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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5.22 09:37
<풀밭에 버려진 감자처럼>
부산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허만하, 김형술, 정익진, 유지소, 조말선, 김참, 김언 등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쓰는 <세드나> 동인이 중심이 되어 만든 부정기 간행물이다. 그동안 발간한 책도 그랬지만 이번 작품집도 문학잡지와 동인지의 중간적 성격을 띠고 있는 다소 독특한 성격의 책이다. <세드나>가 작품집을 발간한 계기는 첫 작품집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부산에 유독 모던한 시를 쓰는 시인이 많은 반면 서자 취급을 받는 서러움을 털어 보고자 한 것”이기도 하지만 기존의 문학 판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책’을 만들어보자는 의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목차
Intro
김참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novel
강성은 두 자매 이야기
poem
김언 내 언어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 외 4편
김참 바람에 펄럭이는 빨래들 외 4편
김형술 이모들 외 4편
유지소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외 4편
정익진 헤나 타투 외 4편
조말선 토르소는 옷걸이입니까 외 4편
허만하 풍경 외 3편
prose
김언 자화상 몰두하기, 실패하기
김참 술의 말
김형술 노래의 풍경
유지소 모월 모일더보기
책속에서
내 언어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 당연히 오해하고도 있다. 당연히 생략하거나 삭제하거나 누락한 것도 있다. 심지어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것도 있는데, 그렇다고 내 언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달라지는 것은 세계다. 억울하더라도 세계다. 짐작하겠지만 그 또한 세계의 언어다. 나의 언어는 나의 언어답게 크고 넓은 세계를 다 감당하... 더보기
그가 트럼펫을 부는 동안 비가 내렸다. 바람이 불었다. 까마귀들이 날아갔다. 구름이 흘러갔다. 해가 졌다. 어두워졌다. 그가 트럼펫을 부는 동안 자전거가 지나갔다.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창문이 열렸다. 담배 피우는 입술이 나타났다. 그가 트럼펫을 부는 동안 회색 도마뱀 한 마리 나무에 올랐다. 누군가 창문을 조금 더 열었다. 뜨거... 더보기
피부 속에 사는 것들,
독거미가 목덜미 위로 기어 다니고
소녀의 배꼽에서 사타구니 속으로
방울뱀 한 마리 미끄러진다.
악순환처럼 피어오르는 꽃으로,
더는 살고 싶지 않은 늑대의 몸짓으로
너를 유혹한다.
내 무릎 속에 박힌 너의 눈동자와
너의 쇄골 속에 박힌 부엉이의 눈
나이가 들면 문신까지 늘어진다,
라는 말을 듣고 쿡, 웃었다.
쪼개진 하트를 향해 날아가는
화살도 휘어지고 웅장했던
신전의 기둥도 무너져 내렸다.
두 마리의 용이 내뿜었던 불길
지루한 한숨으로 바뀌었다.
욕탕의 수면 위에 죽은 금붕어가
둥둥 떠다닌다.
코뿔소가 전속력으로 달려와 내 가슴을 파고든다.
여자 친구의 입술이 내 팔뚝 속에서 노랠 불러요.
나도 콧노래 흥얼대며
겨드랑이에 둥지를 튼 새를 날려 보냈어요.
불량스러웠죠.
기린 세 마리는 열두 개의 창살
수많은 커튼콜을 뒤로하고
굴레를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살갗 속의 지느러미 때문인지
피부가 꿈틀거립니다.
나를 어루만져 주세요. 문질러주세요.
날 쉽게 지울 순 없을 거예요.
-정익진, 「헤나 타투」 접기
복도는 텅 비어 있다. 텅 비어있는 복도는 무슨 소리가 나는지 모른다. 복도의 소리는 자꾸 변한다. 복도의 소리는 이것이다 저것이다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복도는 제 소리를 들어보기 위해 귀를 텅 비워둔다. 하이힐이 지나가면 복도는 하이힐 소리가 제 소리인줄 안다. 슬리퍼가 지나가면 복도는 슬리퍼 소리가 제 소리인줄 안다. 속도..
봄눈 녹듯
응어리가 풀리는 때
가장 먼 것이 찾아왔었지.
어머니
손길처럼
나는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지.
-허만하, 「풍경」
책소개
『풀밭에 버려진 감차처럼』은 부산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허만하, 김형술, 정익진, 유지소, 조말선, 김참, 김언 등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쓰는 <세드나> 동인이 중심이 되어 만든 부정기 간행물이다. 그동안 발간한 책도 그랬지만 이번 작품집도 문학잡지와 동인지의 중간적 성격을 띠고 있는 다소 독특한 성격의 책이다. <세드나>가 작품집을 발간한 계기는 첫 작품집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부산에 유독 모던한 시를 쓰는 시인이 많은 반면 서자 취급을 받는 서러움을 털어 보고자 한 것”이기도 하지만 기존의 문학 판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책’을 만들어보자는 의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드나>는 2010년 『기괴한 서커스』 출간을 시작으로 2년 간격으로 『살구칵테일』, 『순진한 짓』, 『셰익스피어 헤어스타일』을 출간해 왔는데, 이번에 나온 『풀밭에 버려진 감차처럼』은 이례적으로 4년 만에 나왔다. 이번 책은 동인들의 시 34편과 산문 7편을 수록하고 있으며, 동인들의 글 외에 빙하기를 배경으로 한 일가의 몰락을 독특한 상상력과 문체로 표현하고 있는 강성은의 환상적 소설 「두 자매 이야기」, 김혜순 시인의 시 「미리/귀신」을 바탕으로 육친의 죽음을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있는 문학평론가 박대현의 비평적 산문 「문 열어 보지 마라」를 수록하고 있다.
저자 소개
강성은
2005년 ≪문학동네≫ 등단.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 『Lo-fi』. 2015년 ≪더 멀리≫에 단편소설을 발표한 후 느리게 소설을 쓰고 있다.
김언
1998년 ≪시와사상≫ 등단. 시집 『숨쉬는 무덤』, 『거인』, 『소설을 쓰자』, 『모두가 움직인다』, 『한 문장』,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시론집 『누구나 가슴에 문장이 있다』 출간.
김참
1995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 『미로여행』, 『그림자들』,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
김형술
경남 진해생. 1992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타르초, 타르초」 외 다수. 산문집 『그림, 함참을 들여다보다』 외 다수.
박대현
문학평론가. 『우울한 것의 추락』, 『혁명과 죽음』, 『황홀한 아파니시스』 외.
유지소
2002년 ≪시작≫ 등단. 시집 『제4번 방』, 『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
정익진
1997년 ≪시와사상≫ 등단. 시집 『구멍의 크기』, 『윗몸일으키기』, 『낙타 코끼리 얼룩말』, 『스캣』이 있다.
조말선
199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현대시학≫ 등단. 시집 『매우 가벼운 담론』, 『둥근 발작』, 『재스민 향기는 어두운 두 개의 콧구멍을 지나서 탄생했다』.
허만하
1957년 ≪문학예술≫ 추천. 시집 『해조』,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언어 이전의 별빛』 외. 이산 문학상(2003),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