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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봄날은 간다/ 구양숙

작성일 : 2020.06.02 05:35

오늘의 시 3

봄날은 간다

 

이렇듯 흐린 날엔 누가

문 앞에 와서

내 이름을 불러 주면 좋겠다

 

보고 싶다고 꽃나무 아래라고

술 마시다가

목소리 보내오면 좋겠다

 

난리 난 듯 온 천지가 꽃이라도

아직은 니가 더 이쁘다고

거짓말도 해 주면 좋겠다

구양숙

 

소박하고 겸허하면서도 은근하게 완강한 사랑시다. 간결한 구문에 진솔한 마음을 직정적으로 담아내는 것 같지만 완곡한 역설을 거느리고 있다. 곳곳에 꽃이 피어 있지만 흐린 날을 배경으로 한 건 화자의 고독한 마음자리를 반영한다. 더구나 그 흐린 날이 이렇듯이라고 수식돼 있어 한량없이 외롭고 쓸쓸한 심경도 읽게 한다. 화자가 부르면 바로 나갈 수 있는 문 앞에 누군가가 와서 불러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도 그 때문일 게다. 둘째 연에서는 그 간절한 소망이 다소 누그러진다. 누군가가 보고 싶다며 전화라도 해 주면 좋겠다고, 바로 문 앞보다는 시간과 공간적으로 거리를 벌려 놓았다. 그것도 술 마시다가와 같이 문득 생각이 나면전화해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꽃나무 아래라고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상대가 쓸쓸할 때가 아니라 그 반대일 때 보고 싶어 전화하기를 바라기 때문일 게다. 셋째 연에서는 사랑받고 싶은 심정을 다분히 역설적으로 떠올린다. 화자는 그 어떤 꽃보다도 아직은 자신이 더 이쁘다고 봐 주는 누군가를 열망한다. 여기서 거짓말도 해 주면 좋겠다라는 구절은 곧이곧대로보다 다의적인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고 읽어야 한다. 진정으로 그런 참말을 해주기 바라는 심정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태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