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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5.16 10:06 수정일 : 2020.05.17 09:03
3.만화경과 어린이
어린 시절 만화경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가. 기다란 직사각형 거울 세 개를 60도 각도로 연결한 정삼각형 내부에 색종이 조각을 넣고 돌리면서 보면 신비롭고 환상적인 대칭무늬가 무한대로 만들어진다. 동네 아이들이 한자리에 앉아 크기와 모양이 거의 똑같은 만화경을 만들지만, 각각의 만화경이 만들어내는 형체는 다 다르다. 처음 만화경을 만드는 아이들은 대개 색종이를 찢어 넣는다. 경험이 쌓이면서 반짝이는 금속 조각, 색유리, 구슬 등 다양한 물체를 넣어본다. 만화경이 아이들에게 주는 최대의 교훈은 비슷한 내용물을 넣어도 똑 같은 모양은 없고, 어느 누구의 것도 언제나 환상적인 무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만화경은 황홀감과 신비감의 경험을 통해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고 감각과 감성을 예민하게 만든다. 이 경험은 아이들로 하여금 부지불식간에 다양성의 가치를 체득하게 해준다.
젊은 날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의 책을 읽을 때, 머리에 맨 먼저 떠오른 것은 만화경이다. 서로 달라 보이는 문명도 실상은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본 요소들이 다양하게 얽히면서 만화경처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전개된 것에 불과하다. 이 세상에는 원시 문명도 선진 문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신화 속에 들어있는 기본적 내용들과 근친혼 금지 같은 문명을 이루는 핵심 내용은 서로 같다. 같은 문제에 대한 대응과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미개인이라고 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의 사상도 우리의 사상에 뒤지지 않는다. 서구의 사상은 항상 분명한 설명과 논증을 요구하지만, 그들은 사상을 주무르고 조작하기 때문에 감각이 도주하고 만다. 반대로 미개인은 개념과 추상이 아니라 감각과 색채, 느낌과 경험으로 배우고 움직인다. 그는 ‘슬픈 열대’에서 자신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야만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낙인 찍는 서구인들의 오만과 폭압을 질타하며, 그들이 황폐하게 만든 열대의 원주민 사회를 보며 느낀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우울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는 인간 본성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는 사람은 자신의 배를 태워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독교와 불교가 접촉했더라면 서구문명은 훨씬 더 유연해졌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우리 아이들은 만화경과 같다. 그 속에 정말로 필요한 몇 가지만 채워넣어도 무한한 창조를 해낼 수 있다. 유소년기에는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몸이 좋은 만화경이 될 수 있도록 건강하게 성장해야 한다. 만화경 속에 너무 많은 것을 넣으면 안 된다.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들만 적당하게 넣어야 갖가지 아름다운 모양이 창조된다. 여백의 공간이 없다면 만화경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우리는 서구인들이 원시사회에 저질렀던 것처럼, 어린이라는 만화경 속에 부모가 원하는 것들만 넣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감성과 감동, 색깔이 없는 지식 조각은 만화경 속에 넣고 아무리 돌려도 아름다운 형상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대구시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