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를 그리다

시를 그리다

<최서림, 시를 그리다 4> 말들의 전쟁

작성일 : 2020.05.15 09:43 수정일 : 2020.08.09 08:45

말들의 전쟁

/최서림

 

()같이 내달려온 역사는

온갖 말()들의 싸움터다.

말을 거머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흰색, 붉은색, 검정색, 노란색 깃발을 든 말들이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죽자고 싸우고 있다.

정객들은 웃는 얼굴로 적과 악수도 하고

영혼 없는 말로 서로 포옹도 하지만,

시인은 말로써는 악수도 포옹도 하지 않는다.

시인의 말은 칼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혹 허리를 굽힐 수 있지만

시는 굽히지 않는다.

시인의 말은 벽돌이고 대들보이기 때문이다.

왕과 군사들은 싸우다 죽을지언정

()은 결코 죽지 않는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말은

승리한 말이 끌고 다니는 역사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짓밟혀서 땅 밑으로 내려간다.

모반을 꿈꾸는 슬픈 노래가 되어 여기저기서 솟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