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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5.01 12:40 수정일 : 2020.05.17 09:08
왜 악학궤범을 편찬하게 되었나?

“음악은 하늘로부터 나와서 인간에게 머무르고, 허공에서 나와서 자연에서 완성된다.”(樂也者 出於天而寓於人 發於虛而成於自然)
이 문장은 악학궤범 서문의 처음에 나옵니다. 그 의미는 아직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책을 읽어가면서 그 뜻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악학궤범(樂學軌範)은 1493년(조선 성종 23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이 책은 음률의 원리와 용법을 밝히고 악기 제작과 무용의 절차 등을 설명합니다(1). 저자 중의 한 사람인 예조판서 성현(成俔)은 서문에서 집필의 3 가지 동기를 밝힙니다.
첫째는 음악과 무용의 기록을 위해서입니다.
음악과 무용은 문학이나 회화와 달리 공연 끝나면 사라져 버리는 시간예술입니다. 악보와 무보로 기록해 둔다면, 후세의 사람들도 그것을 보고 연주하고 춤출 수 있을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악학궤범에는 악기를 제작하는 방법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승이 끊긴 고악기를 악학궤범의 설명을 보며 복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비파가 복원에 성공하였습니다(2).
둘째는 의궤나 악보를 수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의궤(儀軌)의 원래 의미는 의례(儀禮)의 본보기인데, 여기서는 그것을 기록한 책을 말합니다. 나라에 큰 일이 생겼을 때에 그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경과나 경비 등을 자세하게 적은 책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의궤입니다. 지금의 국립국악원에 해당하는 장악원(掌樂院)이 의궤와 악보를 소장하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너무 낡아서 사라질 위기에 있었고, 남아 있는 것들도 엉성하고 틀린 데가 많아 새로 책을 낼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성종은 빠진 곳을 채우고, 틀린 곳을 고쳐서 책을 편찬하도록 신하 4명에게 지시하였습니다(3). 이 4명 중의 하나가 서문을 쓴 성현입니다.
셋째, 음악의 근본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성현은 중국에서도 음악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옛날 요순시대에는 음악은 완비되어 형벌대신 음악으로 백성을 통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가서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여 고대의 훌륭한 음악은 다 사라졌습니다. 후대의 많은 학자들이 음악의 본원을 탐구하였으나 그 본질에는 다다르지 못했다고 성현은 평가합니다.
이 사정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종은 음률에 정통하여 으뜸음에 해당하는 황종(黃鐘)의 율관(律管)을 제정하고 경기도 남양에서 나는 채석으로 편경을 제작하고, 작품을 만들고 악보를 창안했습니다(4). 그런데 그를 도운 박연(朴堧)의 실력이 깊지 않아서 음악의 본질을 탐구하지 못했다고 성현은 비판합니다. 세조는 더욱 더 음률에 정통하여 많은 가곡을 작곡하였으나 그를 도와 음악의 본질을 밝혀낼 신하가 없었다고 성현은 아쉬워합니다(5). 여기서 歌曲(가곡)은 관현반주(管絃伴奏)가 따르는 전통 성악곡을 말하는데 그냥 노래라고도 합니다.
성종은 음악의 본질을 밝히기 위해 악학궤범을 편찬하도록 합니다. 이것은 이전의 훌륭한 지도자들이 펼치지 못한 위업을 이루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성종의 조정에는 성현처럼 음악에 정통한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음악은 참으로 어려운 분야입니다. 연주 기법에 능숙한 사람이 절제의 정도를 모를 수도 있고, 그것을 알더라도 음악의 본질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음악에서 일부를 아는 사람은 많지만 전부를 아는 사람은 적습니다. 이것이 음악의 어려움입니다(6). 악학궤범은 의례의 기본부터 절차, 제사음악, 풍류음악, 민속악의 모든 것, 악의 원리부터 의상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고 정확히 기록합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이 음악의 전체를 환하게 알도록 도와줍니다.
주석
(1)先言作律之源 次言用律之方及 夫樂器儀物形體制作之事 舞蹈綴兆進退之節 無不備載
書成 名曰樂學軌範
(저자들은) 먼저 율(律) 만드는 원리(原理)를 말하고, 다음에는 율(律) 쓰는 법을 말하였으며, 무릇 악기(樂器)·의물(儀物)의 형체(形體)와 제작(制作)하는 일과 무도(舞蹈)·철조(綴兆)하는 진퇴(進退)의 절차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재하였다. 책이 만들어지자 『악학궤범(樂學軌範)』이라고 이름하였다.
(2)好音過耳而便滅 滅則無跡 猶影之有形而聚 無形而散也. 苟能有譜則可知緩急
有圖則可辨形器 有籍則可知施措之方 此臣等所以不揆鄙拙而撰之也
좋은 음악도 귀를 스쳐 가면 곧 없어지고, 없어지면 흔적이 없는 것이, 마치 그림자가
형체(形體)가 있으면 모이고 형체가 없어지면 흩어지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악보가 있으면 음의 느리고 빠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그림이 있으면 악기의형상을 분변(分辨)할 수 있을 것이고, 책이 있으면 시행(施行)하는 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신 등이 졸렬한데도 불구하고 이 책을 만든 이유이다.
(3)樂院所藏儀軌及譜 年久斷爛 其幸存亦皆疏略訛謬 事多遺闕 爰命武靈君臣柳子光
曁臣俔與主簿臣申末平典樂臣朴臣金福根等 更加讎校
장악원(掌樂院) 소장의 의궤(儀軌)와 악보(樂譜)가 오랜 세월이 지나서 해어졌고, 요행히 보존된 것 역시
모두 엉성하고 오류가 있으며 빠진 것이 많았다.
제민이
약력
부산대학교 한국음악학과 성악(가곡)전공 졸업
동아대학교 음악교육과 졸업
현)동래초등학교 음악전담교사