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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2. 은방울꽃

작성일 : 2020.05.06 09:00 수정일 : 2020.05.17 08:49

은방울꽃

오노레 드 발자크가 쓴 골짜기의 백합은 그의 시대와 인간군상을 분석한 사회소설이다. 또한 이 소설은 육체와 영혼의 갈등, 대립을 통해 숭고한 사랑의 본질을 깨달아 가는 성장소설이자 연애소설이다. 1 겨울방학 때 나는 이 소설을 연애소설로 읽었고, 다 읽은 후에는 진한 감동을 주체할 수 없어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주인공 펠릭스는 처음 가본 무도회장에서 백작 부인 앙리에트를 보고 한눈에 반해, 분별력을 잃고 어머니의 품에 뛰어드는 아이처럼 마구 키스를 퍼붓는다. 깜작 놀란 백작부인은 펠릭스의 여린 얼굴을 보고 돌발적인 무례한 행동을 용서해 주며 부드럽게 대해준다. 펠릭스는 앙리에트를 골짜기의 백합이라고 생각했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앙리에트는 품위를 잃지 않고 누굴 원망하거나 낙담하지도 않았다. 펠릭스는 그녀에게 자신의 고독한 유년시절을 이야기하며 뜨거운 사랑을 갈구했다. 그러나 그녀는 언제나 절도 있고 단정한 몸가짐으로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녀는 펠릭스에게 삶의 용기와 처세술을 가르쳐 주었다. 그녀 덕분에 그는 파리에서 출세의 길로 들어섰지만 다른 여인과 애욕에 빠져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앙리에트가 병이 들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펠릭스는 백합의 골짜기로 달려간다. 임종을 앞둔 앙리에트는 펠릭스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사후에 남긴 편지에서 그녀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사랑을 자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고백하며 나는 곧 골짜기의 품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곳에 자주 들러 주시겠지요라는 말을 남긴다. 앙리에트의 고귀하고 순결한 사랑과 펠릭스가 갈구하는 뜨거운 육체적 사랑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과정을 보며 젊은이들은 말할 수 없는 비애와 감동을 느끼게 된다. 젊은 날에는 누구나 이런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나는 소설 때문에 백합을 찾아 산골짜기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소설의 원제인 불어 Le Lys dans la Vall e는 영어로 lily of the valley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골짜기의 백합으로 번역되었지만 실제로는 은방울꽃이다. 1970년대 중반 파리특파원을 지낸 어느 일간지 기자가 프랑스에는 지금 발자크 붐이 일어나서 그의 소설 골짜기의 백합이 인기 절정에 있다. 이런 복고 무드는 양장점과 쇼윈도에서도 볼 수 있는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백합이 아닌 은방울꽃으로 그 무드를 조성하고 있다라고 썼다. 은방울꽃은 순결, 사랑, 행복, 기쁜 소식, 천국의 계단 등을 상징한다. 서양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꽃을 보내면 받는 사람이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성장기엔 주기적으로 책을 통해 가슴 벅찬 감동을 경험해야 한다. 책과 자연을 통한 풍부한 감성의 배양은 미래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4월 말에서 5월 초에 은방울꽃은 피기 시작한다. 은방울꽃을 찾아내어 발자크의 소설과 꽃말을 떠올려 보고, 작은 은방울이 들려주는 순결한 사랑의 교향악에 귀 기울이며 그 향기에 취해보자.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대구시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