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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6.20 10:37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소크라테스, 공자, 그리고 칸트.
/배 학수(경성대 교수/ 철학)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행동의 연속이 삶이므로,이 물음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의 문제로 나아간다. 철학은 삶에 대한 체계적 사유이므로 행동의 결정 토대를 탐구하는 물음은 철학의 핵심 문제이다.
소크라테스의 정의 내리기
서양 철학에서 행동을 결정하는 원리를 찾는 작업은 소크라테스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말의 본질을 살펴보면 내가 어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작업을 “정의”(定義)를 내린다고 표현한다. 예를 들어 신전에 어떤 선물을 바쳐야 할지 잘 모를 때는 경건이란 무엇인지 고려해본다면 의문이 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친구에게 어떤 해야 할지 모를 때에는 우정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행동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회관계를 지시하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면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는 소크라테스의 견해는 공자의 정명론(正名論)과 흡사하다. 공자는 사회가 질서 있게 유지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명의 확립이라고 주장했다. 즉 사물에는 이름이 붙어있는데 이름이 의미하는 대로 사물이 실제로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논어에는 다음 구절이 나온다(1). <자로(子路)가 말하였다.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을 기다려 정사를 하려고 하십니다. 선생께서는 장차 무엇을 먼저 하시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 위군(衛君)은 위나라 출공(出公)을 가리킨다. 이름을 바로 잡는다는 것은 이름의 정의를 살펴봄으로써 행동의 척도를 발견하려는 소크라테스의 시도와 비슷한 것이다.
공자의 정명론
이름 안에는 사람이 수행해야 할 의무가 들어있다. 말의 뜻을 고려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는 것이다. BC 6세기경 중국 제(齊)나라의 왕 경공(景公)이 공자에게 정치의 올바른 원리를 물었다.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군자는 군자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들을 아들답게 행동해야 한다.”(2) 사회관계를 지시하는 모든 이름은 특정한 책임과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군주, 신하, 아버지, 아들이 그런 사회관계의 이름이다. 이런 이름이 붙은 개인들은 그 이름이 지시하는 대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것이 공자의 정명론이다(3).
말의 정의를 내리는 소크라테스의 방법이나, 말의 의미를 고려하는 공자의 방법은 행동의 일반적 방향을 제시한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일반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들과 아버지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은 구체적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결정하는 힘이 약하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불치의 병에 걸려 있을 때 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경우 부자지간이라는 말의 의미를 고려하는 것만으로는 행동을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부정의한 정치가의 행동을 보고 비분강개하는 친구가 찾아와 어제 나에게 맡겨둔 총을 돌려 달라고 할 때 나는 주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우정의 의미를 생각한다고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기 힘들 것이다.
이럴 때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것이 좋다. 만약 입장을 바꾸어 무기를 돌려달라는 친구가 나라면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약속을 지키고 총을 내어 주기를 바랄까, 아니면 타인을 살해할 위험이 있으니 약속을 어기고 총을 내어주지 말기를 바랄까? 그리고 내가 만일 불치의 병으로 의식마저 잃고 몇 년째 병상에 누워있는 경우 아버지라면 아들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랄까? 이런 식의 고려가 행동을 결정하는 효과적 방법일 수 있다.
