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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5.21 11:32 수정일 : 2020.05.21 11:37
CBT는 실천철학이다.
경성대 배학수/철학
최근 철학의 실용성에 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이제 철학을 아카데미라는 박물관의 먼지 쌓인 서랍에서 끌어내서 인생을 살아가는데 실제로 도움을 주도록 변화시켜야 한다고 사람들은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제로 도움을 주는 철학을 실용철학(practical philosophy)이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에픽테토스와 이것에서 영감을 얻어 창안된 CBT에 관해 이야기 합니다. CBT는 인지 행동 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인지 즉 인식을 바꾸어 행동을 변화시키는 실천 철학의 하나입니다.
사고가 감정에 영향을 준다.
미국의 심리학자 엘버트 엘리스(Albert Ellis, 1913 – 2007)는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us)의 말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CBT라는 새로운 심리 치료법을 창안했습니다.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사건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그들의 의견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Men are disturbed not by events, but by their opinion about events.”). 여기서 에픽테토스는 인간의 감정이 사고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발레리나 한분이 자신의 무용 인생을 기념하는 회고 공연을 열었습니다. 거기에 그분의 선후배, 제자 등이 참여 했습니다. 공연을 보러가서 그분과 인사를 나누었을 때 그분은 저에게 와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기분이 나빴습니다. 왜 화가 났을까요? 오늘 쟁쟁한 사람들이 자기 공연에 참가하였으니 나 같은 사람은 무시하는 구나. 이런 해석, 즉 의견 때문에 저는 화가 난 것입니다. 그분은 조명이나 의상 때문에 신경이 쓰여 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제가 그렇게 사건을 해석했다면 화가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사건에 대한 자신의 의견 때문에 분노가 치미는 것이지, 사건 자체 때문이 아니라고 에픽테토스는 말하는 것입니다.
사고가 감정을 규정한다는 점을 사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평소 친구들과 장난치며 노는 과정에서 친구가 갑자기 기분 나빠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그 장난
을 나쁜 의도로 하지 않았다고 사과하면 상대의 화가 풀립니다
. 친구는 나의 장난을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내가 사과하여 그 해석을 수정해주면 감정이 변화하는 것입니다.
에이비시 감정이론(ABC theory of the emotions)
엘리스는 에픽테토스 말에서 감명을 받고 에이비시 감정이론(ABC theory of the emotions)을 만듭니다. 에이(A)는 우리에게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Activating events), 비(B)는 우리가 그 사건을 해석하는 신념(Beliefs), 시(C)는 해석의 결과로 우리에게 형성된 결과적 정서(Consequent emotion)입니다. 예를 들어 길거리를 내가 걸어가고 있는데 마주보며 걸어오는 행인 한 사람이 나에게 얼굴을 찌푸린다고 합시다. 나는 경멸당했다고 느끼고 화가 납니다. 이걸 보면 우리는 A로부터 C로 곧장 가버린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유심히 바라보면, 우리가 그 사건을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했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우리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인상을 찌푸린다. 그는 나를 멸시하고 있다.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얼마나 무례하고 기분을 망치는가?” 이런 해석이 우리가 멸시 당했다고 느끼게 하고 화나게 합니다.
해석을 바꾸면 감정이 바뀐다.
우리의 해석이 우리의 감정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깨닫고 나면, 우리는 우리의 해석을 잡고 그것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신념이 정말 정확한지, 현명한 것인지 물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정말 나에게 얼굴을 찡그렸는가?” “그가 나에게 인상을 찌푸린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게 뭐 대순가? 그렇다고 하루 종일 내가 나쁜 기분에 젖어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해석을 좀 더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이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줍니다.
우리의 해석은 대개 무의식적이며 자동적이기 때문에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의 감정은 자동적으로(automatically) 의도하지 않은(involuntatily) 채로 사건과 즉각 반응하여 작용에 대한 반작용처럼 우리에게 일어난다고 자주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 종일 내부 음성으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에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내부적 음성은 우리의 온갖 신념이나 의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것들을 어릴 때부터 부모나 교사로부터 듣고 내면화 했습니다. 보통 우리는 그 내부적 음성을 점검하기는커녕, 그런 것이 있다는 것도 모릅니다.
해석은 대화를 통하여 수정한다.
신념을 어떻게 바꿀까요? 소크라테스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대화입니다. 내가 취하고 의견이나 해석, 신념을 다른 사람과 토론하는 것입니다. 사건에 대한 나의 해석이 맞는지 다른 사람과 토론하면서 내 신념을 점검하면 그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대화는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자신의 신념에 대해 정당성이나 적절성을 묻고 답하며 스스로 대화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타인과의 대화이든 자기 대화이든 대화는 신념에 변화를 일으키는 훌륭한 방법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정신 또는 영혼을 돌보라”고 권유하였습니다. 정신을 돌본다는 것은 사건에 대한 해석 과정을 점검하라는 의미입니다. 정신의 해석활동을 점검하여 감정을 바꾸고 행동을 수정하면 우리는 더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점검하지 않은 인생 즉 음미하지 않는 인생”은 가치있는 삶을 영위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제어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에픽테토스는 모든 것을 두 영역으로 나눕니다. 우리가 완전히는 제어할 수 없는 것들의 영역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의 영역.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은, 에픽테토스에 따르면, 날씨, 정부, 경제, 타인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으나 완벽히 제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체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건강을 관리하지만 늙고 병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평판도 완전히 제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좋은 평판을 얻으려 노력하고 어느 정도는 효과를 보지만, 여전히 평판은 우리의 제어를 넘어서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우리의 신념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정서는 (1)사건과 (2)사건에 대한 우리의 해석으로부터 일어난 결과입니다. 정서를 바꾸려면 선행하는 두 항목을 바꾸어야 합니다. 둘 중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은 (2)사건에 대한 우리의 해석입니다. 사건 자체는 우리의 제어 능력을 넘어서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게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을 제어하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하고는 좌절합니다. 우리는 외부적 사건에 대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판단을 내리는데, 일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으면 기가 꺾이고 분노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타인이 나에게 나쁜 평가를 내리는 사건은 내가 제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악평에 대해 나는 자유롭게 해석할 수는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념을 바꾸어 봅시다. “나는 타인이 나를 좋아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평판은 제어할 수 없다. 나는 자신을 수용하고 살아가자.”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화가 사라지거나 줄어듭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타인의 대한 평판에 매여 있습니다.
신념만 바꾸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변화된 신념을 실제 삶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모임에 나가고 연설도 하면서, 이런 실제 상황에서 새로 획득한 신념을 실천해 봐야 신념을 습관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강의실에서는 잘 한다. 그러나 실천에 들어가면 완전 난파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새로운 신념을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CBT 역시 사고뿐만이 아니라 행동의 변화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그 치료법의 명칭은 인지 행동 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이다.
CBT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지혜를 발굴했습니다. 그런데 CBT에도 결함이 있습니다. CBT는 단기간의 정서 치료에는 탁월하지만, CBT에는 장기적 전망 개념이 빠져 있습니다. 좋은 인생이나 바람직한 사회는 무엇인가, 어떻게 우리는 살아야 하는가? 이런 거대 물음(big questions)이 CBT에는 없습니다. 이런 좀 더 고차적 물음은 그리스와 로마 철학에 있습니다. 우리가 CBT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고대 철학을 공부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CBT와 철학을 공부하면 우리는 자신을 바꾸는 기술을 배울 뿐 아니라 좋은 삶이 무엇인지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