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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5.06 08:48 수정일 : 2020.05.17 08:45
오늘의 시 2
김루비의 /
둥근 봄날
마을에 비도 오지 않았는데
암퇘지 또 배부른 집은
살구나무 우산
공소 종소리 구르는 집엔
벚나무 우산
뒤주 바닥 긁히는 집엔
자두꽃 우산
혼기 놓친 여자 저물어가는 집엔
복사꽃 우산
줄줄이 아기 울음인 집엔
앵두꽃 우산
집집마다 우산이 가득하다
둥글음은 생명의 잉태와 생명력의 근원, 생명의 마지막 단계, 완성(이룸) 등 다양한 의미를 거느린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의 모태가 둥글며 곡식이든 알이든 생명을 잉태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둥글다. 둥글음 속에 봄 이미지들을 끌어들인 「둥근 봄날 1」은 시인 특유의 분방한 발상과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낯익은 풍경마저 낯설게 해 시인의 마음자리를 투영하거나 투사하는 등 봄의 모습을 둥글음 속에 불러들어 들여다보고 있다. 꽃을 피운 나무들이 둥근 형상의 우산에 비유되고 있으며, 집집마다 그 우산을 쓰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집집마다 다른 상황에 놓여 있듯이 우산들도 각양각색으로 그려져 시인의 마음자리를 엿보게 하며, 우산들이 상징하는 의미들을 새겨보게도 한다. 새끼들을 또 잉태한 암퇘지(풍요), 성당 공소의 종소리(성스러움), 양식이 떨어진 뒤주(궁핍), 노처녀(독신), 아기들의 울음소리(다산) 등이 집집의 분위기를 달리하는 바와 같이 우산도 살구나무, 벚나무, 자두꽃, 복사꽃, 앵두꽃 등으로 그 모습을 각기 달리하고 있다. ‘따로, 그러나 함께’의 모습을 띤 마을공동체의 공통분모는 봄날이며, 그것도 둥글음 속이다. 그러니까 시인은 그 다채로운 모습의 봄 풍경을 모두 둥글음 속에 아우르고 있다. 이태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