이루어지는 사랑이라면 굳이 첫사랑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그것이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첫사랑 못 잊어 “첫사랑 떠나간 종점” “밤 깊은 마포종점”에 다시 찾아왔다. “강 건너 영등포의 불빛만 아련하”고 “여의도 비행장의 불빛만 쓸쓸한”, 첫사랑 떠나간 서글픈 마포 종점. 비에 젖은 “갈 곳 없는 밤 전차”, 갈 곳 잃은 내 마음.
천등산 끝자락에서
가서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린다
박하 향기 아득한 시간의 터널 지나
푸른 기적 달고 숨가삐 달려 와서
내 생의 한복판 관통해 간
스무 살의 아름다운 기차여! ―장하빈, 「첫사랑」
‘처음’이란 말보다 ‘첫’이란 말은 어쩐지 떨림의 여운과 강도가 다르다. ‘첫사랑’, ‘첫 입맞춤’, ‘첫눈’…. ‘첫’이란 말 속에는 아련하고 가슴 떨리는 추억과 눈물이 거기 있다. 그래서 “첫눈이 오는 날” “내 고향 언덕에 / 눈물로 서 보면” “차마 / 잊지 못할 女人이” (김동원, 「첫눈이 오는 날엔」) 아직도 시간의 눈시울에 떠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첫사랑’, 이 말은 누구에게나 현재형이라기보다는 “박하 향기 아득한” 회상의 어휘이다. 인생이 그러하듯, “푸른 기적 달고 숨가삐 달려 와서 / 내 생의 한복판 관통해 간” ‘첫사랑’도 순환열차가 아니다. “스무 살의 아름다운 기차”는 한번 떠나가면 다시는 이승의 마지막 역 “천등산 끝자락”에 닿지 못한다. 그러나 오게 되어 있는 것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오지 않게 되어 있는 것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줄을, 그래서 한번 떠나간 첫사랑도 가서는 끝내 오지 않는 줄을 알면서도 우리 마음은 또 다시 우리도 모르게 어느새 “첫사랑 떠나간 종점” “천등산 끝자락에서 / 가서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이승주/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