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국악 다가가기

국악 다가가기

악학궤범 다가가기<4> 반지상생도설

작성일 : 2020.05.29 07:20 수정일 : 2020.06.23 11:06

남자 음과 여자 음이 결혼하여 아들 음을 낳다.
-악학궤범 제 1권, 반지((班志)의 상생도설(相生圖說)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는 사실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900년이 채 안 되는 1145년에 김부식(金富軾)이 삼국시대의 정사인 삼국사기를 편찬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24사(史)'를 역대 왕조(王朝)의 정사(正史)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24사(二十四史)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부터 시작하는데, 그 다음은 <한서(漢書)>입니다. 한서는 고조 유방이 나라를 세운 기원전 202년부터 서기 8년까지 존속한 전한(前漢)의 역사를 후한(後漢)의 반고(班固)가 기록하였습니다. <한서(漢書)>는 황제의 사적을 기록한 12제기(帝紀)와 인물 전기인 70열전, 8 표(表), 10지(志)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반지(班志)는 반고(班固)가 지은 한서(漢書)의 율력지(律曆志)를 가리킵니다. 반지는 음양(陰陽) 상생(相生)의 원리에 토대를 두고 12율의 상호관계를 부부(夫婦)와 자모(子母)의 관계에 비유합니다. 악학궤범 제1권 반지의 상생도설(相生圖說) 편은 이 이론을 인용합니다. 

(동양에도 옥타브 안에 12 반음이 있다.)

서양에서 옥타브 안에 12반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양에서도 한 옥타브 안에 12반음이 있으며, 이를 12율이라고 한다. 서양에서 12개의 음명(音名)은 C, C#, D, D#,  E,  F,  F#, G,  G#, A, A#, B입니다. 동양에서 12율명은 ➀황종(黃鍾), ②대려(大呂), ⓷태주(太簇), ⓸협종(夾鍾), ⓹고선(姑洗), ⓺ 중려(仲呂), ⓻유빈(蕤賓),⓼ 임종(林鍾),⓽이칙(夷則), ⓾남려(南呂), ⑪무역(無射), ⑫응종(應鍾)입니다. 서양이나 동양 모두 각 음 사이의 간격이 반음이어서, ➀황종은 C에, ②대려는 C#에, ⓷태주는 D에, ⓸협종은 D#에, ⓹고선은 E에, ⓺ 중려는 F에, ⓻유빈은 F#에, ⓼ 임종은 G에, ⓽이칙은 G#에, ⓾남려는 A에, ⑪무역은 A#에, ⑫응종은 B에 해당합니다.

(황종으로부터 삼분손익하여 12율이 나온다)

 

기본음은 황종 즉 C입니다. 이것으로부터 다른 음을 만들어내는 과정 역시 서양과 동양은 비슷합니다. 동서양 모두, 음들 사이에 존재하는 두 개의 원리에 동의합니다.

 

첫째 원리는 두 개의 관이나 현의 길이를 2 : 1 비율로 만들면, 한 옥타브의 음 차이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황종(C)을 소리 내는 율관을 절반으로 잘라 만든 관은 한 옥타브 높은 황종, 즉 청황종을 소리 냅니다.

 

황종 율관의 길이는 9촌입니다. 1촌은 10분이고, 1분은 약 0.35cm이니, 9촌은 약 31.5cm입니다. 황종보다 한 옥타브 높은 소리를 내는 율관의 길이는 황종 율관의 길이 x 2 해서 18촌입니다.

 

묶음 개체입니다.

둘째 원리는 두 개의 관이나 현의 길이를 3 : 2 비율로 만들면 완전 5도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황종 율관을 삼등분하여 한 토막을 버리고 황종 율관의 3분의 2(2/3) 길이 율관을 만들면 그것은 완전 5도 높은 임종(G)을 소리 냅니다. 이 방법은 삼등분하여 하나를 버리므로 삼분손일이라고 부릅니다.

 

묶음 개체입니다.

황종과 임종(G) 사이에는 7개의 반음이 있습니다. 만약 황종부터 하나, , , 넷 하고 헤아리면 8번째 음이 임종입니다. 어떤 음을 삼분손일하면 그것으로부터 8번째 높은 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두 개의 원리를 동양도 서양도 알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 원리는 동양만 활용합니다. 이것은 두 관의 길이가 3: 4 비율이면 5 개의 반음만큼 낮은 소리가 난다는 것입니다. 8번 임종 율관을 삼등분하고 한 토막을 더하면 임종의 3분의 4 짜리(4/3) 관이 생깁니다. 이 방법은 삼등분하여 하나를 더하므로 삼분익일이라고 부릅니다.

 

묶음 개체입니다.