공자의 충서지도
이렇게 행위자가 자신의 소망을 살펴서 행동을 결정하는 새로운 원리를 공자는 제시한다. 그것을 충서(忠恕)의 원리라고 부른다. 충이란 내가 하고 싶은 소망을 타인이 이로도록 도와주라는 명령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충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랑(仁)하는 사람은 자신이 이루고자 소망하는 것을 타인이 이루도록 도와준다. 자신의 가까운 상황에서 비슷한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이것이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자신이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을 때 먼저 타인이 이루도록 도와주는 것은 사랑 즉 인의 적극적 국면이다. 반면 서는 사랑의 소극적 국면이다. 논어에 다음 구절이 나온다. “중궁이 사랑(인)에 관해 묻자 공자는 대답했다. 자기가 소망하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 하지 말라.”(5)
충서를 포괄하여 공자는 인(仁)라고 한다. 인은 타인을 사랑한다는 의미이다(6). <공자는 번지가 인이 무엇인지 묻자 답했다. “인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다.”> 보통 사랑은 그리워한다는 식의 다소 정서적 의미를 띠고 있다. 그런데 공자는 사랑을 행동의 특성으로 이해한다.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고, 하고 싶어 하지 않는지를 고려하여 남에게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테니스 동호회에서 일요일 교외의 운동장을 빌려 연습을 했다. 근처에는 식당이 없어서 밥을 해먹기로 했다. 그런데 쌀을 준비해온 사람이 적어서 회원들이 다 먹을 밥을 만들지 못했다. 몇 시간 테니스를 치고 난 후라서 모두가 배가 고파 헐레벌떡 숟가락을 들고 버너 근처로 몰려드는데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며 물러선다. “나는 배 안 고파. 아침 많이 먹었거든.” 이 사람의 행동이 바로 충이며 인이다. 공자에 따르면 타인을 배려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지, 카톡 메시지로 사랑한다는 이모티콘을 날리는 것이 사랑은 아니다.
충은 사랑의 적극적 국면을, 서는 소극적 국면을 강조한다. 어느 쪽이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 행위를 재는 척도는 자신 안에 있지 타자에게 있지 않다. 우리는 자신의 소망이 무엇인지 고려하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다. 이렇게 공자는 행위의 원리를 자신의 내부에서 발견한다.
칸트의 정언명령
내면적 기준에서 행위의 원리를 발견하는 방법은 칸트의 정언명령과 비슷하다. 정언명령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결정할 때 타인도 그렇게 할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는 명령이다. 예를 들어 내가 생활이 곤궁할 때 지인에게 돈을 다음 달에 갚겠다고 거짓으로 약속을 하고 돈을 빌려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고 하자. 이럴 경우 칸트는 반드시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만약 입장을 바꾸어 그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해도 될까? 나는 타인이 나에게 거짓약속을 하고 돈을 빌려가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칸트의 정언 명법은 공자의 충서와 마찬가지로 행위를 결정하는 척도를 자신의 소망에서 발견한다.
동서 철학사에서 제시된 행위 결정의 원리는 크게 4가지이다. 하나는 사회관계를 가리키는 말의 의미를 고려하는 방법이다. 둘째, 행위자가 자신의 소망을 바라보고 그것을 척도로 삼아 행동을 결정하는 방법이다. 이 두 가지는 앞에서 설명했다. 세 번째 방법은 행위의 결과를 고려하여 행동을 결정하는 방법이다. 쾌락주의나 공리주의가 여기에 속한다. 네 번째 방법은 행위의 가치를 고려하여 행동을 결정하는 방법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주의, 니체는 여기에 해당한다. 후자의 두 방법은 다음 기회에 다룰 것이다.
(1)子路曰 “衛君, 待子而爲政, 子將奚先?”(자로왈 “위군, 대자이위정, 자장해선?”) 子曰 “必也正名乎!(자왈 필야정명호) "The one thing needed first is the rectification of names." (Analects, XIII, 3.)
(2) 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제경공문정어공자 공자대왈 군군 신신 부부 자자) "Let the ruler be ruler, the minister minister, the father father, and the son son." (Analects, XII, 11.)
(3)Fung Yu-Lan(馮 友蘭). A Short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
edited by Derk Bodde. The Free Press. 1948. p. 42.
(4)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부인자, 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 능근취비, 가위인지방야이.) "The man of jen is one who, desiring to sustain himself, sustains others, and desiring to develop himself, develops others. To be able from one's own self to draw a parallel for the treatment of others; that may be called the way to practise jen仁." (Analects. VI, 28.)
(5)仲弓問仁 子曰 己所不欲 勿施於人.(중궁문인 자왈 기소불욕 물시어인) When Chung Kung asked the meaning of jen, the master said: ' ... Do not do to others what you do not wish yourself ... .''' (Analects. XII, 2..)
(6) 樊遲問仁, 子曰: "愛人."(번지문인 자왈 애인) Confucius says:
"Human-heartedness consists in loving others." (Analects, XII,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