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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의 가슴 아프게

작성일 : 2020.05.17 12:22 수정일 : 2020.05.17 09:07

남진, 가슴 아프게

이승주 (시인)

비 개인 긴 언덕에 풀빛 짙어오는데
남포로 임 보내는 구슬픈 노래.
대동강 물이야 그 언제 마르리오,
해마다 이별 눈물 덧보태는 것을.
―정지상(?~1135), 「송인(送人)」

  “남포로 임 보내는 구슬픈 노래.”
  노래는 때로 노래가 아니라 울음이다. 시적 화자는 임을 남포로 떠나보낸다. 대동강 강물에 “해마다” 이별 눈물 보탠다 하였으니 몇 해인지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이다. 봄비 그친 긴 대동강 강둑에 새로 푸른 풀빛은 돌아오는데, 언 강물 풀리고 대동강 나루에 떠난 사람들은 돌아오는데, 나루터 주막마다 재회와 상봉으로 흥청거리는데, 그럴수록 시적 화자의 가슴은 이별의 슬픔으로 미어진다. 가슴에 대동강 강물 같은 슬픔이 흐른다. 이제 님은 떠나고, 해마다 다시 비 개인 긴 언덕에 풀빛 서럽게 짙어오는 봄날이면 나는 대동강 나루에 혼자 나와서 떠나신 님을 기다릴 것인데, 그때마다 떠나보낸 임이 그리워 나도 모르게 내 뺨을 적시며 흘러내리는 눈물이 옷섶을 적시고 강물 위로 떨어져 대동강 물이 마를 날이 없을 것이라니, 그 신기(神氣)의 착상이야말로 이별시 중에 백미 중의 백미가 아닐 수 없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해 저문 부두에서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갈매기도 내 마음같이 목메어 운다.
          
당신과 나 사이에 연락선이 없었다면
날 두고 떠나지는 않았을 것을
아득히 바다 멀리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갈매기도 내 마음같이 목메어 운다.

  남진의 「가슴 아프게」 또한 “나”와 “갈매기”뿐 아니라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가슴”은 폐나 심장이면서 폐나 심장이 아니다. 가슴이 폐나 심장이 아닐 때, 가슴은 마음이 있는 자리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는 말은 폐나 심장이 아프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가슴이 아플 때, 마음은 폐나 심장처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가슴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런 장기가 아니다.
  마음 때문에 가슴이 아플 때, 그건 물리적인 외부의 충격이나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다. 이별이나 상실 같은 정서적 요인에 기인한다. 사정이 그러할진대 아픈 가슴을 치유할 수 있는 건 백신이나 진통제가 아니다. 이별이나 상실의 빈자리를 재회와 충족으로 원상태대로 복원하는 것이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 해 저문 부두에서 떠나가는 연락선을 /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쓰라린 이별, 그것은 바다 때문이 아니다. 연락선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때문이 아니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 때문이든지 우리는 “당신”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그 부재의 빈자리를 보면서 얼마나 그를 사랑했는지 사무치게 깨닫게 된다.
  노래는 때로 노래가 아니라 울음이다.


☐ 이승주 : 1995년 ⟪시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물의 식도』 『위대한 표본책』 『내가 세우는 나라』 『꽃의 마음 나무의 마음』이 있으며, 시 창작 이론서로 『현대시창작백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