새로운 관에서 생기는 음은 8번 임종(G)에서 5 반음 내려간 3번 태주(D)입니다. 위 그림에서 8번 임종으로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5음 아래로 내려가면 3번 태주에 도달합니다. 삼분 손일은 시계방향으로 7음 전진하여 출발음을 포함하여 8번째 음에 도달하고, 삼분익일은 반시계방향으로 5음 전진하여 출발음을 포함하여 6번째 음에 도달합니다. 12율은 황종에서 출발하여 삼분손일과 삼분익일을 번갈아 수행하여 만듭니다.

 

(음양 상생의 토대위에서 음률을 바라본다.)

 

지금까지는 동서양의 음악 사상은 비슷합니다. 차이는 지금부터입니다. 서양과 달리 동양은 음의 관계를 자연이나 인간관계와 연결합니다. 연결의 토대는 음양 사상입니다. 중국인은 음과 양이라는 두 개의 원리가 상호작용하여 세상만물이 생성하고 소멸한다고 믿었습니다. 양인 남자는 음인 여자와 서로 사랑하여 아이를 낳습니다. 이것은 양과 음이 서로를 살리는 상생입니다. 음에서 음이 나오는 과정을 동양문화는 음양상생으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양인 남자와 음인 여자로 나뉘듯이, 음도 양인 율()과 음인 려()로 나뉩니다. 양률은 홀수 번호 음인 황종(黃鍾), 태주(太簇), 고선(姑洗), 유빈(蕤賓),이칙(夷則), 무역(無射), 6개입니다. 음려는 짝수 음인 대려(大呂), 협종(夾鍾), 중려(仲呂), 임종(林鍾), 남려(南呂), 응종(應鍾), 6개입니다. 반고는 한서의 율력지에서 양률과 음려의 관계를 음양 상생의 원리에 입각하여 부부(夫婦) 또는 자모(子母)의 관계로 상징하는데, 이것을 악학궤범 1권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남편 황종이 아내 임종과 만나 아들 태주를 낳는다.)

 

제일 아래에 황종은 임종과 같은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임종 ---- 황종. 황종 글자 아래에는 부()라고 적혀 있고, 임종 아래에는 처()라도 적혀 있습니다. 황종은 남편이고 임종은 아내라는 의미입니다. 황종의 오른쪽에는 9, 임종의 왼쪽에는 6촌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이것은 율관의 길이입니다. 황종은 9, 임종은 6촌입니다. 임종은 황종을 삼분손일하여 생성하니, 황종 9x 2/3 하여 6촌입니다. 황종의 왼쪽에는 하생(下生)이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하생이란 삼분손일을 의미합니다.

 

임종의 오른편에 상생(上生)이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상생(上生)은 삼분익일을 의미합니다. 임종에서 45도 위로 태주까지 선이 그어 있습니다. 이것은 임종을 삼분익일하여 태주가 생긴다는 점을 말합니다. 그 선 위에 자()라는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어머니 임종이 아들 태주를 낳는다는 점을 표현합니다.

 

황종을 삼분손일하여 임종을 만들고, 임종을 삼분익일하여 태주를 만듭니다. 이 과정을 반지는 남편 황종은 아내 임종과 결혼하고, 어머니 임종은 아들 태주를 낳는다고 하여 음의 관계를 가족 관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1).

(남편 태주는 아내 남려와 결혼하여 아들 고선을 낳는다.)

 

태주와 남려는 동일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남려----태주. 태주 아래에는 부(), 남려 아래에는 처()가 적혀 있습니다. 태주는 남편이며 남려는 아내입니다. 태주 오른편의 8, 그리고 남려 왼편의 53분기는 태주는 8촌이며 남려는 약 5.3촌이라는 점을 의미합니다. 남려의 길이는 태주의 2/3입니다.

 

남려에서 45도 위로 선이 고선으로 그어 있습니다. 이것은 남편 태주는 아내 남려와 결혼하여, 어머니 남려는 아들 고선을 낳는다는 점을 말합니다. 다시 고선은 남편이 되고 응종은 아내가 되어, 어머니 응종은 아들 유빈을 낳습니다.

 

그림의 오른 편에는 6개의 양률이 왼편에는 6개의 음려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남편 양률은 아내 음려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고, 아들 양율은 다시 음려와 만나 아들을 낳습니다. 하나의 음이 다른 음을 생성하는 과정을 반지는 남자가 여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은 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양세계에서 음악은 단순한 여흥이 아닙니다. 6율과 6려가 만나 화음을 이루고 새로운 음을 낳은 과정은 남녀가 사랑하여 아이를 낳는 것과 같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세상만물이 수의 성질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에 만물은 수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이 음의 성질로 표현될 수 있으므로, 피타고라스의 표현을 빌리면, 동양에서 인생은 곧 음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